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작가책방(소설/외국작가

톨스토이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1

by 탄천사랑 2008. 5. 2.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1 - L.N. 톨스토이 / 맑은 소리 1996. 10. 22.

한 구두장이가 아내와 자식을 데리고 어느 농부의 집에 세 들어 살고 있었다.
그는 집도 땅도 없이 오직 구두짓는 일만으로 식구들의 먹여 살렸다.
빵값은 비씨고 품삯은 보잘것없어 버는 족족 입에 풀칠하기 바쁜 형편이었다.
 
그에게는 아내와 번갈아가며 입는 외투 한 벌이 있었는데, 이제 그것마저 낡아 누더기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그는 2년 전부터 양가죽을 사서 외투를 새로 만들어야겠다고 별러 오고 있었다.

가을에 들어서면서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아내의 손지갑에 모셔놓은 3루블 외에도 이웃에 꾸어준 돈이 5루블 20 카페이카쯤 되었던 것이다.
구두장이는 양가죽을 사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마을에 갈 채비를 했다. 

어침밥을 먹자마자 루바시카 (러시라풍의 남자 겉저고리) 위에 아내의 무명 내의를 껴입고 
그 위에 다시 모직 외투를 걸친 다음,
그는 3루블 지폐를 속주머니에 넣고 나무막대를 지팡이 삼아 집을 나셨다.

'꿔준 돈 5 루블을 받고 3 루블을 보태서 양가죽을 사야지'


그러나 그의 이런 계획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언젠가 고처준 장화 수선비 20 카페이카와 어느 집에서 낡은 털장화 꿰매는 일감 하나를 얻었을 뿐이었다.
속이 상한 그는 20카페이카를 몽땅 털어 보드카를 마시고 집으로 향했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는 꽤 추운 것 같았는데
술을 한 잔 걸치고 나니 털외투 없어도 몸이 따뜻했다.
그는 걸어가면서 한 손에 든 지팡이로 꽁꽁 얼어붙은 땅을 두드리고,
다른 한 손으론 낡은 털장화를 휘들러 대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외투 같은 것 없어도 따뜻하기만 하네
 겨우 한 잔 걸쳤을 뿐인데 요렇게 후끈후끈한 걸. 까짓 털가죽옷 따원 필요 없다고!
 그런데 마누라가 가만 있지 않은걸, 이건 골치 아픈데.
 빌어먹을, 남은 죽어라 일해 주는데 고작 20 카페이카를 줘!
 술 한 잔이면 날아가 버릴 돈을 가지고!"

이윽고 구두장이는 모퉁이의 작은 교회 근처에 이르렀다. 
그때 교회 뒤에서 뭔가 허연 것이 보였다. 
이미 땅거미가 지기 시작해서 무엇인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여기쯤에 돌 같은 건 없는데, 소인가? 그런데 짐승 같지도 않아. 
 머리는 사람 같지만, 사람치곤, 너무 희군. 그리고 사람이 이런 데 있을 리가 없지.’

그는 좀 더 다가갔다. 
그제야 그 물체는 똑똑히 보였다. 이게 웬일인가. 
아니나 다를까 사람은 사람인데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몸으로 교회 벽에 기대앉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구두장이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어떤 자가 이 사나이를 죽이고 옷을 벗겨 여기 버린 모양이군. 
 너무 바짝 다가갔다가는 나중에 무슨 변을 당할지도 모르겠는걸.’
구두장이는 무서운 생각에 그냥 지나치다가 생각했다.

'가까이 가볼까? 
그냥 지나쳐 갈까? 혹시 갔다가 봉변이리도 당하면 큰일이지' 
이런 생각을 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구두장이는 그냥 지나쳐 교회 모퉁이를 돌았고 사나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게 되었다. 

머릿속에 그런 생각들을 굴리며 구두장이는 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나 교회를 거의 지나쳤을 무렵 갑자기 양심이 고개를 쳐들었다.
그는 길 복판에 멈춰 서서 중얼거렸다.

'세몬, 도대체 너는 지금 뭘 하는 거냐? 
 사람 하나가 봉변을 당해 죽어가고 있는데 겁을 먹고 슬쩍 도망치려고 하는 거냐? 
 가진 물건을 빼앗길까 봐 겁이 나는가? 
 세몬, 그건 잘하는 일이 아니야." 

결국 세몬은 발길을 돌려 남자에게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2.
세몬은 그에게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니 아직 젊고 몸에 얻어맞은 흔적도 없었다. 
그러나 추위 때문에 몸이 꽁꽁 얼어붙은 데다 몹시 겁을 먹고 있는 듯했다.
세몬이 바짝 다가가자 남자는 그제야 눈을 뜨고 세몬을 쳐다보았다. 
세몬은 그의 눈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털장화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허리띠를 끌러 장화 위에 던진 다음 입고 있던 외투를 벗으면서 말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이거라도 입어보라고! 어서!"

세몬은 남자의 팔을 부축해 일으켰다.
일어선 남자를 보니, 훤칠한 몸매에 손과 발이 깨끗하고 얼굴빛도 온화한 젊은이였다.
세몬은 그의 어깨에 외투를 걸쳐주었다.
세몬은 청년을 다시 앉히고 털장화를 신겨주었다.
"이만하면 됐겠지.
 자아, 이젠 좀 움직여 보라구. 몸이 녹게 말이야.
 여기서 우물주물할 것 없잖아? 그런데 자네, 걸을 수는 있겠나?"

청년은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자네 대체 어디서 왔나?"
"저는 이 고장 사람이 아닙니다."
"이 고장 사람이라면 내가 모를 리가 없지.
 내가 묻고 있는 건 어째서 이런 데 와 있는 나는 거야. 저 교회 구석 같은 데 말일세"
"그건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
"들어보나 마나 어떤 나쁜 놈들한테 몹쓸 짓을 당했겠지?"
"아무도 제게 나쁜 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전 하느님으로부터 벌을 받은 것입니다."
"아무튼 어디 들어가서 좀 쉬어야 할 텐데. 대체 어디로 갈 생각인가?"
"어디든 좋습니다"

세몬은 저으기 놀랐다.
청년은 불량해 보이지도 않았고 공손했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하려  들지 않았다.
세몬은 생각했다.
'누구에게나 말못할 사정은 있는 법이니까'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어떤가, 나하고 같이 우리 집으로 가는 게? 몸이 녹으면 정신이 좀 나겠지"

세몬은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술이 깨면서 오싹오싹 한기가 느껴졌다.
그는 연신 코를 훌쩍이며 마누라에게 빌려 입은 무명 속옷 앞자락을 바싹 당겨 여미면서 생각했다.

'털가죽 외투가 대체 어떻게  돼 버린 거야?
 모피 외투를 장만하려 나셨다가 입고 있던 것마저 벗어던진 꼴이 됐으니,
 거기다 벌거숭이 사내까지 달고 들어가면 마트료나가 펄펄 뛸 게 뻔한데'

아내 생각을 하자 세몬의 마음은 우울해졌다.
그러나 옆에서 걷고 있는 젊은이를 돌아보자 교회 모퉁이에서 처음 발견했을 때 
자신을 쳐다보던 그의 눈빛이 떠오르면서 마음이 다시 환하게 밝아졌다.

※ 이 글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t-08.05.02.  20220505_17294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