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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작가책방(소설/외국작가

2/톨스토이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1.

by 탄천사랑 2008. 5. 3.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1 - L.N. 톨스토이 / 맑은소리 1996. 10. 22.

 

3.
'오늘 저녁에 빵을 구울까, 내일로 미룰까' 제법 큼직한 빵 한 조각이 아직 남아 있었다.
'세몬이 밖에서 식사를 하고 들어온다면 밤참은 그리 많이 먹지 않을 거야.
그럼 내일 아침까진 이걸로 충분할 것 같은데' 그녀는 빵조각을 만지며 궁리했다.
'밀가루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있는 것만으로 금요일까지 버텨야지'

빵 굽기를 그만 두고 남편의 옷을 깁기 시작하며 남편이 어떤 모피를 사 올까 생각했다
'설마 가죽 장수에게 속지는 않겠지, 사람이 너무 좋아서 걱정이야.
 --
오늘만 해도 그래.
옷이란 옷은 모조리 껴입고 나가 버리니 나는 걸칠 것이 없다구.
그런데 이이가 너무 늦는 게 아냐? 돌아 올 때가 지났는데.
혹시 어디서 술타령을 벌이고 있는 건 아닐까?'

마트료나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마침 현관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사내 둘이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녀는 당장에 남편이 술을 마셨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다시 보니 남편은 외투도 입지 않은 속옷 바람에 빈손으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마트료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 돈으로 몽땅 마셔 버린 게 틀림없어 
 생판 모르는 건달하고 어울려 진탕 퍼마시고는 그것도 모자라 집에까지 끌고 왔군'
사내는 방 안에 들어와서도 잠자코 한 자리에 선 채 움직이지도 않고 고개도 들지 않았다.
'뭔가 나쁜 짓을 저질러놓고 겁을 먹고 있는 게 틀림없어'
마트료나는 벽난로 쪽으로 멀찍감치 떨어져 두 사람이 하는 모양을 지켜보았다.
세몬은 모자를 벗고 태연하게 의자에 걸터앉았다.

"이봐, 왜 그러고 있어? 식사 준비를 해야지"

세몬은 그녀가 몹시 화가 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할 수 없다는 듯이 그는 낮선 사내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자, 앉으라구. 저녁을 먹어야지'  낯선 사내가 의자에 앉았다.
"왜 그래? 저녁 준비를 하지 않은 거야?" 마트료나는 더 이싱 화를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왜 안 해요. 하긴 했지만 당신 몫은 없어요.
 보아 하니 당신은 염치마저 홀랑 마셔버린 모양이군요.
 모피 사러 간다더니 모피는 커녕 입고 나간 외투마저 남 벗어주고,
 그것도 모자라 저 건달을 집에까지 꿰차고 들어오다니.
 당신네 주정뱅이들한테 줄 저녁은 없단 말아예요."
"마트료나, 사정도 모르면서 함부로 떠들어 댈 거야?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고 나서 지껄여야지." 세몬은 속주머니를 더듬어 지폐를 꺼냈다.

그러나 마트료나는 몹시 화가 나 남편의 설명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여러 말 말고 내 옷이나 내놔요.
 하나밖에 없는 옷을 빼앗아 입고 뻔뻔하기도 하지! 썩 벗어 달라니까요! 
 이런 못난이, 팔푼이 같으니라고! 차라리 어디 가서 꽉 죽어 버리는 게 낫지"

그대로 나가 버리려고 하다가 그녀는 문득 걸음을 멈췄다.
속은 상했지만 그래도 이 사내가 누군지는 밝혀내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4.
마트료나는 멈춰 서서 입을 열었다. 

