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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 어린이/쉼터

여자가 말할 땐 확실한 말만 합니다 - 엄마의 어른스러움

by 탄천사랑 2007. 9. 3.

·「김송희 - 여자가 말할 땐 확실한 말만 합니다」

 


딸들이 국민학교 1,2학년 미술시간에 그려 가지고 온 엄마는 예쁘고 순진하게 생긴 신부의 모습이었다.
치렁치렁 레이스가 장식된 드레스를 입고, 살포시 미소 짓는 입매,
그 옆에는 '아이 러브 마마'라고 써 있기까지 했다.

나는 공연히 우쭐해져서 
"얘, 엄마가 이렇게 예뻐?" 하면 
"그럼요" 하고 조금도 망설이는 기색 없이 대답해 주던 딸들이 아니었던가.

그 때만 해도 서툰 엄마 노릇에 살림도, 아이를 키우는 일도 완벽하지가 못 했는데,
아이들이 그렇게 봐 주는 게 가슴 뿌듯했고 일종의 안도감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불과 2,3년 후, 아이들의 시선은 180도로 달라져 버렸다.
어느 날, 화첩에 그려진 5학년 짜리 딸에의 그림에서 어느덧 엄마는 늙고 퇴색해 버린 중년의 여인이었다.
아이 학교에서 '가족'이라는 주제 아래 그림을 그리게 했던 모양인데,
나는 지금도 딸애의 그 그림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림 속의 색상과 표정과 선은 물론이고 현기증처럼 느껴지던 그 아찔함까지를.

딸애의 눈에 비친 아빠는 역시 고고한 학자였다.
책상에 앉아 근엄한 자태로 학문에만 몰두하는 모습,
그런데 그 곁에 서 있는 엄마는 비대한 몸매에 앞치마를 두르고,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그릇을 닦고 있었다.

이럴 수가. 내가 이토록 살이 쪘나.
엄마의 이미지를 이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었던가.
나는 절망할 대로 절망했으면서도 애써 마음을 가라앉혀야 했다.
자신의 그림에 대해서 뭔가 좋은 평가를 고대하는 딸의 표정이,
나로 하여금 의무감을 짐 지워 주었기 때문이다.

평소에 딸의 그림 솜씨는 대단한 축에 끼었다.
그래서 늘 칭찬의 말을 아끼지 않았으나 이번만큼은
"그림이 아주 훌륭하구나"라는 표현이 선뜻 나오지 않았다.

아니, 그림에 대해서 칭찬의 말을 해 주기에 앞서,
부엌에서 그릇이나 닦고, 청소나 하고 멍청하게 하늘이나 보며 하는 일 없이 사는 게 
정말 엄마의 모든 이미지였던가를 확인해 보고 싶었던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러나, 말로 물어서 무엇하랴.
나는 아이들의 눈이 얼마나 정직한가를 알고 있다.

'그래, 너희들의 눈에 비친 엄마는 그럴 만도 하다.
 누구누구 엄마는 보석상을 하고, 
 누구누구 엄마는 의사라며 부러운 듯 내 귓가에 쫑알대던 너희들에게 
 성실한 가정주부의 모습만을 보이며 그것이 최상의 부모라고 착각까지 했었지.
 그래, 옳다, 
 너희들은 무능력한 엄마를 지금 채찍질하는 거란다.'

나는 스스로를 자책했다.
그리고 그 사건은 나를 직장으로 뛰어들게 한 하나의 동기가 되었다.

나는 그로부터 벌써 10여 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내 아이들에게 지적인 엄마, 능력 있는 엄마로 보이기 위해서...

며칠 전, 나는 고등학생이 된 딸애들과 대화의 시간을 마련했다.
10여 년 전 딸애들의 눈에 비친 엄마의 모습이 이제는 다른 시각으로 비추어지리라고 자신하며,
이제는 그 충격스러웠던 옛 기억은 지워버리고 싶어서였다.
나는 먼저 이렇게 유도했다.

"우리 정직하게 말하자.
 너희들이 엄마에게 원하는 것하고, 엄마의 싫은 점을 이야기해 줄래."

그런데, 자신 있게 기대했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큰 딸애의 이야기는 이렇게 풀려나왔다.

"엄마는 마치 엄마가 이루지 못한 꿈을 우리를 통해서 이루어 보겠다고 망상하시는 것 같아요.
 어쩌다 성적이 조금만 떨어져도, 
 조그만 실수에도 엄마가 직장 생활 때문에 우리를 내팽개쳐서 그렇다고 자책하는 건 싫어요.
 솔직히 말하면, 엄마가 그러시는 게 저희는 부담스러워요.
 엄마가 우리에게 무엇을 꿈꾸고 계신지는 모르지만,
 우린 엄마의 꿈 같은 것에 도달할 수가 없어요"

딸아이가 초롱초롱 빛나는 눈동자로 말을 끝마쳤을 때, 
나는 10여 년 전에 맛보았던 그 비애감 이상의 감정을 맛보았다.

나는 아이들을 저희들 방으로 돌려보내고 마음을 가라앉히느라 혼자서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흐를수록, 생각이 깊어갈수록, 나는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나의 전부라는 생각이 그들을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여기고,
내 방식에 옭아매 두었던 착각 속의 사랑이 깨달아진 것이다.

아이들은 벌써부터 어른이었다.
항상 이 엄마의 어른이었던 것이다.
이제는 이 엄마가 정말 어른스러워져야,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는 진정으로 온전해지리라.

이 엄마의 어른스러움,
그래, 이젠 너희들이 기대하는 엄마로 다시 서리라.
한 10년쯤 다시 이 엄마에게 기회를 주렴,
그 때는 기대해도 좋을 거야.


※ 이 글은 <여자가 말할 땐 확실한 말만 합니다>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김송희 - 여자가 말할 땐 확실한 말만 합니다
푸른꿈 - 1990. 12.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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