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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작가책방(소설/외국작가

4 / 톨스토이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by 탄천사랑 2008. 5. 17.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1 - L.N. 톨스토이 / 맑은소리 1996. 10. 22.

7.
세몬이 미하일에게 말했다.

"일을 맡긴 했지만 까딱 잘못하다간 꼼짝없이 감옥행이야.
 최고급 가죽인데다 손님 성깔도 여간 아니니 만에 하나라도 실수가 없어야 할 텐데,
 자네가 눈도 밝고 나보다 솜씨도 나으니 여기 이 치수대로 재단을 해보게.
 나는 겉가죽을 꿰맬 테니까."

미하일은 시키는 대로 신사가 가져온 가죽을 탁자 위에 펼쳐놓고 가위로 자르기 시작했다.
옆에 서서 미하일이 마름질하는 것을 들여다보고 있던 마트료나는 깜짝 놀랐다.
구두 짓는 일이라면 그녀도 이젠 제법 안다고 자부하는 터인데,
가만 보니 미하일은 손님이 주문한 장화 모양과는 전혀 딴판으로 가죽을 자르고 있었다.
주의를 줄까 하다가 그녀는 다시 생각했다.

'손님이 주문한 내용을 내가 제대로 듣지 못한 것인지도 모르지.
 나보다야 아무래도 미하일이 더 잘 알고 있을 테니까.
 공연히 참견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미하일은 마름질을 마치고 가죽을 꿰매기 시작했다.
그런데 장화를 꿰맬 때 쓰는 두 겹 실이 아니라 슬리퍼를 짓는 한 겹 실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마트료나는 이번에도 깜짝 놀랐으나 역시 참견하지 않았다.

점심때가 되어 세몬이 일어나서 보니 미하일은 신사의 가죽으로 슬리퍼를 만들고 있었다.
세몬은 너무 놀라서 비명을 질렸다.

"이게 웬일인가.
 우리 집에서 일한 지 1년이 넘도록 미하일이 실수하는 걸 본 적이 없는데 
 하필이면 지금 같은 때 이런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다니,
 손님은 굽 있는 장화를 주문했는데 밋밋한 슬리퍼 따위를 만들었으니 가죽을 통 못쓰게 돼 버렸잖아.
 손님한테 뭐라고 변명한단 말인가? 
 이런 거죽은 쉽게 구할 수도 없을 텐데." 그는 미하링에게 말했다.
"여보게 이게 무슨 짓인가? 자네 나를 죽이려고 작정했구먼,
 손님은 분명 장화를 주문했는데 자넨 도대체 뭘 만들어 놓은 건가?"

세몬이 미하일을 나무라기 시작한 순간, 현관 문고리가 덜거덕거리더니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나가 보니 그는 좀 전에 왔던 신사의 하인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어서 와요. 무슨 볼일이라도?”
“주문했던 장화에 관한 일로 마님의 심부름을 왔습니다.”
“장화에 관한 일이라고?"
“장환지 구둔지 이제 필요 없게 됐습니다. 나리께서 돌아가셨거든요.”
“아니 뭐라고 했소?"
“여기서 저택으로 돌아가시는 도중 마차 안에서 돌아가셨어요. 
 마차가 저택에 닿아 내리는 걸 도와 드리려고 보니까 나리는 짐짝처럼 뒹굴고 있지 않겠습니까? 
 돌아가신 거예요. 
 간신히 마차에서 끌어내렸죠. 
 마님께서는 저에게 
 ‘넌 구둣방에 가서 이렇게 전해라. 
  아까 나리가 주문하신 장화는 이제 필요 없게 되었으니 
  그 가죽으로 죽은 사람에게 신기는 슬리퍼를 지어 달라고 말이야. 
  그리고 다 만들기를 기다렸다가 가지고 와야겠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왔지요.”

