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갑영 - 카론의 동전 한 닢」
성공하는 정책, 실패하는 정책
시장친화적인 정책을 생각해 보자.
시장과 정부는 수레의 두 바퀴와 같다.
'시장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움직이고, 정부는 '보이는 손'에 의해 운영된다고 한다.
수레의 두 축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 수레가 제대로 굴러갈 수 없다.
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않으면 경제는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정부 정책이 왜곡되거나 실효를 거두지 못해도, 경제는 밝은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물론 시장도 정부도 실패할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러나 정부 정책이 실패하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불러온다.
정부 정책은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시장을 특정한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설비투자가 부족하면 투자를 늘리도록 유도하고,
부동산이 과열되면 진정시키는 정책수단을 활용하여 시장에 신호를 보내는 것이 바로 경제정책이다.
따라서 정부가 신호를 잘못 보내면 수많은 경제주체가 '빨간 불'에서도 길을 건너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정책이 성공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인가?
왜 어떤 정책은 정부가 모든 정책수단을 동원해도 실패로 끝나는가?
단기적으로는 성공하는 듯하던 정책이 결국에는 실패로 끝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성공하는 정책과 실패하는 정책을 갈라놓는 핵심적인 요인은 무엇일까?
성공하는 정책의 핵심 요인은 첫째, '시장의 신뢰'를 받는 것이다.
모든 경제주체가 정부 정책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있어야만 성공을 거둘 수 있다.
정책의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실은
카드 조각이 화폐로 사용되었던 캐나다의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1685년 캐나다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프랑스가 임명한 캐나다 총독 자크 드뮬 Jacques Demeulle은
본국에서 '통화'를 공급받지 못해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당시 캐나다는 프랑스의 지배를 받고 있었지만, 수년 동안 본국에서 화폐를 공급받지 못했다.
프랑스는 전쟁과 왕실의 재정난으로 몇 년째 정화 正貨를 보낼 수 없었고,
돈이 고갈된 캐나다는 큰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런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총독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바로 프랑스 군인들이 즐겨 쓰는 오락용 카드를 4등분 하여 화폐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과연 국민들이 얼마나 믿어줄까,
어떻게 카드가 돈으로 통용될 수 있을까라며 반대하는 장관들이 많았다.
그러나 총독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국민들이 자신을 신뢰할 거라고 확신했다.
총독은 카드 조각마다 직접 서명하고, 정화 正貨로 상환하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총독에 대한 신용이 없다면 종이 조각에 불과한 그림 조각을 누가 받아주겠는가.
그러나 그 조잡한(?) 카드 조각은 무려 65년 동안이나 법정화폐로 통용되었다.
시장의 총독에 대한 신뢰가 카드 조각을 화폐로 바꾼 것이다.
시장이 신뢰하면 정책당국의 말 한 마디가 온 천지를 뒤흔든다.
미국 FRB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인
그린스펀 Alan Greenspan이 선택하는 단어 하나가 세계의 금융시장을 긴장시키지 않는가.
그러나 시장으로부터 신뢰를 잃게 된다면 그때부터는 백약이 무효하다.
'콩으로 매주를 쑨다' 해도 시장은 믿어주질 않는다.
정부의 경제정책이 제대로 효과를 나타내려면, 시장의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신뢰가 없는 정책은 소기의 성과를 달성할 수 없고, 오히려 시장에 혼란만 줄 뿐이다.
부동산 정책도 마찬가지다.
그 수많은 엄포와 경고,
투기억제 정책에도 불구하고 '강남불패'의 신화를 꺾지 못하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했기 때문 아닌가?
부동산 정책이 신뢰를 잃은 사이
서울은 자랑스럽게도 세계에서 임대 수익률이 가장 높은 도시로 부상하지 않았는가.
둘째, 일관성을 갖는 것이다.
일관성은 정부가 경제주체에게 지속적으로 동일한 신호를 보내는 것을 의미한다.
정책의 일관성이 결여되면 아무도 정책이 오래 지속되리라고 믿지 않는다.