“온전한 사람이라면 저렇게 맨발로 돌아다닐리가 없지.
 게다가 저 사람은 내의조차 입지 않았다구요.
 당신이 나쁜 짓을 하지 않았다면 어디서 저 사람을 끌고 왔는지 왜 말 못 하는 거죠?”
“아까부터 그 말을 하려던 참이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교회 담 밑에 이 사람이 알몸으로 거의 얼어붙은 채 기대앉아 있었단 말이오. 
 글쎄, 여름도 다 갔는데 벌거숭이가 아니겠소! 
 마침 하늘이 도와서 내가 그리고 지나오게 됐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얼어 죽고 말았을 거요. 
 살아가다 보면 언제 무슨 일을 당할지 누가 알겠소! 
 그래 외투를 입혀 데리고 왔지. 
 마트료나, 당신도 그만하고 마음을 가라앉혀요. 
 누구든 한 번은 죽는 법이니까.”

마트료나는 뭔가 좀 더 심한 말을 퍼부어 주고 싶었으나 
낯선 젊은이를 쳐다보자 왠지 말문이 막혔다. 
청년은 걸상 끄트머리에 죽은 듯이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 놓고 가슴팍에 고개를 떨군 채,
눈을 드는 일도 없이 마치 무엇에 목을 졸리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마트료나가 잠자고 있자 세몬이 다시 입을 열었다. 

“마트료나, 당신에겐 하느님도 없소?”

 마트료나는 그 말을 듣고 다시 한번 낯선 청년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부글거리던 노여움이 홀연히 가라앉았다.
그녀는 돌아서서 방구석에 있는 난로 곁으로 걸어가 저녁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와서 식사들 하세요" 세몬은 낯선 청년을 식탁으로 데리고 갔다.
"앉으라고, 젊은이!"
 
마트료나는 식탁 끝에 앉아한 손으로 턱을 괴고 낯선 젊은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문득+++++++젊은이가 가여워져서 돌보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청년이 갑자기 밝은 표정을 짓더니 찌푸렸던 이마를 펴고 눈을 들어 그녀를 쳐다보며 싱긋 웃었다.
식사가 끝나자 마트료나는 그릇들을 치우고 낯선 청년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디서 왔죠?"
"저는 이 고장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째서 그런 곳에 있었나요?"
"그건 말할 수 없습니다."
"당신 옷은 누가 벗겨간 거죠?"
"하느님께서 벌을 내리신 겁니다."
"그래서 벌거벗고 쓰러져 있었단 말이에요?"
"네, 벌거벗은 채 쓰러져 거의 얼어죽을 뻔했죠.
 그런데 댁의 주인께서 저를 발견하고 가엾게 여겨 외투를 벗어 입혀주고는 여기까지 데리고 온 겁니다.
 여기 오자 이번엔 아주머니께서 절 불쌍하게 생각하시고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셨죠.
 두 분께는 하느님의 은총이 내릴 겁니다."

젊은이가 마지막 빵을 먹어 버리는 바람에 당장 내일 아침 먹을 것이 없다는 것과,
남편의 내의를 주어버린 일을 생각하면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젊은이가 싱긋 웃던 걸 생각하면 그녀의 마음은 어느새 환하게 밝아지는 것이었다.

마트료나는 오래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세몬도 잠이 오지 않는지 외투 자락을 한 번씩 끌어 닿기 곤 했다.

"남은 빵을 다 먹어 버렸는데, 반죽을 해두지도 않았으니 내일은 어쩌죠?
 옆집 말라냐네더러 좀 꾸어 달랄까?'
 "그러든지. 설마 산 입에 거미줄 치려고" 마트료나는 한동안 말없이 누워 있었다.
"그런데 저 사람 말이에요. 
 나쁜 사람 같지는 않은데 어째서 자기 얘기는 통 하려 들지 않는 거죠?"
"뭔가 말못할 사정이 있겠지"
"세몬!"
"응?"
"우리는 남을 도와주는데, 남들은 왜 아무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는 거죠?"

세몬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거 쓸데없는 소리 작작 하라니까"
그렇게 말하고 나서 그는 획 돌아누워 잠들어 버렸다.


※ 이 글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t-08.05.03.  20220526_17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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