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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작가책방(소설/ㅁ - ㅂ9

어른이 된다는 것-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박준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 박준 / 난다 2017. 07. 01. 어느 모임의 저녁 자리에서 연세가 지긋한 한 분을 만났을 때의 일이다. 시작은 역시 질문이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그분의 말은 달랐다. "제가 잘은 모르지만 한창 힘들 때겠어요.    적어도 저는 그랬거든요.    사랑이든 진로든 경제적 문제든 어느 한 가지쯤은 되지 않았지요.    아니면 모든 것이 마음처럼 되지 않거나.    그런데 나이를 한참 먹다가 생각한 것인데 원래 삶은 마음처럼 되는 것이 아니겠더라고요.         다만 점점 내 마음에 들어가는 것이겠지요.   나이 먹는 일 생각보다 괜찮아요.   준이씨도 걱정하지 말고 어서 나이 드세요." 충격이었다. 자신의 과거를 후회로 채워둔 사람과 무엇을 이루었든 이루지.. 2025. 2. 5.
어떤 말은 죽지 않는다-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박준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 박준 / 난다 2017. 07. 01. 어떤 말은 죽지 않는다 나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한 문장 정도의 말을 기억하려 애쓰는 버릇이 있다. '뜨거운 물 좀 떠와라'라는 외할아버지가 내게 남긴 마지막 말이었고 '그때 만났던 청요릿집에서 곧 보세'라는 평소 좋아하던 원로 소설가 선생님의 마지막 말이었다. 나는 죄송스럽게도 두 분의 임종을 보지 못했으므로 이 말들은 두 분이 내게 남긴 유언이 되었다. 먼저 죽은 이들의 말이 아니더라도 나는 기억해두고 있는 말이 많다. '다음 만날 때에는 내가 좋아하는 종로에서 보자'라는 말은  분당의 어느 거리에서 혜어진 오래전 애인의 말이었고, '요즘 충무로에는 영화가 없어'는 이제는 연이 다해 자연스례 멀어진 전 직장 동료의.. 2025. 1. 30.
고독과 외로움-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박준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 박준 / 난다 2017. 07. 01. 고독과 외로움 몇 해 전 좋아하는 선배 시인과 차를 마시면서 이런 나의 괴팍한 습관을 고백한 적이 있었다. 그 선배는 자신도 나와 비슷한 버릇이 있다고 반가워했다. "고독과 외로움은 다른 감정 같아. 외로움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것일 텐데,  예를 들면 타인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 드는 그 감정이 외로움일거야.  반면에 고독은 자신과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것 같아.  내가 나 자신을 알아주지 않을 때 우리는 고독해지지.  누구를 만나게 되면 외롭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야.  고독은 내가 나를 만나야 겨우 사라지는 것이겠지.   그러다 다시 금세 고독해지기도 하면서" 다시 봄이 왔다. 긴 겨울.. 2025. 1. 5.
옛 친구가 보낸 한 통의 편지-한없이 슬프고 외로운 영혼에게/무라카미 하루키 한없이 슬프고 외로운 영혼에게 - 무라카미 하루키 / 하문사 1999. 05. 17.옛 친구가 보낸 한 통의 편지결혼 청첩장이 나를 오래된 거리로 되돌아가게 한다.  나는 이틀간의 휴가를 얻어서 호텔방을 예약한다.  나는 거기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무엇인가 이상한 기분이다.  몸의 절반이 투명하게 변한 것 같은 느낌이다.  마치 내가 내 몸에서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 된다.  12년 전에 나는 에 애인을 가지고 있었다.  대학이 방학을 하면 나는 슈트케이스에 짐을 넣고 신간센의 새벽 첫차를 탔다.  창가 자리에 앉아서 책을 읽고 풍경 같지도 않은 풍경을 바라보면서 햄 샌드위치를 먹고 맥주를 마셨다.  그런 아침 시각에 맥주를 마시는 것은 나에게는 하나의 의식과 같은 것이었다.  에 도착하는.. 2024. 2. 23.