결국 국민들은 모든 정부 정책을 불신하게 되는 것이다.
여러 정부부처가 똑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도 일관성에 해당된다.
제대로 실시하지도 못할 정책을 미리부터 떠들어 대다가
실제로는 용두사미 龍頭蛇尾로 끝나는 것도 일관성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선거 때만 되면 부상하는 정책,
교묘하게 말만 바꾸는 정책,
내용도 없이 미사여구로 치장된 정책,
부처마다 제각각인 정책,
외국인과 내국인을 구별하는 정책,
장관이 바뀔 때마다 수시로 바뀌는 정책은 모두 일관성에 흠집을 내는 것이다.
일관성이 없는 정책은 믿음을 상실하고, 오히려 경제주체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그동안 부동산 정책은 얼마나 일관성이 있었는가?
경기가 침체되면 경기부양을 위해 맨 먼저 동원된 정책이 바로 부동산 정책이었다.
부동산 경기를 부양한다고 요란스레 떠들다가도
2-3년 지나 이번엔 투기 과열을 억제하겠다고 나선다면 시장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역시 얼마 동안만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아무리 양도세가 높아도 얼마 동안 팔지 않으면 그만 아닌가.
선거 때만 되면, 경기가 침체되면, 머지않아 옛날로 되돌아 갈 텐데 왜 시장이 움직이겠는가.
일관성의 결여는 여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노동정책에서도, 금융정책에서도 일관성을 상실하면 정책의 효율성이 크게 저하된다.
일관된 정책으로 노동시장을 안정화시킨 역사적 사례는 미국 레이건 Ronald Reagan 대통령과
영국의 대처 Margaret Thatcher 수상으로부터 찾아 볼 수 있다.
1981년 8월 3일, 미국은 사상 초유의 공항 마비 사태를 겪었다.
1만 3천 명의 항공 관제사들이 파업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정부와의 오랜 협상이 결렬되자 관제사 노조는 파업을 강행하며 세 가지 조건을 요구했다.
1만 달러의 급여 인상과 40시간에서 32시간으로의 주당 근무시간 감축, 그리고 퇴직수당 인상.
그러나 항공운항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공공서비스 부문의 파업에 대처하는
레이건 행정부의 태도는 과거와는 달랐다.
48시간 내에 복귀하지 않는 관제사를 무조건 해고하기로 한 것이었다.
게다가 재취업을 금지한다는 초강경 방침도 덧붙였다.
누가 이 조치를 선뜻 받아들이겠는가?
그렇게 많은 관제사를 해고하고, 재취업까지 금지할 수 있겠는가?
초기에 레이건의 조치는 위협적인 것으로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따라서 관제사들의 파업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시간 내에 복귀하지 않은 1만 1,350명의 관제사가 '일관된 정책'의 실시로 해고되었다.
정부는 한시적으로 비행을 통제하고 항공 서비스를 감축했으며 군 인력까지 동원하여 대응했다.
수많은 법적 투쟁이 지속되었지만,
공항으로 되돌아 갈 수 없는 관제사들은 결국 직업을 바꿔야만 했다.
영국에서도 1984년 유사한 사태가 벌어졌다.
20개 탄광의 폐쇄와 2만 명의 인력 감축을 골자로 한 석탄산업 구조조정 계획에 맞서
세계 최고의 강성 노동조합으로 알려졌던 영국 탄광 노동조합이 총파업에 나섰던 것이다.
당시 마거릿 대처 수상은 타협에 익숙했던 과거 정권과 달리
탄광 노동조합의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일관성 있게 대응했다.
그리하여 공급과잉 속에 비효율이 심각했던 정부 소유의 석탄산업을
성공적으로 개혁하고 민영화할 수 있었다.
대처는 '법이 폭도의 논리에 제압될 수 없다'라는 명언을 남기고 ‘고용법’까지 개정하였다.
탄광 노동자들은 결국 백기를 들었다.
강성 노동조합과 강한 정부가 부딪치면 균형은 어디로 갈까.
