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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성장교육(인문.철학.교양./부부로 산다는 것

4 - 035. 그녀 대신 아이 학교 가보는 것

by 탄천사랑 2008. 1. 15.

·「최정미 외  - 부부로 산다는 것」


 

 

 

작은  행복을 찾아 나서는 여유 / 그녀 대신 아이 학교 가보는 것
그가 근무하는 학교. 아침 8시 40분이면 어김없이 주현이가 등교를 한다.
뇌성마비 장애를 가지고 있는 주현이가 아빠의 손을 잡고 힘겹게 올라온다.
업거나 안으면 2~3분이면 될 텐데, 그 아빠는 서두르는 법이 없다.
아이의 보행지도를 위해 그렇게 아이의 보폭에 맞추어 천천히 걸어서 올라온다.

1학년 아이들은 대부분 엄마와 함께 등교를 한다.
간혹 할아버지 또는 할머니와 함께 등교하는 아이도 있지만, 주현이처럼 아빠와 하는 아이는 없다.
매일 아침 보는 장면임에도, 
바쁜 출근 시간에 아빠가 주현이 등교를 도와주어야 하는 이유가 궁금했었다.
그러다 우연히 주현이 아빠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출근 시간에 바쁘실 텐데 매일 아침 주현이를 데리고 오시네요?" 그 아빠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캐나다에서 4년 동안 파견 근무를 했습니다.
  공부하는 엄마 대신 제가 주현이를 등교시키고 학교 행사에도 참석했죠.
  그런데 우리나라에 오니까 아빠가 학교에 드나드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더군요.
  이혼을 해서 주현이를 혼자 키우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하는 분들도 많더군요"

그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래서 주현이가 아빠 손을 잡고 학교에 오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 아파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그날 이후 주현이 아빠를 보면서, 아이들에게 소홀했던 자신을 반성하게 됐다.
그도 비록 교사 신분이었지만, 다른 아빠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었다.
교육은 엄마의 몫이라고 생각,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저녁식사를 하는데 식탁 유리 밑에 ‘4월 급식 당번 조직 표’라는 것이 보였다.
4월 7일에 둘째 녀석의 이름이 있었고, 빨간색 사인펜으로 동그라미가 되어 있었다.

그녀도 직장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급식 당번 차례가 되면 유료 도우미를 이용하고 있었다.
그는 ‘내가 아이 급식을 다녀올까.’하고 생각했다.
마침 4월 6일은 그의 학교 개교기념일이라 쉬는 날이었다.
6일 당번을 맡은 어머니와 바꿀 수만 있다면 가능할 것 같았다.

“정민이 급식을 6일로 바꿔서 내가 갈까?” 
"그러던지...."

그녀는 별 생각 없이 대답했다.
곧바로 6일 당번 어머니께 전화를 해서 바꾸어줄 수 있느냐고 했더니 그러자고 하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반신반의하던 아내가 말리기 시작했다.

“괜한 짓 하지 말고 도우미 보내. 젊은 여 선생님이 아빠가 오면 얼마나 불편하겠어. 
  급식 마치고 교실 청소도 해야 하는 모양이던데.
  그리고 다른 엄마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어. 이혼한 사람이거나 실업자라고 생각할 거 아냐.” 

그럴 것이다. 그 역시 주현이 아빠를 보고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그는 아내에게 담임선생님과 통화를 해보도록 했다. 
아빠가 마침 쉬는 날이라 급식 당번을 가겠다고 하는데 괜찮겠냐고 전화를 드렸더니, 
선생님이 반가워하더라는 것이었다.

4월 6일.
그는 앞치마를 준비해 약속된 11시 50분에 학교에 갔다.
먼저 급식실로 내려가 1학년 4반 이정민 아빠라고 하자, 
함께 당번을 맡은 어머니가 당황하는 표정이었다.
잠시 후 앞치마를 입고 손을 씻고 등장하자, 다른 반 어머니들도 힐끗힐끗 쳐다보며 수군거렸다.

밥과 국, 반찬이 담긴 손수레를 끌고 교실로 올라갔다. 
아이들은 손을 씻고 점심 먹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 역시 앞치마를 입고 급식 지도를 하는 아빠가 신기했던지 ‘누구 아빠이지?’하며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아이들의 반응은 분명히 어머니들의 편견 섞인 그것과는 달랐다.
둘째 녀석이 
“우리 아빠야”라고 하자 녀석들은 부러운 듯이 '와'하고 환호를 했다.

급식 메뉴는 콩밥에 시금치 된장국, 김치, 연근조림, 닭강정이었다.
버리는 음식이 없도록 처음에는 적당량을 주고, 더 먹고 싶은 아이들은 더 먹으라고 했다.
어떤 아이들은 밥을 조금밖에 주지 않았는데도 많다고 남겼고,
어떤 아이들은 닭강정을 먼저 먹고는 식판을 들고 와서 더 달라고 했다.

배식이 끝나자, 
선생님께서 식판에 손수 밥과 반찬을 담더니 그와 다른 어머니에게 내밀었다.

"점심 드셔야죠"
"아뇨, 집에 가서 먹죠 뭐" 그가 사양을 했다.
“자녀들이 먹는 급식이 어떤지 맛을 보셔야지요.” 

선생님이 숟가락을 쥐어주셨다.
음식은 꽤 맛있었다.
그는 아이가 학교에 와서 늘 이렇게 청결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니 기분이 좋았다.

급식 뒷정리를 하고, 아이들이 돌아간 교실 청소를 했다. 
선생님이 불편하지 않도록 구석구석 깨끗하게 청소를 했다.
청소가 끝나자 선생님이 교실 밖까지 따라 나오시며 인사를 하셨다. 

“모처럼 쉬시는 날인데...........,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고 청소까지 깨끗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들이 집에 가서 급식에 아빠가 와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 지나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아이의 손을 잡고 집으로 향했다. 
아이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정민아, 오늘 아빠가 와서 창피하지 않았어?” 
“아니, 친구들이 부러워했어.”
“그런데 너 닭강정 좋아하면서 왜 더 먹지 않았어?”
“더 먹고 싶었는데, 아빠가 왔다고 더 먹으면 아이들이 흉볼 것 같아서 참았어.”

언제나 철없는 막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사회성이 발달한 것을 보니 흐뭇했다.
다음 날 출근을 해서 창문을 여는데, 어김없이 주현이가 아빠 손을 잡고 등교를 하고 있었다.
매일 아침 바라보는 그 모습이 가슴 아팠는데, 그날따라 다르게 보였다.
아빠의 손을 잡고 등교하는 주현이가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가 없었다.

그는 주현이 아빠를 보면서,
자신도 아이들 교육 문제를 아내에게만 맡기지 않고, 
함께 고민하고 풀어나가는 아빠가 되어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짬을 내어 아이의 학교에 가보세요. 아이의 학교생활을 직접 보세요. 
아이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습니다. 마음을 열고 아이와 함께 운동장을 거닐어보세요. 
일상의 찌든 때가 씻겨 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부부로 산다는 것>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t-08.01.15.  20210130-1416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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