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종. 김희준 - 과학으로 수학 보기」
저자의 말
올림픽 경기가 한창인 아테네에서
한국의 양궁 선수가 쏜 화살이 포물선 비슷한 곡선을 그리며 과녁의 한가운데에 꽂히는
멋있는 장면이 전파를 통해 안방에 배달되던 어느 무더운 여름날,
유명한 화학자 한 분이 시내에서 시원한 차 한 잔 하자고 하셨다.
우리, 길거리 사람들을 위하여 수학과 과학 이야기 한 번 같이 써보면 어때요? 좋습니다.
다음 주, 몇 가지 주제를 이메일로 받았고, 거기서 싹튼 것이 바로 이 책이다.
궁리의 김현숙 선생은 주제와 같은 이름의 제목들이 너무 딱딱하다고 여러 번 지적하였다.
그래서 '소수 素數'는 '쪼갤 수 없는 것'으로,
'정수 整數'는 사르트르의 책 제목을 따서 '존재와 무'라 하였고,
'분수와 비율'은 그리스어를 따서 '로고스'라 하였다.
우리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방법을 다른 단원의 제목인 '진법'은 '불립문자 不立文字'로 고쳤고,
'원주율'은 '돌고 도는 세상'으로 하였으며, '넓이'외 '부피'는 각각 '땅은 넓고'와 '하늘은 높고'가 되었다.
'미분과 적분'은 오늘날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고, 차량의 위치를 추적하고, 일기예보를 하며,
오래된 화석의 연대를 측정하는 데에도 쓰이는 산법인데,
''(현제를) 알면 (미래가) 보인다'라는 것을 연상하여 '인과응보' 라는 제목이 되었다.
'평균'은 '중용'이 되어 한평생 중심 잡고 사는 것을 연상하였고,
'확률'이라는 제목은 아인슈타인의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라는
유명한 말과 대비하여 '주님의 뜻'으로 바꾸었고,
필자가 의도적을 추가한 단원인 '기계'는 '깸'으로 제목을 바꾸었으니,
마침내 김 선생이 원하는 바가 이루어 졌기를 바란다.
필자가 정성을 들여 그린 그림이나 아름다운 식,
특유의 문체 등이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조금 변한 것도 있지만,
처음 던져진 주제를 마다하지 않았듯이 크게 신경 쓰지는 않는다.
여러 가지 대상들 사이의 관계 중에서 가장 으뜸인 관계는 '같음'이라는 것이다.
인류의 위대한 발견들은 대부분 이 관계를 아는 것이다.
전기와 자기가 둘이 아니고,
인간과 동물이 둘이 아니며,
시간과 공간이 다르지 않고,
물질과 에너지, 사랑과 증오, 너와 나, 부분과 전체 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발견들이 있다.
선각자들은 철학, 수학, 과학, 기술, 예술, 사회, 자연 등을 가리지 않았는데,
아직도 이들을 가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불량식품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몸을 위한 음식뿐 아니라, 마음을 위한 글들도 불량품은 사라져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싸구려 수학만 접하고
참 수학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 '좋습니다'라고 말하긴 하였는데,
독자들에게 조금이라도 향기를 느끼게 하였다면 필자는 만족이다.
베울 '학 學' 앞의 '수 數'는 사물의 이치를 뜻한다.
초고의 애매한 표현들을 바로 잡아준 쌍둥이 가족에게 감사드리며
2005년 3월 ㄱ ㅎ ㅈ
호킹의 일생에 관한 책을 읽다 보니 커피 탁자에 놓인 책은
핸드백의 구치 상표나 셔츠의 악어 표시와 같다는 말이 나온다.
교양이 바로 그런 게 아닌가 한다.
꼭 있어야 되는 것은 아니지만 구치 상표나 악어 표시가
상품의 가치를 수십 배나 높이는 것처럼 교양도 어떤 사람의 품격을 높여준다.
그런데 21세기를 사는 현대인에게 가장 중요한 교양은 무엇일까?
