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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내가만난글/단편글(수필.단편.공모.

내 나이 오십 넘어

by 탄천사랑 2022. 5. 4.

정덕희 -  그럼에도 행복하소서

 



내 나이 오십 넘어
험준한 인생산 꼭대기에 앉으니
이제야 보이더이다 올라온 길, 내려갈 길
뒤엉킨 풀숲, 가로 막던 물줄기, 버티고 선 돌덩이
뒹굴고 넘어져 옷깃 털며 허허 껄껄 넘어온 길
내 나이 오십 넘어 정확한 세금 내고 깨달음 알았으니
손해 난 장사는 아닌 듯 하더이다.

내 나이 오십 넘어 깨달음 하나,
지난 세월 돌아보니, 그냥 그렇게 앙탈하며 왔을 뿐,
이미 나있는 길 걸어 온 듯하더이다.
내 나이 오십 넘어 깨달음 둘,
그래 그걸 알았다면 그리 하지 않았을 걸
별 것도 아닌 인생 별것인 양 난리였소
내 나이 오십 넘어 깨달음 셋,
그렇 수 있는 일, 그럴 수 없다는 어리석음
아파하고, 집착하며 앙탈했더이다.

그럴 수 있다는 포용의 마음, 보자기에 쌓아 가슴에 안으니
이곳이 극락이요 이곳이 천상이라
다 모두 다
내 마음 안에 있는 것을
마음 비워, 마음 주인 내가 되니
내 나이 오십 넘어
자유요, 평화요, 행복이어라


몇 년 전 쓴 글이다.
인생의 정점, 인생산 꼭대기에 앉아보니 이제 내려갈 길만 남았다고,
정확한 세금 내고 큰 깨달음 얻었다며...., 

그러나 2007년,  더 큰 산이 내 앞에 버티고 있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산이다.
지금까지 넘어왔던 산보다 더 높고 험준한 산....,  그 우거진 숲 속에 갇혀 앞을 분간할 수 없었다. 

하기야 지난 세월을 돌이켜봐도 마찬가지였다.
산 하나 넘으면 또다른 산이 기다렸고, 그 산을 넘으면 또 다른 산이 기다리곤 했다.
'산 넘어 산' 이라더니! 숙제 하나 끝내면 또다른 숙제가 주어지는 것이 바로 인생인가 싶다.

"큰 산 하나 더 넘는다 생각하고 마음 단단히 먹어요.
  이번에 넘을 산은 그동안 넘어왔던 산들 중에서 가장 높은 산일 거요.
  역경에도 다 뜻이 있다니 그저 담담히 넘어보소.
  지금이야 힘겹고 지치겠지만 수업료 안 내고 얻는 것은 절대로 없더이다.
  작은 그릇으로 살 팔자라면 고난도 없을 거요.
  지금보다 큰 그릇이 되려면 그릇을 다시 빚는 것도 좋지 않겠소?
  가마에 들어가지 않고는 빛나는 그릇도 나오지 않는 법, 
  인생에 성공한 선배들도 다 그런 과정을 거쳐 그 자리에 와 있는 거요."  한 인생 선배님이 해주시던 말씀이다.

놀란 가슴으로 중심을 잃어 헛디딘 발,  그러나 어디선가 구원처럼 찾아오는 지혜의 싹....,
나보다 먼저 세상을 살았던 선배님들의 값진 코칭은 당시의 내겐 그야말로 '구원'이었다.
태풍이 몰아치는 나날들, 

그래도 산꼭대기에서 '불어라 바람아'하며 꼬장꼬장 앉아 있던 내게 또한 선배가 호통을 치신다.
 
"태풍이 불면 무조건 몸 구부리고 피해, 그것이 살아남는 길인 게야.
  잘났다고 몸 꼿꼿이 세우고 있으면 사지가 부러지고 날아가버려.
  변명하지 마.
  싸우지 마.
  그냥 나 죽였다 생각하고 피해 있다가 태풍 지나가면 다시 일어나 걸어.
  그러면 돼."

