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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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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운 년이 보름은 못 울어 - 에필로그

by 탄천사랑 2022. 5. 21.

·「 박원숙 -  열흘 운 년이 보름은 못 울어」

 


에필로그
어제도 7천5백만 원짜리 어음이 집으로 날아들었다.
잘라도 잘라도 계속 튀어나오는 

귀신의 모가지처럼 나는 아직도 재혼 시절 남편이 저질러놓은 빚에 시달리고 있다.

내가 인생의 굴곡 고비고비마다 울 때, 
'얘야, 힘내라, 열흘 운 년이 보름은 못 우냐?' 하시던 어머니의 말씀이 다시 한번 나를 환기시켰다.

나는 열흘도 울고 보름도 울고. 그리고 또 한참을 눈물 속에 살아왔다.
내가 화려한 연기 생활 속에서 가슴을 치며 속으로 삼킨 울음들을 마지막으로 터뜨리는 기분이다.

인생에서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외면하는 자유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마음. 그 마음을 이제부터는 좀 키워보고 싶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원망하는 일은 하지 말자. 
희망으로 살기에도 인생은 너무 부족하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시내를 흐려놓는다더니, 내가 바로 그 격이었다. 
근 50년을 사는 동안 우리 가족들에게, 

주변의 고마운 사람들에게 못박은 일이 있다면 용서를 구하고 싶다. 
진심으로.  

그리고 나의 사랑하는아들이 

철부지 같은 엄마를 이해하며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것이 늘 고맙다.
이제는 며느리까지 가세해서 너무 든든하고, 또 행복하다.

나의 모든 애기를 다 털어놓았으니 이제는 그만 좀 울어야겠다.
나는 이제 나의 아름다운 과거를 하늘 높이 쏘아 올려 구름이 낄 때마다 감미로운 비를 내리고 싶다.

그리고 나의 아픈 과거는 좀더 가볍게 만들어 

작은 공처럼 통통 땅바닥에 튕기며 내 앞에 난 길을 걷고 싶다.
그 길을 걸으면 즐거울 것이다.  (p327)




내가 보는 박원숙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가 종영되기 3주 전쯤의 일이다.
녹화장에서 박원숙 씨와 마주쳤는데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웬일인지 심상치가 않았다.

"원숙이 왜 그래? 뭐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어?"
"몰라 몰라--"    특유의 순짓인 머리를 뒤로 쓱 넘기며 하는 말,
"아휴~ 내 팔자는 항상 그런 모양이야!"   난데없이 웬 팔자타령인가 해서 그 연유를 물어보았다.
"난 정말 지지리도 남자 복이 없어, 속상해."

그녀의 난데없는 운명론의 근원이 무엇인지 한참 후에야 감이 잡혔다.
<그대 그리고 나>가 한창 결정에 이르렀을 때였다.
캡틴 박의 삼각관계가 이경진 쪽으로 기운다는 대본의 윤곽이 막 보이기 시작했었다.
드라마에서조차 남자 복이 없다는 생각이 들자 신세한탄이 절로 나왔나 보다.
화장이 지워질까봐 손끝으로 눈가를 꾹꾹 찍어대며 세트장으로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애처로운 생각이 들었다.


연기자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배역의 성격을 설정하고 거기에 자신을 완전히 몰입하는 연기자와,
드라마 속의 인물을 자신과 동일시하여 자기처럼 만드는 연기자다.  박원숙은 후자인 것 같다.
홍여사를 자기 자신처럼 느끼다보니 늦은 결혼에 만반의 준비를 다해 놓고 
캡틴 박을 떠나보내야 하는 홍교수의 운명에 팔자타령까지 나온 것이다.

8개월 간의 제작기간을 보내면서 순전히 홍여사로만 살아간 박원숙.
그녀는 자신을 1백% 던지다 못해 영혼까지 바꿔버리는 그런 배우다.

그런 그녀가 책을 냈다.
제목이 '열흘 운 년이 보름은 못 울어?'라니 세상에----,

벌써 아들 범구가 서른이 가까운 나이가 되었는데 아직도 열흘, 

아니 보름 이상도 울 수 있다니,
도대체 무슨 억장 무너지는 사연이 그리도 많은지----,
드라마에서까지 남자복을 원망하는 그녀의 인생사가 고스란히 담겼다고 하니 

얼른 읽고 싶은 충동을 숨길 수 없었다.

역시 박원숙은 오뚝이란 생각을 했다.
비틀비틀하다가도 어느새 우뚝 다시 서 있다.
아직도 소녀 같은 환한 웃음을 머금고 있는 그녀에게 그런 굴곡 많은 인생이 감춰져 있다니-----,

그래도 그녀는 언제나처럼 장밋빛 미래를 꿈꾸리라.

- 최불암.



라일락 꽃향기를 닮은 여자 박원숙
내가 드라마 <한지붕 세 가족>을 통해 박원숙 씨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의 엄청난 미모와 건강함,
재치 있는 입담에다 활발한 모습에 압도되어 감히 접근할 업두도 내질 못했다.

나와는 사뭇 다르게 폭넓고 화려한 인생을 지향하는 극 예술적인 여자로 여겨졌는 데다 
나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들이 모두 박원숙을 좋아하고 있었기에 
어설프게 접근했다가는 큰코 다칠 거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에 대한 호기심을 갖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무리라고 단정하고 나는 그냥 평범하게 대했다.

당시 나는 탤런트로서 이렇다 할 대표작이 없이 방황하며 술자리를 헤매고 있었다.
반면 그녀는 독특하면서도 강렬한 이미지와 테크닉으로 연기에 탁월한 발전과 성과를 올리고 있었다.

때문에 그녀와 <한지붕 세 가족>에 부부로 캐스팅 되었을 때 
나는 박원숙이라는 큰 존재에 압도되어 한 이불 속에 누워 연기할 때면 
가쁜 숨소리를 죽이느라 대사가 떨릴 점도였다는 걸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박원숙은 '순돌엄마'를, 
어린애처럼 울다가는 이내 웃는 순박하고 정다운 여자로 만들기 시작하다가 
굳건한 양심과 따뜻함으로 현실을 포용하는 다부진 여인상으로 표현해 냈다.

그때는 단지 그 드라마가 그녀의 또 하나의 성공작이라고만 여겼는데 
이제와 곰곰히 생각하니 '순돌엄마'의 모습이 바로 박원숙 자신의 숨겨진 모습이란 생각이 든다.

이런 얘기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그 옛날 라일락 꽃향기를 머금은 듯한 그녀의 커다란 미소가 잊혀지질 않는다.
그 미소는 우리들에게 영원히 행복한 추억이 될 것이다.

박원숙의 이번 책은 인기인으로서가 아니라 
여자란 무엇인가를 확실히 보여주는 진실한 그 무엇이기에 격려와 존경을 더하고 싶다.

순돌엄마, 사랑해~ 
(이 말은 다른 여자들에게 한번도 한 적이 없음, 진짜!!!)

- 임현식.  

 

박원숙 - 열흘 운 년이 보름은 못 울어
중앙 M&B - 1998. 0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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