나는 감히 우주와 생명에 관한 전반적인 이해라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의 근원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자연을 부분적으로 이해하는 단계에서는
각각의 부분에 대한 이해를 필수적인 교양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우주가 생기고 140억 년 후,
그리고 지구상에 생명이 탄생한 지 40억 년 후 생명은 과학을 하는
호모 사이엔 이 피쿠스 Homo Scientificus까지 발전했다.
특히 20세기에 이루어진 획기적인 과학의 발전으로
드디어 인간은 우주와 생명의 기원과 진화를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평생을 고아로 살다가 살아 있는 부모를 찾았다면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자연의 이해를 교양이라고 말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부분적으로 흐릿하게 보이던 자연이 전체적으로 분명하게 보이면
교양 수준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이 쉽고 재미있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자연의 언어는 수학이다.
생명의 언어는 화학이고, 화학의 언어는 수학인 것이다.
생명의 언어는 화학이고, 화학의 언어는 물리학이고,
물리학의 언어는 수학이기 때문에 자연의 궁극적 언어는 수학인 것이다.
그래서 우주와 생명을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일은 수학을 필요로 한다.
다행히 우리나라 학생들은 수학 공부를 많이 한다.
그래서인지 과학도 잘 한다.
그런데 아쉽게도 학교 수업에서도 EBS 강의에서도 수학과 과학은 따로 논다.
수학과 과학의 연결고리를 찾아주면 각각의 의미가 살아나고
공부가 재미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에서 이 책을 생각하게 되었다.
다행히 수학을 재미있게 가르치는 김홍종 교구와 팀을 이루어 이 책이 나오게 되었다.
<과학에서 수학 보기>에서는 우주와 생명의 역사를 몇 장의 우주적 드라마로 구성하고
관련된 과학의 내용들을 통해 기본적인 수학의 개념과 연산 방법을 이해시키도록 노력했다.
독자에 따라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학생이라면 학년이 올라갈수록,
일반인이라면 교양의 폭이 넓어질수록 이해하는 폭도 넓어지리라 믿는다.
이 책의 의도를 받아들여준
과학도 출신 궁리 이갑수 대표와 편집부 김현숙 씨에게 감사를 드린다.
2005년 3월 관악에서 김희준.
1. 우주와 생명 (서론)
자연과학 전체를 요약할 수 있는 두 개의 키워드를 고르라면 우주와 생명이 아닐까 한다.
우주는 과학이 대상으로 하는 자연 전체를 나타내는 말이고,
생명은 자연의 일부에서 볼 수 있는 특수한 현상이다.
그런데 우리 자신이 생명체이기 때문에, 생명은 우리의 중요한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생명이 없다면 우주와 생명을 논할 우리 자신이 있을 수 없다.
구래서 우주는 어떻게 생기고 진화해서
우주의 원리를 파악할 능력을 지닌 생명체를 만들어냈나 하는 문제로 과학의 주제는 귀결된다,
하루의 계획은 아침에 달려 있고,
일 년의 계획은 첫날에 세워야 하며, 일생의 계획은 젊은 시절에 세워야 한다고 했다.
아인슈타인은 나라면 어떻게 우주를 기획할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과연 우주는 어떻게 기획되었을까?
우주의 기본 원리는 무엇일까?
우주의 기본 언어는 무엇일까?
생명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지구에 살고 있는 특별한 생명체다.
우리에게 적용되는 생명의 원리는 우주적인 폭넓은 것일까.
아니면 지구에만 적용되는 특수한 것일까?
외계에도 생명이 있다면 그 생명체는 어떤 원리와 방식에 따라 태어나고 살아갈까?
천사 질문 The Angel Ouestion
우주는 생각보다 훨씬 크고 넓다.
그리고 나이도 많다.
우주의 나이는 150억 년 정도, 더 정확하게는 137억 년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널리 받아들어지는 빅뱅 우주론에 따르면
우주는 약 137억 년 전에 대폭발로 시작해 지금까지 계속 팽창하고 있다고 한다.
137억이 얼마나 큰 수인지 감을 잡기 위해 사람이 100년을 산다고 가정하고
100년이 몇 초에 해당하는지 생각해 보자.
1분 = 60초
1시간 = 60분 = (60) (60) 초 = 3.600초.
1일 = (24) (3.600) 초 = 86.400초.