역시 좋은 코치는 경험으로 만들어진다.
나보다 먼저 이 세상을 살아오신 선배님들의 현명한 코칭 덕분에 
나는 그 어려웠던 시간들을 버틸 수 있었고 결국 이겨낼 수 있었다.

지금까지 10년 넘도록 전국을 돌며 약 1,500만 명의 사람들을 만났다.
내 연구실에 있는 한반도 지도 위에는 형형색색의 길이 그려져 있다.
한 번 , 두 번, 세 번....., 횟수에 따라 갖가지 색으로 덧칠된 오색찬란한 길.

나만큼의 역마살, 인연살이 또 있을까.
누군가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람을 많이 만난 이로 남자는 송해, 여자는 정덕희라고 했단다.
아마 맞는 말일 것이다.
그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나는 밴을 몰고 다녔다.
연예인들이 주로 타고 다니는 바로 그 큰 차다.
길 위에서 많은 것들을 해결해야 하니 차가 곧 연구실이요 응접실이고 수면실이다.
그러다 보니 차 중에서도 여러모로 쓰임새가 많은 밴을 택하게 된 것이다.

밴을 탄 지 10년, 
지금 타고 있는 차가 밴으로서도 세 번째다.
차에 대한 욕심이 많아 자주 바꾼 것이 아니다.
엔진이 주저않도록 타고 다닌 터라 어쩔 수 없이 바꾸고 바꾸고 한 것이다.
그동안의 주행거리만 100만 마일...,  그 주행거리만큼 눈도 넓어졌고 만난 사람 수만큼 경험도 쌓였다.
내게는 사람이 곧 선생이었고 길이 곧 학교였다.
아무나 다닐 수 없는 최고의 학교에서 배우고 익힌 것들을 이제 노트 위에 하나하나 적어보려고 한다.
부족하고 어쭙잖은 글이지만, 그래도 '정덕희답게' 쉽고 편안하게 써 내려갈 심산이다.

한때 냄새 때문에 천대받던 청국장이 지금은 최고의 웰빙식품으로 대접받고 있다.
땡글땡글 단단한 콩..., 어디 그 콩이 거져 청국장이 되던가.
뜨거운 가마솥에서 삶겨 나와 다시 이불을 꼭꼭 뒤집어쓴 채 
뜨끈 뜨근한 아랫목에서 며칠을 더 견뎌야 끈적끈적 맛있는 청국장이 되지 않던가.
사람도 청국장처럼 발효의 과정을 거치고 나야 성숙한 인생의 가을을 맞게 된다.
젊음만이 아름다운 것을 아니다.
눈물의 비바람과 한숨의 파도를 견디며 중년, 장년을 거쳐온 농익은 발효 인생도 멋진 것이다.

우리 집 냉장고에 20년째 붙어있는 문구가 있다.

오늘을 충실히 산다는 것은 지난 과거에 대한 가장 큰 반성이며, 
오늘을 충실히 산다는 것은 다가올 미래에 대한 가장 큰 준비다. 

내 삶은 언제나 진행형, 현장형이었다.
갖춘 것 없이, 가진 것 없이 맨몸으로 주어진 환경을 깨치며 미친 듯 뛰어왔다.
교수, 시인, 작가, 방송인 등 세인들이 부러워할 만한 직업들을 내 것으로 만들었고 
아내, 어머니, 맏며느리, 여자로서 행복한 가정도 이루었다.
이 만큼 발효되기까지 깨닫고 익힌 것들을 고스란히 이 책에 담았다.
내가 터득한 발효의 기술이 후배들에게 참고가 되길 바라며....,  (p13)


- 우면산 자락에서 정덕희. 

정덕희의 행복충전소 -  https://blog.naver.com/jdhmompoom
 이 글은 <그럼에도 행복하소서>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정덕희 -  그럼에도 행복하소서

중앙북스  -  2008. 0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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