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자가 말할 땐 확실한 말만 합니다 - 김송희 / 푸른 꿈 1990. 12. 05.
작가가 드리는 말
차마 부끄럽습니다.
살아가면서 문득문득 느끼게 되는 절망감, 답답함, 아쉬움 등을 드러내 보인 이 토막글들을,
감히 읽을 거리라고 세상에 내놓기가 두려웠다.
책이 될성싶은 것들을 모으는 작업에서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
독자에 대한 염치없음은 더욱 극심해져 책을 내라는 여러분의 권유를 차라리 거절하려고도 했었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결국에는 이 못난 글을 세상에 내놓게 되었음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여기 실린 이야기들은 내가 25년 동안 뉴욕 생활을 하면서 맞닥뜨리게 된 크고 작은 사건들,
주변 사람들과의 부딪침 속에서 그 당시의 시대와 맞물린 이야기들이다.
다른 사람들과는 좀 색다른 환경에서 세월을 걸었던 경험이 만들어낸,
약간은 맛이 특별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아야기들이 결코 사치스러울 수 없고,
특별하지 않은 건 내 삶 자체가 보통인의 것이었고, 그보다 이하의 삶을 살았던 까닭이다.
표현이 좀 우습지만, 난 왜소한 모양새를 늘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흔히들 미국이란 나라를 거대한 땅이라고들 말한다.
그 거대한 땅에 살면서도 휩쓸리지 않고,
흉내 내지 않으면서 약간은 추운 듯 살려고 나는 긴장을 풀지 않았다.
그것이 조국의 하늘을, 바람을, 흙을, 사람들을, 한국인의 감정을 잊지 않도록 하는 것이기에.
25년 동안 불과 열 번도 못해 본 모국 방문은,
그리움에 지쳐 실신할 지경에 이르러서야 겨우겨우 목숨을 건지느라
한 번씩 해 볼 수밖에 없을 만큼 나의 여건은 형편없었다.
그래서 그 혹독한 그리움을 삭여내면서,
일 년에도 몇 차례씩 고국을 들락거리는 사람들을,
조금은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낯선 타국땅에서 고생시키는 남편을 원망도 했다.
그러나 늘 그 깊은 상처를 다독거려 주었던 것은,
일찍이 내게 글을 쓰도록 만든 운명, 그 운명을 내가 지금도 걷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문단에 데뷔할 당시의 화려함을 떠올리며,
그때의 꿈을 제대로 펴지 못한 억울함을 끌어안고 산 세월도 적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이제 나는 그 화려함을 꿈꾸지는 않는다.
내가 따로 가야 할 길이 이미 정해진 것이며,
그 운명 속에서 내게 그 세월만큼 할 말을 쌓이게 한 그 길,
그것은 분명 나의 것이기에 사랑한다.
그리고 이제 그 이야기들로서 고국의 독자와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나의 지난 세월을 책으로 묶어 주신 푸른 꿈 출판사에 감사드린다.
아울러서 좋은 말로 책을 빛내 주신 곽종원 선생님과
내 책의 꼴이 되도록 도움을 주신 선생님들께 감사를 드린다.
1990.. 10. 뉴욕에서
김 송 희
[t-07.07,14. 20220701_154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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