1년 = 365일 = 31. 536. 000 (약 3천만 초)
100년 = 약 32억 초.
100년은 약 32억 초이다.
그러니까 137억이라는 수는 100년을 초로 세어서 다시 4를 곱한 수에 가깝다.
태어나서 1초에 하나씩 수를 센다고 해도 약 400년이 걸려야 나이를 다 셀 수 있다.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우주에는 약 1천억 개의 은하가 있고,
각각의 은하는 약 1천억 개의 별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우주가 그렇게 크고 넓다면 혹시 지구 밖에도 생명체가 있지 않을까 궁금해진다.
만약 갑자기 천사가 나타나서 단 하나의 질문에 대해서만 답을 가르쳐 주겠다고 하면 무얼 물어볼까?
많은 사람에게 소위 이 '천사 질문'은 외계에 생명이 있을까 하는 질문이라고 한다.
사람은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질문에도 천사는 답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
'천사 질문'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과연 어떤 질문에나 답을 할 수 있는 천사가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아무튼 많은 사람에게 과연 지구 바깥 외계에 생명 채가 있을까 하는 것은
아주 궁금한 문제이다.
아레시보 성간 메시지
외계 생명체에 관한 천사 질문에는 답이 있을까?
답이 있다면 그 답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인간은 그 답을 알아보려고 신호를 보낸 적이 있다.
무슨 신호를 어디에 보냈을까?
우선 어디에 신호를 보내는 게 좋을까 생각해 보자.
달이나 화성에 보내보면 어떨까?
달에는 벌써 사람이 다녀왔지만 거긴 아무도 없었다.
화성에도 몇 차례 탐사선을 보냈는데, 찍은 사진을 보니 눈에 띄는 생명체는 없었다.
사람의 눈으로 식별할 수 없는 크기의 생물도 있으니까
카메라에 안 잡혔다고 해서 생명체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생명의 흔적을 찾을 때는 생명체가 대사 활동을 해 생기는 화합물이 있나 조사를 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간접적인 방법을 사용하는데,
일단 생명 존재 여부를 조사할 때는 우선 물이 있는지를 알아본다.
물이 있으면 생명체가 있다고 볼 수 있을까?
물이 있다고 꼭 생명체가 있으리라는 법은 없지만,
일단 물이 없으면 생명이 있을 가능성이 희박하다.
얼마 전에 화성에서도 과거에 물이 흐른 흔적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러나 생명체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아무튼 지금으로서는 태양계 내의 다른 행성에 생명이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태양계 바깥으로 신호를 보내야 한다는 말이다.
태양에서 제일 가까운 별이 4광년 정도 거리에 있으니까 신호가 빛의 속도로 가도 4년은 걸린다.
별에 생명체가 있을 수 있을까?
별의 표면 온도는 수천 도나 되니까 별에는 생명이 있을 수 없다.
원자들 사이의 화학 결합이 깨지기 때문이다.
지구 같은 행성을 가진 별을 찾아야 하는데 일단 제일 가까운 별이 그렇게 멀리 있으니
생명이 있는 행성에 신호가 갔다가 되돌아오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은하계 1천억 개의 별 중 지구 같은 조건을 갖춘
행성을 거느린 별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 당대에 회신을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실제로 1974년 11월 16일 푸에르토리코에 있는 아레시보 전파 천문대 Arecibo Observatory에서
우리가 속한 은하계 내의 구상성단 M13이라고 알려진 별들로 마이크로파를 보낸 일이 있었다.
마이크로파는 음식을 데우는 전자레인지나 이동 통신에서 사용하는 파장의 전자파이다.
구상성단은 오래된 별들의 집단이다.
생명이 태어나고 우리가 보낸 메시지를 해독할 수 있을 정도로 진화하려면
시간이 걸릴 테니까 오래된 별로 보낸 것이다.
그럼 신호를 보낸 지 30년이 지났는데 무슨 대답이 왔을까?
실망스럽게도 아무 연락이 없다.
그 신호는 아직 태양계에서 아주 가까운 별을 지나가고 있을 테니까
수백 년 후에나 다시 한번 무슨 소식이 있나 알아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이처럼 외계 생명을 찾는 일은 엄청난 끈기가 필요하다.
