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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책방(소설/ㄱ - ㄴ

김동영 - 나만 위로할 것

by 탄천사랑 2011. 2. 16.

· 「김동영 - 나만 위로할 것」



그 길은 사람이 자주 오고 가는 길은 아니었다.
마음 한쪽 구석에 있는 길은 산 정상으로 이어져 있었는데, 산 정상에는 오래된 산장이 하나 있다고들 했다. 
나는 그 길을 따라 산장으로 올라가고 있었고 넌 사륜구동 오토바이를 타고 흙먼지를 풀풀 날리며 내려오는 길이었다.
오후가 막 시작되려고 하는 시간에 우리는 어느 길목에서 마주친 것이다.
워낙 인적이 없는 길이기에 우리가 마주쳤을 때는 인사 대신 작은 미소만 주고받았다.
그런 다음, 다시 갈 길을 가려는데 네가 뒤를 돌아 내게 소리쳤다.

"어디로 가는 거야?"  너의 소리에 고개를 돌려 널 바라보며
"그냥, 이 길을 따라가면 마을 전체가 보이지 않을까 해서"라고 소극적으로 말했다.

넌 내 말이 잘 들리지 않는지 오토바이 시동을 끄고 말했다.

"마을 전체를 보려면 정상까지 가야 하는데?!
 걸어서는 두 시간 정도 걸릴거야.
 하지만 별로 볼 건 없다는 아품이 있어. 그냥 작은 마을이 내려다보일 뿐이라구."

난 네게 
"그럼 산장은 어때?
  거기 오래된 산장이 있다고 하던데?"  넌 시동을 다시 걸어 내 쪽으로 다시 거슬러 올라왔다.
"그 산장, 지금은 아무도 안 살아.
  사용하지 않은 지 한 5년도 넘었을 걸.
  어쩌면 좀 무서울 수 있어"  난 말을 듣고 어떻게 해야 할지 그 자리에 서서 조금 망설였다.

"음.... 그래?"  난 네게 다시 물었다.
"특별한 게 없다는 말이구나?"  넌 뭔가 대단한 비밀을 이야기해주는듯
"특별한 거라?
 글쎄 난 여기서 23년을 살아서 그렇게 특별한 건 없는 거 같은데,
 굳이 특별한 걸 얘기하자면 굉장히 조용하다는 거지.
 이 길은 정말 조용해.
 물소리도 새소리도 아무것도 안 들려.
 그래서 왠지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 같다는 정도? 지루하다고 해야 하나?" 라고 했다.
"무지 조용하다고? 그거 괜찮은데?" 라고 말하니 넌
"진짜 가볼 거야?"라고 묻는다.
"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 뭐, 시간도 너무 많아.
  차가 없어서 버스가 있는 내일까진 꼼짝도 못 하니깐"
"그래? 그럼 내가 테워줄까?"
"아, 친절은 고맙지만 그냥 걸어 가볼께.
  근데 넌 어디 갔다 오는 건데?"

나는 그가 귀신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힘을 주어 물었다.
 
"난 겨울이 오기 전에 오토바이를 테스트해보려고 그냥 다녀왔어.
  오토바이 타고 가면 금방이거든."  

너는 다시 내게 말했다. 

"그러지 말고 그냥 내가 태워 다 줄게.
 정말 거기엔 아무것도 없어. 실망할지도 몰라."  난 작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정말 고마워.
  하지만 그냥 걸어서 갈게.
  그냥 어디든 걷고 싶으니깐"  넌 이런 나의 고집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알았어. 
  그럼. 조심히 다녀와.
  뭐, 아무도 없고 길은 하나로만 뚫려 있으니깐 위험한 것도 없겠지만."

그렇게 우리는 작별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넌 먼지를 일으키며 마을로 내려갔고 난 가던 길을 계속 갔다.   
난 인적 없는 그 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아마 내가 이곳에 살고 있다 해도 나 역시 이 길을 지루하다고 생각하고는 가지 않았겠지.  
하지만 난 지금 여행 중이니까 세상의 그 어떤 길이라도 새롭고 흥미가 있어. 
그래서 너의 친절도 거절하고 이렇게 걷는 거야.
내가 이제까지 걸어본 적 없는 이 길을 
그리고 앞으로도 걸을 일 없는 이 길에 나만의 의미를 부여하며 걷는 거지.
마치 나의 길이라도 되는 듯이, 
내가 처음 발견한 길이라도 되는 듯이 말이지.

그리고 넌 이 길에 아무것도 없다고 했지만 난 그 길에서 산들바람을 만났고
네가 남기고 간 타이어 자국도 발견했으며 그리고 누군가 버리고 간 장갑 한 짝도 찾아냈어.

넌 모르겠지만 이게 여행인지도 몰라.
그래서 꽤 많은 대가를 지불하고 여기까지 온 것인지도 몰라.  
마치 돌과 돌이 부딪혀서 불꽃을 만드는 것 같은, 
실제로는 아무것도 아닌데 정말로 굉장한 그 무엇을 만나게 되는 그런....,

언젠가 너도 나처럼 
먼 길을 떠나게 된다면 길에서 만난 누군가가 
'거기 가면 아무것도 없어'라고 말해도 계속해서 그 길을 가보렴,
그땐 내 고집을 
그리고 한 걸음 다가가면 두 걸음씩 가까워지는 
길들의 풍경을 조금은 이해하게 될지도 몰라.   (p54)
※ 이 글은 <나만 위로할 것>에 실린 일부를 필사한 것


김동영 - 나만 위로할 것
달 - 2010. 10. 08.

 [t-11.02.16.  220204-165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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