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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성장교육(인문.철학.교양./의식있는 여성이 행복을 만든다

12 홀어머니와 공처가 아내

by 탄천사랑 2024. 2. 19.

·「조동춘 - 의식 있는 여성이 행복을 만든다」

 

 

결혼의 환상과 생활

12 
홀어머니와 공처가 아내
혼자 설치다가 맞아죽은 파리의 일생 
내 방에 날아든 파리 한 마리가 유난히 윙윙거리며 활기차게 돌아다닌다.
초대받은 적도 없는 제 놈이야 내 방에 날아든 기분이 대단히 좋겠지만,
나는 파리에게 신경이 쓰여 무척 괴롭다.
어디 한 구석에 가만히라도 있으면 못 본 척 하겠는데 주제 파악도 못하고 설치는 꼴이란 참으로 가관이다.
 '절에 가서도 눈치가 빨라야 새우젓 국물을 얻어 먹는다'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남의 방에 들어왔으면 눈치라도 있어야지,
제 세상을 만난 듯이 시끄럽고 귀찮게 구니 명 命이 오래 가지는 못할 것이다.
드디어 파리와 나는 전투가 시작되었고 끝내 나는 승리의 쾌감을 맛보게 되었다.
내 방에 침투했던 파리의 일생은 이렇게 끝났고, 
나는 조지 원스턴의 앨범 '겨울에서 봄까지'를 들으며 벌렁 편하게 누워 이런 생각을 한다.

'아까 그 파리는 혼자 설치다 파리 목숨이 되어 가버렸구나.
 그 녀석도 어디서 짝이라도 하나 만들어 같이 들어왔더라면 좀 더 오래 살 수 있었을지 모를 텐데.
 둘이 앉아 이야기도 하고, 사랑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그쪽으로 가면 위험하다고 정보를 주기도 하고...
 그러는 동안 내게 방해는 덜 되었을 터이고, 
 귀찮게 굴지 않는 파리를 일부러 쫓아다니며 때려 죽어야 할 이유는 없었을 것 아닌가?
 저는 저고 나는 나로서 존재할 수도 있었던 것을.'


시어머니와 마찰로 정신 이상이 생긴 친구
파리와 전투를 끝내고 나니 친구의 얼굴이 떠오른다.
사람은 오복 五福이 다 갖추어지면 죽는다고 했던가?

학교 다닐 때는 공부도 잘 했고, 혼자되신 어머니를 도와 살림을 잘하던 마음씨 고운 친구.
더욱이 여성스러운 그 섬세함과 따뜻한 잔정이 누구보다 많았던 친구였다.

일류 대학을 나온 엘리트를 만나 결혼을 했고, 남편의 내조를 위해 열심히 뛰며 살았다.
그 후 나는 그 친구를 한 번도 만나지 못하였는데, 나중에 가슴 아픈 소식이 전해져 왔다. 

친구에게는 친정과 시댁에 각각 홀어머니 한 분씩 생존해 계 섰는데,
시어머니와의 마찰이 심해 정신에 이상이 생겼고, 
마침내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고 한다.

모든 것에 일방적인 평가를 한다는 것은 큰 죄를 짓는 것이어서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객관적인 홀어머니들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부부가 같이 산다는 것은 서로 협조하고 이해하며 화합하기 위해 
어떤 면에서든 지나치지 않도록  절충을 하며 사는데 그 의미가 크다.

집안에서 너무 크게 웃으면, 어려서는 부모님이 그러면 못쓴다고 나무라셨고,
결혼하면 남편이 지적을 해 주었다.
그런 지적을 받을 때는 기분이 나쁘고 짜증이 나지만 같이 살기 위해서는 적당한 규제는 분명 필요하다.

지나치게 눈치를 보고 살면 창의력이 상실되고,
기가 죽어 생활하면 신바람이 없어져 신선하고 의욕적인 인생을 살 수가 없다.

그러나 적당한 규제와 눈치는 도를 지나치는 누를 범하지 않게 하는 도리요 예의라고도 볼 수 있다.


홀어머니의 횡포에 대적하면 불효자식
직장에서 상사가 없으면 아랫사람들이 제멋대로 하려 든다.
그러나 상사가 있으면 눈치를 보고 예의를 갖추고 말 한 마디라도 조심하게 되기 때문에 질서와 서열을 느끼게 한다.

짝을 잃고 혼자 사는 사람들은 어떻던가?
혼자 사는 어른들에게는 누구도 지나친 점, 그릇된 점을 지적하고 일깨워 줄 사람이 없어 지나침을 초래할 때가 있다.

만약 아들이 
"어머니 그게 아닙니다. 이렇게 된 거지요" 하고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바로 잡아 드리면 수용을 하는 어머니가 극히 적다.

"이놈아, 내가 누구보고 고생하면서 살았는데, 네 놈마저 어미가 못마땅해서 그러느냐.
 어이구! 원통해서 못 살겠네...."

이렇게 행악 行惡을 하며 아들을 포로로 만들려고 한다.
홀어머니의 횡포는 그 누구도 그릇됨을 지적할 수 없는 성역이 되기 쉽다.

아들이 결혼을 하기 전에는 혼자된 어머니의 문제점이나 횡포에 아들이 중재를 할 수 있지만,
일단 아들이 결혼을 하고 나면 심각하다.

어머니가 어떤 지나친 언행을 하여도 그것을 지적하거나 고치도록 분별력을 일깨워 줄 사람이 없다.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주변 사람들은 어머니의 넋두리만을 듣고 '불효 자식'이라는 낙인을 찍어 버리기 쉽다.
그래서 자신들은 아버님이라도 계셨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공처가의 아내는 기고만장해지기 쉬워
혼자된 어머니만 그런 것은 아니다.
남편이 숙맥처럼 착해서 아내의 말이라면 꼼짝 못 하는 공처가와 사는 여자도 마찬가지다.

재 멋대로 하여도 누구 하나 야단을 칠 사람이 없는 여자는 기고만장해지기 십중팔구이다.

참으로 딱한 일이다.
지난날의 여성 중에는 전자가 많았고, 요즘의 여성들에게는 후자의 상황이 많다.
하루 종일 화투를 치러 몰려다녀도 남편에게 당당한 여자들.
하는 일없이 돌아다니면서 자식들 밥도 제대로 챙겨주지 않고 큰 소리만 치는 엄마,
이런 사람들이 자꾸 늘어나면 밝은 가정은 존재하기 어렵다.

사람이 같이 산다는 의미는 참으로 다양하다.
외로움을 덜기 위해서, 서로 협조하며 살기 위해서 등 그 밖에도 많은 이유가 존재하지만, 
그 중에서도 잊기 쉽고 실천하기 어려운 것은 
스스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는 지나치지 않는 삶의 자세를 빼 놓아서는 안 된다.

정신이 이상해졌다는 친구를 생각하며 이런 생각을 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지금의 홀 부모님들에 대한 규탄이 아니다.
다만 우리들의 장래에 대한 '삶의 자세'를 바로잡고 조절하기 위해서 조명을 해 본 것일 뿐이다.

적당한 긴장, 적당한 규제는 사람의 생활을 질서 있고 아름답게 가꾸어 준다. 
 

※ 이 글은 <의식 있는 여성이 행복을 만든다>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t-24.02.19.  20230203-1524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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