그때 보낸 그 메시지를 아레시보 성간 메시지 Arecibo Interstellar Message라고 한다.
외계인과 대화할 때 어려운 점은
누구한테 보내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무어라고 신호를 보내야 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외게에 한국 사람이 살고 있다면 한국말로 신호를 보내면 되겠지만,
이건 생명체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면서 신호를 보내는 판이니
도대체 어떤 말로 무슨 내용을 적어 보내야 할지 막막하다.
알아들을지 어떨지 모르지만 일단 신호를 보내놓아야 할 텐데
그러자면 그래도 가장 알아들을 만한 내용을 보내야 될 것이다.
그래서 결국 무얼 적어 보냈을까?
전파를 보냈으니까 '적었다'라고 할 수는 없을 테지만,
아무튼 과학자들이 오랜 궁리 끝에 결정한 아레시보 성간 메시지의 내용을 알아보자.
그리고 자연의 언어인 수가 어떻게 이 메시지에 녹아들어 있나 살펴보자.
출처 - 위키백과
제일 위에 있는 것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1에서 10까지 수이고,
그다음에는 다섯 가지 원소의 원자번호,
그다음에는 모든 생명체가 유전 정보를 기록하는 데 사용하는 네 가지 염기,
그다음은 DNA의 이중나선 구조,
그리고 사람 DNA의 염기쌍 수 30억,
사람의 키, 인구 수 등이고,
아래쪽에는 태양계와 아레시보 천문대가 그려져 있다.
이런 내용을 마이크로파에 실어서 보내고
혹시 저쪽에서 알아듣고 신호를 보내오지 않을까 기다리는 것이다.
왜 하필 그런 내용을 보냈을까?
수 : 자연의 언어
수확과 과학의 여러 분야 중 어느 분야가 제일 기본일까?
대학의 학과를 이야기할 때도 '수물화생' 식으로 말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수학이 기본인 듯하다.
수식이 없이는 물리나 화학을 가르치고 배우기 어려울 것이다
초등학교에서도 국어와 산수를 제일 많이 공부한다.
한국어가 우리 민족의 언어라면 수는 자연의 기본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중, 고등학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국영수의 공통점은 이들이 모두 언어라는 점이다.
수의 기본은 하나, 둘, 셋처럼 개수를 세는 데 사용하는 자연수이다.
다시 말하면 자연수는 1, 2, 3... 같은 양의 정수이다.
그래서 어딘가에 생명체가 있다면 거기에도 자연수가 기본일 것이라 생각하고
아레시보 메시지의 첫 대목에 1부터 10까지의 자연수를 적은 것이다.
자연의 언어는 수라는 사실을,
그리고 수의 기본은 자연수라는 사실을 대외적으로 선포한 것이다.
갈릴레오 Galileo도
'자연의 커다란 책은 그 책에 쓰인 언어를 아는 사람만이 읽을 수 있다.
그 언어는 바로 수학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레시보 메시지에서는 1부터 10까지의 자연수를 10진법이 아니라 2진법으로 적었다.
10진법에서는 1에서 9까지 1단위의 기본수가 있고, 그다음 자리는 10단위이다.
그런데 2진법에서는 0과 1 두 수가 기본이다.
그러니까 10진법에서 2는 2진법에서는 10이 된다.
컴퓨터에서도 2진법을 사용한다.
그러니까 10진 법보다 2진법이 더 기본이다.
사람은 손가락이 열 개니까 10진법이 편하지만
딴 세상에서는 10이라는 수가 별다른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2라는 수는 훨씬 더 기본적이다.
맞다, 틀리다, 오른쪽, 왼쪽, 있다, 없다 식으로 말이다.
그러고 보면 2진법이 더 기본인 것 같다.
아무튼 수는 어디에서나 기본이니까 우선 수를 이야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외계인들도 식구 수를 세고 나이도 셀 테니까 말이다. (p19)
※ 이 글은 <과학으로 수학 보기>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김홍종. 김희준 - 과학으로 수학 보기
궁리 - 2007. 05. 28.
[t-07.08.20 210803-07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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