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트웨이츠 - 「토스터 프로젝트」
최근 나는 미국의 환경주의자
데이비드 브로워(세계 최대의 환경단체인 '지구의 벗' 설립자)의 다음 글을 접하게 되었다.
'정치인은 풍향계와 같다.
우리가 할 일은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정확히 누구를 가르키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문화를 바람에 비유한 점은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경제학, 유행, 과학, 문학, 신념, 기술, 이야기, 뉴스, 사건 등이 뒤섞여 문화라는 바람이 부는 방향을 결정한다.
그렇다면 문화라는 바람이 올바른 방향으로 불도록 만드는 일은 우리 모두의 몫이 아닐까?
하지만 사람들은 생업을 가지고 있다.
부업은 가능한 한 피하고 싶어 한다.
원하는 건 여가 시간뿐.
나는 토스터를 만들면서 우리 모두가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이 의존하는지를 깨달았다.
자급자족하는 삶이라는 발상은 낭만적이긴 하지만 공상이나 마찬가지다.
대규모 기아사태를 감수하지 않고서는 더 단순한 시대로 시계를 되돌릴 수 없다.
게다가 이 세상 대다수의 사람들은 시계를 앞으로 돌리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 전기토스터처럼 일상적인 물건에 녹아 있는 역사와 투쟁,
사상과 에너지, 원료들을 들여다보자.
비록 우리가 그 비용을 직접 부담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토스터 너머의 문제로 확장해서 우리가 사고자 하는 물건의 내구성을 꼼꼼히 따지고,
물건을 조립할 때 엄청난 정성과 돈을 쏟아붓듯 분해하는 일에도 각별히 신경 써야 할 것이다.
아무래도 모든 상품에는 설명서가 두 개 있어야 할 것 같다.
제품을 조립하고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 주는 설명서 하나,
이걸 다시 분해해서 여러 가지 부품이나 원료로 분류한 뒤 재료의 품질을 유지한 채
다른 제품의 원료로 공급하는 방법을 알려 주는 설명서 하나, 이렇게 말이다.
‘소비자’가 더 이상 쓰지 않는 물건을 분해해서 분류한다는 게 그렇게 비현실적이기만 한가?
지금 당장은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저녁 내내 낡은 토스터나 텔레비전을 분해하고 앉아 있다니? 보건과 안전문제 역시 쉽지 않을 것이다.
(“1단계 : 가전제품의 전원을 뽑으세요. 전원에 연결된 상태에서 토스터를 분해하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내일이 오늘과 같을 수만은 없다.
이런 상상은 전혀 즐겁지도, 유용하지도 않고 오하려 위험할 뿐이다.
은행들이 그토록 대출을 남발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들은 현 상태를 앞으로도 유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미 많은 통계자료들이 끔찍한 결과를 가져올 충돌을 피하려면
어느 정도의 혁신이 필요한지 함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한 통계에 따르면 파괴되거나 지속 불가능한 방법으로 이용되는 생태계 '서비스'가 60퍼센트를 넘는다.
여기서 말하는 생태계 서비스란 깨끗한 물, 청정한 공기, 생명의 토대가 되는 흙 등
우리가 환경에서 얻을 수 있는 중요한 자원을 말한다.
그 외에도 위험을 경고하는 많은 통계들이 있다.
핵심은 앞으로 큰 변화가 필요하고, 이미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낡은 텔레비전을 직접 해체할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에게 맡기고 이에 대한 비용을 지불할지는 사실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원치 않는 물건을 버릴 때 매우 신중해져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토스터를 만들면서 여러 곳을 둘러보는 좋은 시간을 가졌다.
절대 아무 데도 내버릴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좀 식상한 표현이긴 하지만 이 시간은 너무나도 많은 기억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스코틀랜드 고원에서의 산책,
웨일스 파리스 산에서 갱도를 기어 오른 일, 클리어웰 동굴에 있던 크리스마스 장식들…….
감정과 그 감정에 결합된 의미를 가진 물건들은 어느 정도 역사성을 띤다.
그래서 사물의 기원이 중요하다.
아무래도 학교에서 토스터나 주전자, 작은 전자레인지를 직접 조립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러면 아마도 이런 물건들을 더 오래 간직하면서 고쳐 쓰고 잘 관리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물건은 단순히 가게에서 사 온 물건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될 수도 있으리라. (p189쪽)
※ 이 글은 <토스터 프로젝트>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토머스 트웨이츠 - 토스터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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