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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작가책방(소설/ㄱ - ㄴ

우리말 꿈

by 탄천사랑 2007. 7. 6.

 

 

 

여자가 말할 땐 확실한 말만 합니다 - 김송희 / 푸른 꿈 1990. 12. 05.

"엄마, 엄마는 꿈을 어느 나라 말로 꾸어요?"

아직 이른 새벽인데 둘째 딸아이가 소란을 떠는 바람에 눈을 떴다.
"엄마, 꿈을 꾸었는데요, 우리말 꿈을 꾸었어요.
 참 우습죠? 보통 때 나는 영어로만 꿈꾸었는데 어젯밤엔 우리말 꿈을 꾸었다니까요."
"무슨 꿈인데?"
"모르겠어요. 잘 생각은 안 나요."

다 큰 아이가 눈을 반짝이며 
어린애 같은 소리를 하니 귀엽고 우스워 이불자락을 들치고 내 옆으로 끌어 들었다.

"엄마는 말이다.
 우리말 꿈밖엔 꾼 기억이 없어.
 아마 네가 요즘 한국학교에다 한국교회를 나가게 되니까 꿈도 한국꿈을 꾼 모양이지...,
 그런데 기억이 없다는 건 실망인데.
 너는 한국사람이니까 한국말은 기본이라는 걸 알겠지?"

나는 딸애의 말꼬리를 물고 여지없이 설교투다.
딸애의 마음 깊은 곳에 착잡한 그 무엇이 자리하는지 조용해진다.

나는 괜시리 딸아이를 우울하게 했다 싶어 아이를 내려다보며 머리를 쓸어 올려 준다.

생각해  보면 우리 아이들만큼 불행한 아이들도 없다.
할머니, 이모, 고모, 삼촌...., 품에 맘껏 안겨 보지 못한 채,
덜렁 우리 가족만 남의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빠, 엄마의 꾸중을 듣고 뛰쳐나가도 
마음을 위로받을 피붙이 하나 없으니 얼마나 외로운 아이들인가.

어릴 적에 나는 아버지께 꾸중을 들을 때마다 이웃에 사시는 외할머니댁으로 달라가곤 했었다.
슬쩍 뒷문을 빠져나가 외활머니 품속으로 뛰어들면, 
언제나 할머니는 내 편이 되어서 오히려 아버지를 나무라 주시기도 했었다.
그런 외할머니가 계셔서 아무리 혹독하게 꾸중을 들어도 나의 가슴엔 멍이 깊지 않았다.

한국말로 꿈을 꾸었다고 아침부터 수선을 떤 딸아이를 내려다보고 있으니
가여워서 가슴이 아려온다.


※ 이 글은 <여자가 말할 땐 확실한 말만 합니다>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t-07.07.06.  20220724_073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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