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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유아 어린이/쉼터

까트린 이야기 - 2 (3)

by 탄천사랑 2008. 2. 22.

·「빠트릭 모디아노 - 까트린 이야기」




 

아빠는 동업자인 레몽 카스트 라드에 대해 말할 때면, 그를 '찰거머리'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얘야 까트린, 오늘 오후엔 너를 데리러 학교에 갈 수가 없겠구나...,
 저녁 내내 '찰거머리'하고 일을 해야 하거든"

카스트 라드 씨는 갈색 머리에 눈은 까맣고 상반신이 무척이나 긴 사람이었다.
그 길고   꼿꼿한 상반신 때문에 다리의 움직임이 눈에 잘 띄지 않아서,
마치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있거나 빙화를 신고 얼음을 지치는 것처럼 보였다.

나중에 가서야 나는 아빠가 애초에는 그를 사무원으로 고용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빠는 맞춤법을 잘 아는 사람을 원했고, 
카스트 라드 씨는 젊은 시절에 문학사 학위를 준비한 경력이 있었다.
'찰거머리'는 그렇게 사무직원으로 들어왔다가 아빠의 동업자가 된 거였다.

그는 사사건건 공연히 훈계를 늘어놓곤 했다.
그는 불행한 사건들을 알려 주는 일도 좋아했다. 
아침에 출근해서 책상 앞에 앉으면 그는 신문을 천천히 펼쳐 들었다. 
맞은편 책상 앞에는 아빠가 으레 안경을 벗어 놓고 앉아 있었다. 
그러면 카스트 라드 씨는 남프랑스 사람 특유의 발음과 억양으로 재난과 범죄에 관한 기사들을 읽었다.

신문을 읽다 말고, 카스트라드 씨는 아빠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안 들을 거예요, 조르주? 
 마음을 딴 데 팔고 있군요...... 당신에겐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용기가 없어요...... 
 안경을 다시 쓰는 게 좋겠어요......"
"꼭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찰거머리'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일이 또 하나 있었다.
상반신을 쭉 펴고 목청을 돋워 가며 편지를 받아 쓰게 하는 일이었다.
행여나 그의 자존심을 다치게 할까 싶어 그 편지들이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얘기도 하지 못하고,
그가 부르는 대로 업무용 서신을 타자하던 아빠의 모습을 얼마나 많이 보았던지.....,
카스트 라드 씨는 낱말들을 철자로 불러 주는가 하면,
구두점은 물론이고 악상 시르꽁플렉스 같은 철자 부호까지 시시콜콜하게 일러주곤 했다.

아빠는 자기 동업자가 등을 돌릴라치면 받아쓰고 있던 편지를 찢어 버리기 일쑤였다.

 

※ 이 글은 <까트린 이야기>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빠트릭 모디아노 - 까트린 이야기
역자 - 이세욱
열린책들 - 1996. 07. 20.

[t-08.02.22.  20230205-1638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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