8월 14일, 일요일.-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무라카미 하루키 8월 14일, 일요일. 아침나절에 칼라 토머스(Carla Thomas)와 오티스레딩(Otis Redding)의 음악을 MD로 들으면서 1시간 15분간 달렸다.오후에는 체육관의 풀에서 1,300미터를 수영하고, 저녁에는 해변에 가서 수영을 했다.그 뒤에 하나레이 거리의 입구 근처에 있는 돌핀 레스토랑에서 맥주를 마시고, 생선 요리를 먹었다.'왈루(waiu)'라고 하는 흰 살 생선이었다.  숯불구이로 주문해서 간장을 쳐서 먹는다.생선에 곁들인 것은 야채 케밥. 커다란 샐러드가 따라 나왔다.++ 소설을 쓰자고 생각을 하게 된 날짜를 정확히 기억해 낼 수 있다.1978년 4월 1일 오후 1시 반 전후였다.그날, 진구 구장의 외야석에서 나는 혼자 맥주를 마시면서 야구를 관전하고 있었다.진구 구장은 내가 살고 있던.. 2022. 1. 30.
누가 믹 재거를 비웃을 수 있겠는가?-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무라카미 하루키 / 문학사상 / 2009. 01. 05.오늘은 2005년 8월 5일, 금요일. 하와이의 카우아이 섬 북녘 해안, 날씨는 기가 막힐 정도로 말끔하게 개어 있다. 구름 한 점 없다. 지금으로서는 구름이라는 개념의 암시조차 없다. 이곳을 찾아온 것은 7월 말.  늘 그랬던 것처럼 여기서 콘도를 빌려, 아침나절의 선선할 때에 책상에 앉아 일을 한다. 예를 들면 지금은 이 글을 쓰고 있다. 달리기에 관한 자유로운 문장이다. 여름이기 때문에 물론 덥다. 하와이는 흔히 사계절 내내 여름뿐인 상하常夏의 섬이라고 하지만, 어쨌든 북반구에 위치하고 있어 사계절이 갖추어진 섬이다. 여름은 겨울보다는 (비교적) 덥다. 그러나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의 벽돌과 콘크리.. 2022. 1. 16.
내가 좋아지는 시간-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박준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 박준 / 난다 2017. 07. 01. 스스로를 마음에 들이지 않은 채 삶의 많은 시간을 보낸다. 나는 왜 나밖에 되지 못할까 하는 자조 섞인 물음도 자주 갖게 된다. 물론 아주 가끔, 내가 좋아지는 시간도 있다. 안타까운 것은 이 시간이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또 어떤 방법으로 이 시간을 불러들여야 할지 내가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나 자신을 좋아하려야 좋아할 수 없는 순간만은 잘 알고 있다. 가까운 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 때, 스스로에게 당당하지 않을 때 좋음은 오지 않는다. 내가 남을 속였을 때도 좋음은 오지 않지만 내가 나를 기만했을 때 이것은 더욱 멀어진다. 2017. 12. 28.
그리움을 위하여 - 그 남자네 집 그리움을 위하여 -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 7 / 문학동네 2013. 06. 04.  그 남자네 집 나는 그날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의 아름다운 얼굴에서 창백하게 일렁이던 카바이드 불빛,  불손한 것도 같고 우울한 것도 같은 섬세한 표정,  두툼한 파카를 통해서도 충분히 느껴지는 단단한 몸매,  나는 내 몸에 위험한 바람이 들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피차 동정 같은 건 하지 않았지만 닮은 불운을 관통하는 운명의 울림 같은 걸 감지한 건 아니었을까.  나는 마치 길 가다 강풍을 만나 치마가 활짝 부풀어 오른 계집애처럼 붕 떠오르고 싶은 갈망과  얼른 치마를 다독거리며 땅바닥에 주저앉고 싶은 수치심을 동시에 느꼈다.  [t-14. 07. 06.  20240704-135658]  *-* 2014. 7. 6.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무라카미 하루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 무라카미 하루키 / 문학사상 2006. 08. 21. 시마모토는 어린 시절 둘이 같이 들었던 레코더를 하지메에게 선물로 가져왔다. 둘은 음악을 같이 듣기 위해 하코네로 갔다. +++ 아직 10월 초였지만, 하코네의 밤은 제법 서늘했다.  별장에 도착하자, 나는 전기를 켜고, 거실 가스난로를 켰다.  그리고 찬장에서 브랜디 잔과 브랜디를 꺼냈다.  잠시후 방이 따뜻해지자, 우리는 예전처럼 소파에 나란히 앉아, 냇 킹 콜의 레코드를 턴테이블에 올렸다.  난롯불이 빨갛게 타서 브랜디 잔에 비쳤다.  시마모토는 양다리를 소파 위에 올려, 허리 아래로 집어넣듯 앉아 있었다.  그리고 한 손을 등받이에 올리고, 한 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있었다.  예전과 마찬가지다.  그때 그녀는 남.. 2007. 10.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