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1 - L.N. 톨스토이 / 맑은 소리 1996. 10. 22.
5.
이튼날 세몬은 아침 일찍 잠이 깼다.
아이들이 일어나기 전에 마트료나는 이웃집으로 빵을 꾸러 갔다.
어제 데리고 온 낯선 청년은 내의를 입은 채 걸상에 앉아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
그의 얼굴은 어제보다 한결 밝아 보였다.
"어떤가, 젊은이!.
배는 빵을 원하고 벗은 몸뚱이는 옷을 원하니 뭔가 벌이를 해야 하지 않겠나?
자네는 무슨 일을 할 줄 아나?"
"저는 아무것도 할 줄 모릅니다" 세몬은 깜짝 놀라서 말했다.
"뭐든 해보려는 마음만 있으면 되는 거야. 배워서 못할 일은 없으니까"
"다들 일을 하니 저도 뭐든 해보겠습니다."
"그런데 자네 이름은 뭔가?"
"미하일입니다"
"좋아, 그럼 나하고 구두를 만들고 고치는 일을 하겠냐.
내가 시키는 대로 해주면 밥은 먹여주겠네."
"고맙습니다. 뮈든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가르쳐만 주십시오"
그는 부지런히 일하고 조금밖에 먹지 않았다.
그리고 한가할 때면 조용히 천장만 쳐다보었다.
밖으로 나가지도 않고, 농담을 하거나 웃는 법도 없었다.
미하일이 웃어보인 건 처음 왔던 날 마트료나가 저녁을 준비했을 때뿐이었다.
6.
그렇게 1년이 지났다.
미하일의 솜씨가 소문이 나자 세몬의 수입도 점점 늘어났다.
어느 겨울날이었다.
삼두마차 한 대가 방울 소리도 요란하게 집 앞에 멈췄다.
마차 안에서 모피 외투를 입은 신사가 나왔다.
마트료나가 뛰어나가 문을 활짝 열었다.
그는 머리가 천장에 닿을 만큼 키가 컸고 몸집은 방안을 꽉 채울 정도였다.
얼굴은 불그스름하게 윤이 나고
목덜미는 황소처럼 굵직한 것이 마치 온 몸이 무쇠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신사는 숨을 한 번 크게 내쉬더니 외투를 벗고 의자에 앉으면서 물었다.
"주인이 누군가?" 세몬이 앞으로 나서면서 말했다.
"제가 주인인뎁쇼, 나리." 손님은 하인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페치카, 물건을 가져오너라!" 하인이 달려 나가 꾸러미 하나를 들고 들어왔다.
"이게 무슨 가죽인지 알겠나?”
"알고 말굽쇼, 나리."
"이봐, 정말 이 가죽이 무슨 가죽인지 안단 말인가?" 세몬은 가죽을 만져 보고 나서 대답했다.
“네, 아주 좋은 가죽입니다요.”
“그야 물론 틀림없이 좋은 가죽이지. 얼간이 같으니라고.
자넨 이런 가죽을 구경조차 못해 봤을 걸
이건 독일산이야. 20 루블이나 주고 산 거라고." 세몬은 겁먹은 듯 말했다.
“저 같은 놈은 감히 만져볼 수도 없는 물건이구만요."
“그렇다마다. 그런데 이걸로 내 발에 꼭 맞는 장화를 지을 수 있겠나?”
“지을 수 있구 말굽쇼. 나리.” 신사는 느닷없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지을 수 있다구?
도대체 누구의 장화를 짓는지, 무슨 가죽으로 짓는지를 명심해야 해.
나는 일 년을 신어도 찢어지지 않고, 모양이 변치 않는 장화를 원해.
그렇게 만들 수 있으면 일에 착수하여 가죽을 재단해.
하지만 안 될 것 같으면 손도 대지 마라.
미리 말해 두겠는데, 만약 장화가 일 년도 채 되지 않아 찢어지거나 모양이 변한다면
네놈을 감옥에 넣어 버릴 테다.
만약 일 년이 넘도록 모양이 변하지도 않고 찢어지지도 않으면 삯으로 10 루블을 주지”
세몬은 겁이 더럭 나서 미처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고 미화일 쪽을 힐끗 돌아보았다.
팔꿈치로 미하일을 쿡쿡 찌르면서 조그만 소리로 물었다.
"이봐, 어떻게 하지?"
미하일은 일을 맡으라는 듯 고개를 약간 끄덕여 보였다.
세몬은 미하일을 믿고 1년이 지나도 망가지거나 찟어지지않는 장화 만드는 일을 맡기로 했다.
신사는 의젓하게 앉아 방 안의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미하일을 보더니 물었다.
"저 사람은 누구지?"
"저희 가게의 직공인데 솜씨가 그만입지요. 그가 나리의 장화를 짓게 될 것입니다요."
"똑똑히 기억해 두라구. 1년을 신어도 끄떡없는 신발을 만들어야 해."
신사가 미하일에게 말했다.
세몬도 미하일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미하일은 손님의 얼굴을 보지도 않고 그 뒤의 구석만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그곳에 누군가가 있어 그가 누군지 알아내려고 유심히 살피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한동안 물끄러미 방구석을 바라보고 있던 미하일은
갑자기 싱굿 웃더니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뭘 보고 싱글거리는 거야? 멍청한 놈 같으니!
정신차려서 기한 내에 장화를 만들어낼 궁리나 할 일이지"
"네, 기한내에 틀림없이 만들어 놓겠습니다." 미화일이 말했다.
"명심하라구."
※ 이 글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t-08.05.06. 20220816_184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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