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1 - L.N. 톨스토이 / 맑은소리 1996. 10. 22.
9.
부인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벌써 6년 전의 일이랍니다.
이 두 아이는 태어난 지 1주일도 못 되어 고아가 되어 버렸지요.
아버지는 아이들이 태어나기 사흘 전에 세상을 따나고, 어머니는 아기들을 낳고 곧 숨을 거뒀답니다.
저는 남편과 함께 이웃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는데,
이 아이들의 부모와는 한식구처럼 지내는 사이였지요.
아이들 아버지는 숲에 들어가 혼자서 일을 하다가
어느 날 큰 나무가 넘어지면서 허리를 덮치는 바람에 쓰러져 정신을 잃었어요.
가까스로 집에까지 옮겨다 놓았지만, 곧 저 세상으로 가 버렸지요.
그리고 며칠 안 있어 쌍둥이를 낳은 거예요.
바로 이 아이들이지요.
집이 몹시 가난한데가 돌봐줄 친척 하나 없어, 애들 엄마는 혼자 아이를 낳고 혼자 죽어갔답니다.
해산 다음날 아침에 제가 문안을 갔더니, 가엾게도 애들 엄마는 벌써 숨이 끊어져 있었지요.
게다가 숨을 거두는 순간 바로 이 아이 위로 쓰러지는 바람에 이 아이는 다리 한쪽을 못 쓰게 되고 말았죠.
마을 사람들이 죽은 시체를 씻기고 수의를 입히고 관을 만들어 장례식을 마쳤지요.
다들 친절한 사람들이거든요.
하지만 뒤에 남은 갓난아이들 일이 걱정이었지요.
모인 여자 중에 젖먹이가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어요.
나는 그때 낳은 지 겨우 8주밖에 안 되는 첫아들에게 젖을 주고 있었죠.
그래서 내가 잠시 두 아이를 맡기로 했지요.
마을 사람들은 다시 의논을 했죠.
하지만 무슨 뾰죽한 수가 있었겠어요?
하루는 마을 사람들이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리아 아이들을 좀 더 데리고 있어 줘요. 우리가 어떻게든 대책을 세워볼 테니까 그때까지만."
저는 다리가 온전한 애에게만 젖을 물렸습니다.
이쪽 절름발이 애에게는 줄 생각도 안 했죠. 도저히 살지 못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그 애가 측은한 생각이 들었지요.
그 뒤부터는 똑같이 젖을 물려주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내 아이와 두 계집아이, 말하자면 세 아이에게 동시에 젖을 먹였던 것입니다.
그나마 다행히도 내 나이가 젊어 기운도 좋았으니까 그럴 수가 있었죠.
두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으면
다음 애가 기다리고 있어서 하나가 젖꼭지를 놓는 대로 기다리는 애에게 젖을 주고 그랬었지요.
그런데 하느님의 뜻으로 이 두 아이는 잘 키워갔지만,
내가 낳은 애는 이 년이 되던 해에 죽어 버리고 그 뒤로 나는 아이를 낳지 못했죠.
그 후 살림살이는 차차 나아졌습니다.
지금은 이 거리 상인들 소유의 물방앗간 일을 맡아보고 있는데
수입이 좋아 살아가는 데는 아무런 각정이 없답니다.
다만 아이가 없을 뿐이죠.
정말 이 아이들이 없었다면 혼자 쓸쓸해서 어떻게 살았을까요!
그러니 두 아이들을 귀여워하는 것은 당연하지요.
이 아이들은 제게 촛불과도 같은 존재인 걸요."
부인은 한 손으로 다리를 저는 아이를 당겨 안으면서 다른 한 손으론 빰을 타고 흘려내리는 눈물을 닦았다.
마트료나가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부모 없이는 살 수 있어도 하느님 없이는 살 수 없다더니 과연 그 말이 옳은 것 같군요."
세 사람이 이런 말들을 주거니받거니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미하일이 앉아 있는 쪽 구석에서 섬광이 비치더니 방 안이 환하게 밝아졌다.
미하일은 두 손을 무릎 위에 얹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빙그레 웃고 있었다.
10.
부인이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가자 미하일은 걸상에서 일어나
일감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앞치마를 벗더니 주인 내외에게 공손히 절을 하면서 말했다.
"이제 작별해야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저를 용서해 주셨으니 두 분께서도 부디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주인 내외는 그에게서 눈부신 후광이 비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세몬도 일어나 마주 절하면서 말했다.
