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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작가책방(소설/외국작가

나는 모래를 사랑한다. 세상 어느 곳에 있는 모래든-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

by 탄천의 책사랑 2007. 10. 5.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 - 스티브 도나휴/김영사 2005. 01. 20.

에필로그 
우리도 사막을 사랑한다.
인생에서 가장 좋은 시절을 보냈던 곳이 사막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 앙투안 드 생 텍쥐페리의내가 탤리스를  바람과 모래와 별들 중 사막의 인간.


내가 탤리스를 다시 만난 곳은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가나의 외진 어촌 마을에서였다.
탤리스는 400년 된 구 舊노예상 성채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이 성체는 이제 정부가 운영하는 여관으로 변해 있었다.
이 성채는 가나 만의 아름답게 부서지는 파도 위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내가 도착한 시간은 막 저녁 식사를 시작하려고 할 때였다.

우리는 램프 불아래에서 지배인이 들려 주는 노예 교역의 역사를 들으며 저녁 식사를 했다.
매일 아침 푸른 열대 우림을 지나 아름다운 부수아 플레저 해변까지 걸어갔다.
그곳은 야자수가 우거진 모래 해변으로,
초가집 몇 채와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 몇 명 이외에는 아무도 없이 한적했다.

우리의 생활은 변화가 없었다.
매일 똑같은 일상이 계속되었고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기를 고대하지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해변과 사막의 유사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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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사막을 건너고 나면 우리는 종종 평화와 안정의 순간을 맞게 된다.
우리는 해변까지 왔다.
하지만 단지 안정과 평화, 성공의 마침표라 할 수 있는 해변에 도착하기 위해 
과도기의 사막을 건넜다는 생각은 분명 잘못이다.
그렇게 믿는다면 우리는 유목민의 옷을 입은 등산가가 되고 마는 것이다.
정상의 이름이 해변으로 달라진 것뿐이다.

인생은 쉬지 않고 건너야 하는 끝없는 모래 사막의 연속으로 보는 것도 잘못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너무 끔찍해진다.
쉬지 않고 언덕위로 바위를 굴리는 시시포스가 되어 버린 것 같은 기분이다.

여행을 할 때는 도착했음을 느낄 줄도 알아야 한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면서 그것이 다음 도착지를 향해 내딛는 것임을 느낄 줄 알아야 한다.
우리 안에는 여행과 목적지가 공존한다.
누군가 우리에게 사막에 있는지 해변에 있는지 물으면 우리는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혼란스럽고 절망스러우며 심지어 필사적이기까지 한 변화를 겪고 있는 중이라도 
우리는 분명하게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여기에 있다. 
 현재가 바로 나의 인생이며, 난 이제 여기 도착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모든 것이 잘 돌아갈 때. 모든 것이 제자리를 잡고,
인생이 순조로울 때에도 우리는 여행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어떤 점에서는 이런 순간에도 이미 변화는 시작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나침반을 점검하고 가고 있는 방향을 잊지 않아야 한다.

지금 당장이라도 사막 여행의 규칙을 사용해 볼 수 있다.
포장도로가 갑자기 끝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변화의 사막에있지 않다고 해도 우리는 항상 인생이라고 하는 사막의 한가운데에 있기 때문이다.

인생이라고 하는 큰 사막에서 사막 여행의 규칙을 연습하는 것이 훨씬 쉽다.
실제 인생에서는 변화가 점진적으로 천천히 일어나고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언제 과도기의 부드러운 모래 가루에 갇히게 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평소에 연습을 해두는 것이 좋다.
사실 예측 가능한 포장도로는 그 자체가 하나의 큰 신기루이다.
인생은 우리가 예측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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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이나 유목민들에게는 인생 자체가 여행이다.
따라서 그들은 사막에서 이동할 때 또는 바다를 향해할 때 그 순간을 최대한 활용한다.
인생은 따분할 떄도 있고, 무서울 때, 헷갈릴 때, 지겨울 때, 불확실할 때, 즐거울 때도 있다.
우리는 인생의 하루 하루가 그리고 각각의 사막이 어떤 날을 선사해 줄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멋진 여행을 하기 위해 노력은 할 수 있다.

멋진 여행이란 돈을 들여서 흔들림 하나 없이 길을 달리는 그런 여행이 아니라,
단순히 여행하는 순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그것은 태도이 문제이다.
멋지게 여행하는 것은 끊임없이 밀려오는 인생의 밀물과 썰물을 평화스럽게 받아들이고, 
우리 앞에 놓인 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가족을 부양하고 있다면 그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일자리를 옮기는 중이라면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길을 잃었다면 그 사실도 그대로 받아 들여야 한다.

멋지게 여행할 때 우리는 자신을 포함해서 아무것도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 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스트레스도 덜 받고 더욱 즐거운 마음으로 여행할 수 있다.
멋지게 여행할 때, 
우리는 표지만 보고 책을 판단하지 않고,
직업만으로 드라이클리닝하는 사람을 평가하지 않으며,
낡고 녹슨 배의 동체만 보고 아프리카의 화물선을 판단하지 않는다.
또한 겉모습만 보고 사막을 평가하지 않는다.
사막에는 우리가 처음에 볼 떄에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많이 내재되어 있다.
호기심에 찬 여행가의 자세로 인생에 접근하면 평범한 여정 
또는 힘든 여정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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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내려오면서 나는 신기하게도 슬픔과 행복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나는 슬픔은 저쪽으로 몰아내고 행복에만 매달리고 싶었다.
차에 시동을 걸고 엔진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한동안 그냥 앉아 있었다.
스티브 탤리스와 나는 지금 그 어느 떄보다 서로 가까워졌는데 그는 죽어가고 있었다.
나는 내가 해변과 사막에 동시에 떨어져 있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내가 원하는 곳에 있었고 동시에 내가 멀리  도망치고 싶은 그런 곳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이런 게 살아 있다는 느낌일까?
이런 여정을 우리가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우린 이 길을 걸어왔다.
나는 마음이 아팠지만 슬픔으로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무엇인가가 열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내 감정으로부터 도망치지도, 또 얽매이지도 않으리라 결심했다.
오히려 내 모든 감정을 감싸안기로 했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살아 있는 느낌일지도 모른다.
나는 렌터카를 후진해서 찻길로 나온 후 공항으로 향했다.


※ 이 글은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t-07.10.05.  20211031_154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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