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트릭 모디아노 - 까트린 이야기」
우리가 살던 곳의 아래층에는 가게 비슷한 것이 있었다.
아빠는 매일 저녁 일곱 시에 그곳의 철재 셔터를 내렸다.
시골 기차역에 짐을 맡기고 발송하기 위해 마련된 장소처럼 보이는 그곳엔
언제나 상자와 꾸러미들이 쌓여 있었다.
거기엔 저울도 하나 있었는데, 바닥에 닿을락 말락 하게 딸려 있던 널따란 저울판은
무게가 상당히 나가는 물건을 달기에 알맞았다.
눈금판에 3백 킬로그램까지 표시된 점으로 미루어도 그 저울의 용도는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그 저울판에 무엇이 올려져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단지 아빠가 거기에 올라가 있는 것을 보았을 뿐이다.
드문 일이기는 하지만, 어쩌다 아빠의 동업자인 카스트 라드 씨가 자리를 비웠을 때
아빠는 두 손을 호주머니에 찔러 넣고 머리를 숙인 채 저울판 한가운데에 우두커니 서 있곤 하였다.
아빠가 생각에 잠긴 눈으로 물끄러미 바라보던 눈금판의 바늘은
67킬로그램을 가리키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너도 올라오겠니, 까뜨린?"
그러면 나는 저울판 위의 아빠 곁으로 갔고, 아빠는 내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우리 두 사람은 그런 자세로 꼼짝 않고 거기에 서 있었다.
마치 사진사의 대물렌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람들처럼.
내가 안경을 벗으면 아빠도 나를 따라 했다.
우리 주위가 온통 부두럽고 오련했다.
시간마저 흐름을 멈춘 듯했다. 우리 마음은 마냥 흐뭇하였다.
※ 이 글은 <까트린 이야기>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빠트릭 모디아노 - 까트린 이야기
역자 - 이세욱
열린책들 - 1996. 07. 20.
[t-08.02.15 20230203-1448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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