불법파업에 대응하는 정부와 노동조합의 협상도 이 범주에 포함된다.
관제사나 탄광 노동조합이 처음부터 정부의 강경 방침을 '신뢰'할 수 있는 위협으로 받아들였다면,
파업은 오래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 계속된 관행으로 정부의 '말'이 전혀 위협으로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무리한 투쟁을 계속했던 것이다.
정부가 일관된 신호를 보내면, 협상의 질서는 쉽게 균형으로 간다.
그러나 신호가 오락가락하면 교통사고가 나기 마련이다.
셋째, 시장성을 갖는 것이다.
정책의 내용에 시장을 움직이게 하는 요소를 담고 있어야 한다.
시장은 누가 움직이는가? 당연히 경제주체가 움직이게 한다.
따라서 정책의 시장성이란 경제주체의 마음을 움직이는 요소를 말한다.
출퇴근 시간의 버스 전용차선제를 생각해 보자.
도로는 한정된 자원이다.
이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도로 이용자들을 일사불란하게 통제할 수 있는 정책이 요구된다.
그래서 도입된 ‘전용차선제’가 잘 지켜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위반하면 경제적 부담이 되기 때문에 조금 늦게 가도 모두가 전용차선을 지킨다.
만약 범칙금이 너무 싸다면 많은 사람들이 위반하게 될 것이다.
이 간단한 사례가 바로 시장지향적인 정책의 표상이다.
부동산 정책도 마찬가지다.
여유 돈이 있는 사람들은 세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한다.
예금을 들거나, 주식을 사거나, 부동산에 투자한다.
모두가 비용과 수익을 분석해서 투자한다.
무엇이 가장 낮은 위험과 비용으로 최대 수익을 얻을 수 있는가.
한국에서는 역사적 경험의 결과 부동산이 최저의 비용으로 최고의 수익을 창출한다.
따라서 국민들이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이 흐름이 바람직하지 않다면, 부동산 투자의 비용을 높이고 다른 투자의 수익을 높게 해야 한다.
투자의 비용은 당연히 보유세에 달려 있다.
양도세는 보유의 비용이 아니라 수익의 일부를 환수하는 것이다.
따라서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는 정공법은 바로 보유세를 인상하는 것이다.
양도세 인상은 오히려 거래를 위축시키는 역효과를 가져온다.
실제로 우리의 재산세는 선진국의 10분의 1도 안된다.
보유세 인상으로 투기를 억제할 때에는 1가구 1주택인가, 3주택인가를 구분할 필요도 없다.
보유 부동산의 시가가 얼마 이상일 때 누진세율을 적용하면
서민도 보호할 수 있고 투기도 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기에 보유세를 인상하기 어렵다면 5~10년의 계획을 마련하고, 직접 실행에 옮겨야만 한다.
그 많은 투기억제용 세금을 보유세로 단일화하고
누진구조의 세율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 올리면, 누가 부동산에 투기를 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재산세는
조세저항과 서민보호를 이유로 일관성 있게 현실화되지 못 했던 것이다.
이 결과가 누적되어 직장인의 70%가 여유가 있다면 부동산에 투자하겠다는 '현실'을 만든 것이다.
누가 부동산에 투자하는 국민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그들은 오히려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합리적인 선택을 했을 따름이다.
이런 형태가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면,
당연히 보유비용을 크게 만들어 스스로 부동산을 갖지 않도록 유도해야 하는 것이다.
신뢰성이 없는 정책,
조령모개 朝令暮改 식으로 오락가락하는 정책,
시장을 움직이지 못하고 강압적으로 밀어붙이는 정책,
내용은 빈약하고 형식만 요란한 정책은 성공할 수 없다.
정부 정책의 효율성이 떨어지면 어떻게 2만 달러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잘못된 신호등 때문에 사고만 빈발할 따름이다. (P41)
※ 이 글은 <카론의 동전 한 닢>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정갑영 - 카론의 동전 한 닢
삼성경제연구소 - 2005. 08. 24.
[t-07.08.22. 210803-07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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