"미하일, 역시 자네는 보통 인간이 아니었군.
더 이상 자네를 붙잡을 수도, 이것저것 캐물을 수도 없을 것 같네.
하지만 이것 한 가지만은 알려 줄 수 없겠나?
내가 처음 자네를 만나 집으로 데리고 왔을 때 자네는 몹시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었네.
그러다가 집사람이 저녁을 대접하자 자네는 싱긋 웃으며 갑자기 표정이 밝아졌는데,
그건 어찌된 영문인가?
그 뒤 어느 신사분이 장화를 맞추러 온 적이 있었지.
그때도 자넨 싱긋 웃으며 밝은 표정을 지었어.
아까 그 부인이 아이들을 데리고 왔을 때 자네는 세 번째로 웃었네.
그리고 자네 몸에서 후광이 비쳤지.
미하일, 왜 자네 몸에서 빛이 나는지,
그리고 어째서 세 번을 웃었는지 그 까닭을 말해 주지 않겠나?"
미하일이 입을 열었다.
“제 몸에서 빛이 나는 것은 다름이 아닙니다.
저는 지금까지 하느님의 벌을 받고 있었는데 이제 용서를 받았기 때문이지요.
또 제가 세 번 싱긋 웃은 것은 하느님의 세 가지 말씀의 뜻을 알아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말씀의 뜻은 아주머니가 저를 가엾게 여겨주셨을 때 깨달았지요.
그래서 웃었던 것입니다.
두 번째 말씀의 뜻은 부자 나리가 장화를 주문할 때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로 웃었지요.
그리고 오늘 두 여자아이를 보았을 때 세 번째 말씀의 의미를 알게 되어 또다시 웃은 것입니다.”
세몬이 다시 물었다.
"하느님께서 무슨 이유로 자네에게 벌을 내리셨는가?
그리고 하느님의 세 가지 말씀이란 뭔가?"
미하일이 대답했다.
“제가 벌을 받은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거역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본래 천사였는데,
하루는 하느님께서 제게 한 여인의 영혼을 거두어 오라는 분부를 내리셨습니다.
제가 지상에 내려와서 보니 그 여인은 몹시 쇠약한 몸으로 자리에 누워 있었습니다.
여인은 방금 쌍둥이 아이를 낳았던 것입니다.
갓난아기들은 어머니 곁에서 꼼지락거리고 있는데
어머니는 아기들에게 젖을 먹일 기운조차 없어 보였습니다.
여인은 나를 보자 하느님께서 보내신 줄 짐작하고 흐느껴 울면서 말했습니다.
'오, 하느님! 제 남편은 남편은 숲에서 나무에 깔려 죽어 며칠 전에 장례식을 치른 참입니다.
저는 가족이 없기 때문에 아이들을 거두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제발 제 영혼을 가져가지 마시고 제 손으로 아이들을 키우게 해 주세요.
이 핏덩이들이 부모 없이 어떻게 목슴을 부지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야인이 애원하는 말을 듣고 아기 하나를 안아 어머니의 젖꼭지를 물려주고,
다른 아기는 어머니의 품에 안겨 준 다음 하늘나라에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여인의 영혼을 거두어 오지 못했습니다.
여인의 남편은 나무에 깔려 죽고, 여인은 방금 쌍둥이를 낳은 참이었습니다.
그 여인은 저를 보고 울면서 애원했습니다.
제발 영혼을 거두어 가지 말아 달라고 말입니다.
저는 차마 그 여인의 영혼을 빼았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 다시 분부하셨습니다.
‘내려가 산모의 영혼을 거두어라. 그러면 세 가지 말의 뜻을 알게 될 것이다.
인간의 내부에는 무엇이 있는가?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 세 가지를 알게 되는 날 너는 하늘나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저는 다시 지상으로 내려와 산모의 영혼을 거두었습니다.
아기들은 어머니 품에서 떨어졌으나, 죽은 여인의 몸이 침대 위로 쓰러지면서
한 아이를 덮쳐 그만 한 쪽 다리를 못 쓰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저는 여인의 영혼을 하느님께 바치기 위해 다시 하늘로 날아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거센 바람이 몰아쳐 제 두 날개를 부러뜨렸습니다.
그래서 그 여자의 영혼만 하늘나라로 올라가고, 저는 지상으로 떨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 이 글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t-08.05.21. 20230503_153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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