미하일은 마름질하고 남은 가죽 조각을 뭉쳐 탁자 한 켠으로 치우고 나서 
완성된 슬리퍼를 툭툭 털어 앞치마에 닦은 다음 하인에게 내밀었다. 

"안녕히 계십시요. 여러분! 이만 가보겠습니다!"  하인은 슬리퍼를 받아 들고 돌아갔다.


8.
다시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 미하일이 세몬의 집에서 지낸 게 6년이 되었다. 
세몬은 이 제자가 기특해 죽을 지경이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미하일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묻지 않았다.
다만 미하일이 일을 그만두고 나가 버리지나 않을까 은근히 걱정스러울 뿐이었다.

마트료나는 화덕에 냄비를 올리고, 아이들은 의자 사이를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다.
그때 사내아이가 의자를 넘어 미하일에게 다가와서 그의 어깨를 흔들며 창 밖을 가리켰다.

"미하일 아저씨, 저길 좀 봐요.
 어떤 아줌마가 계집애 둘을 데리고 우리 집으로 오고 있어요.
 계집아이 하나는 절름 발인 데요?" 

그 말을 듣자마자 미하일은 갑자기 일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창문 밖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세몬은 놀랐다.
이제것 바깥을 내다보는 일이라곤 없던 사람이 
오늘따라 창문에 얼굴을 들이대다시피 하고 뭔가를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몬도 밖을 내다보았다.
깨끗하게 차려입은 부인이 가게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부인은 현관 계단을 올라와 문을 열더니 먼저 여자아이를 안으로 들오보내고 자기도 따라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부인은 탁자 옆에 앉았다.
"어서 오십시오. 무슨 볼일인지?" 여자아이들은 낯이 선 듯 그녀의 무릎에 매달렸다.
"아이들에게 봄에 신을 구두를 맞춰 주려고요."
"그러세요? 저희들은 그렇게 작은 구두는 지어본 적이 없지만, 뭐, 할 수 있을 겁니다.
 가장자리에 장식을 단 것이 좋을까요, 천을 받친 것이 좋을까요?.
 여기, 미하일은 솜씨가 정말 훌륭하답니다."

세몬이 미하일을 돌아보니, 그는 우두커니 앉아 두 아이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다시 세몬을 놀라게 했다.
하긴 두 아이 모두 드물게 예쁘기는 했다.
그렇더라도 미하일이 무슨 연유로 저렇게 열심히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는지 세몬은 이해할 수 없었다.
미하일은 마치 그 아이들을 이전부터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곧 값을 정하고 치수를 잴 차례가 되었다.
부인은 다리를 저는 아이를 안아 올려 무릎에 앉혔다.

"수고스럽지만 이 아이의 치수는 두 가지로 재 주셔야겠어요.
 불편한 발 쪽은 한 짝이면 되고 성한 발에 맞춰선 세 짝을 지어 주세요.
 두 아이가 치수가 같거든요. 이 아이들은 쌍둥이랍니다."

세몬은 치수를 재고 나서 다리가 불편한 아이를 가리키며 물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습니까? 정말 귀여운 아인데...., 날 때부터 그랬었나요?"
"아니에요. 아이들 엄마가 잘못해서 그만...."

이때 마트료나가 끼어들었다.
부인과 아이들이 어디 사는 누구인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럼 부인은 이 아이들의 친어머니가 아니신가요?"
"어머니도 아니고 친척도 아니랍니다. 남남간이지만 그냥 맡아서 기르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도 이처럼 귀여워하시는군요."
"직접 낳은 아이가 아니더라도 키우다 보면 정이 들게 마련이니까요.
 두 아이 다 제 젖을 먹여 길렀답니다.
 제 아이들도 있었지만 하느님께서 데려가셨지요.
 죽은 아이는 그렇게 불쌍한 줄 몰랐는데 이 아이들은 정말 가엾어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럼 이 아이들은 어느 댁 따님들인가요?"


※ 이 글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t-08.05.17.  20220501_14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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