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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작가책방(소설/외국작가

우리가 믿는 게 진리라는 건 어떻게 알지요-인간의 굴레에서 1/서머싯 몸

by 탄천사랑 2008. 7. 7.

 

 

 

인간의 굴레에서 1 - 서머싯 몸 / 믿음사 1998. 09. 30.

그렇다면 우리가 믿는 게 진리라는 건 어떻게 알지요?
필립은 잠시 생각한 뒤 말했다.
성인들이 과거에 믿었던 것이 틀리다면 지금 우리가 확신하고 있는 것도 틀리지 말란 법이 있나요?
동감일세.
그렇다면 뭘 어떻게 믿을 수 있지요?
모르겠어. 필립은 헤이워드의 종교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사람은 늘 자신의 이미지로 신을 만들어왔네. 그 친구가 믿는 건 멋있는 것이야.
필립은 잠시 있다가 말했다.
도대체 신을 믿기는 왜 믿어야 되는지 모르겠군요
이 말이 입에서 떨어지자마자 필립은 자신이 이미 믿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차가운 물 속으로 뛰어든 사람처럼 음찍 놀랐다. 
놀란 눈으로 위크스를 쳐다보았다. 
돌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얼른 위크스의 방을 나오고 말았다. 
홀로 있고 싶었다. 
이보다 더 놀라본 적이 없었다. 
이 문제를 하나하나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흥분되지 않을 수 없었다. 
전 일생이 걸린 문제 같았고 (이 문제에 대한 결단은 앞길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리라 생각되었다) 
잘못하면 영원히 저주받은 삶을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확신은 굳어갔다. 
그는 어린 시절 신앙을 간단히 벗어던져 버렸다. 
마치 몸에 맞지 않게 된 외투처럼. 
비록 깨닫지는 못했지만 신앙이 오랫동안 그를 지탱했던지라, 
그것을 버리고 나자, 처음에는 삶이 낯설고 외롭게 느껴졌다.
낮은 더 춥고, 밤은 더 외롭게 느껴졌다. 
하지만 벅찬 감격이 그를 버티게 해주었다. 
삶이 더 아슬아슬한 모험으로 여겨졌다. 
이윽고, 
내던져버린 지팡이, 벗어버린 외투가 오히려 힘겨운 짐이 아니었던가 하고 생각되었다. 
이제 그 모든 것에서 해방되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마구 뛰었다.
아름다운 경치에 취한 필립에게는 눈앞에 펼쳐진 것이 온 세상 같았다. 
어서 내려가서 그 세상을 즐기고 싶었다. 
이제 사람을 비굴하게 만드는 두려움에서 벗어났고 편견에서도 벗어났다. 
지옥불에 대한 끔찍한 공포감을 갖지 않고 무슨 일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게 되었다. 
불현듯 그는, 삶의 행위 하나하나를 시급하고도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게 하는 
책임이라는 짐도 아울러 벗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한결 가벼워진 대기속에서 한결 자유롭게 숨 쉴 수 있었다. 
자기가 한 일은 자기에게만 책임을 지면 된다. 
자유였다! 
마침내 제 자신의 주인이 된 것이다.   -194

※ 이 글은 <인간의 굴레에서 1>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t-08.07.07.  20210702_184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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