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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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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 연세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 다시 시작해 보자

by 탄천사랑 2024. 2. 6.

·「월간국회도서관 2024. 01 02 vol.517 애서가의 서재」

이미지 - 조선일보에서

 

 

다시 시작해 보자
노력해 보자
새롭게 출발해 보자

2024년이다. 1920년 4월생인 김형석 연세대학교 명예교수는 석 달 후면 104세의 인생을 시작한다. 104세, 감히 

가늠할 수 없는 나이에도 여전히 신문에 칼럼을 쓰고, 강연을 하고, 오늘처럼 인터뷰이가 되어 지혜를 전한다. 학창

시절 친구 윤동주는 시인이 되고 황순원은 소설가가 되었는데 ‘나는 뭘 하나’ 고민했다. 그렇다면 나는 철학을 공부

해 교육계의 정신적 지도자로 인생을 살자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 꿈을 향해 나아가는 길에 도서관과 책의 안내

가 큰 힘이 되어줬다. 새해를 맞아 존재자체만으로 하나의 거대한 도서관이 된 노(老)학자의 삶과 책에 관한 이야기

를 들어본다.


남이 늙었다고 해서, 내가 늙을 필요는 없다.
창밖으로 꼿꼿한 노인이 보였다. 구부정한 태 하나 없이 지팡이에 기대지 않고 걸어들어오는 모습이 청년이 아닌가

싶다. 
“100살이 됐을 때 청와대에서 지팡이를 보냈어요. 
 조선시대에는 임금이 80살이 된 백성에게 지팡이를 하사했다더군요. 
 이제 80살은 너무 흔하니까 100살은 돼야 받을 수 있어요. 
 저는 받아놓고 쓰지 않고 있죠. 
 4월이면 1년을 또 꽉 채우는데, 지금 목표는 그때까지 지팡이 짚지 않고 걷는 겁니다.”
 
내년에도, 그 1년 후의 1년 후에도 김형석이라는 사람은 지팡이를 짚을 것 같지 않다. 
“사람은 늙지 않았는데도 자꾸 늙으려고 해요. 
 연세대학교에서 함께 교수 생활을 하던 대학 동창이 

 65세로 정년퇴직을 하고 중절모에 지팡이를 딱 짚고 나타났어요. 
 영국 신사처럼 근사하더군요. 
 나도 저렇게 한번 해봐야지 생각만 했어요. 
 한참 후에는 정년퇴직한 제자가 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짚고 인사를 해요. 
 그걸 보면서 나도 멋을 부려볼까 했는데 지금까지 못 했어요. 하하.” 
남이 늙었다고 해서 내가 늙을 필요는 없다는 104세 어른의 이야기는 새해를 맞아 세월을 탓하는 우리의 정신을 

번쩍 깨운다.


인생의 시작은 내가 나를 믿을 수 있는 때부터
“새해가 되면 과거를 돌아보면서 자기 자신이 어느 만큼 왔나 생각합니다. 
 제 얘기를 좀 해볼까요? 
 저는 100년을 살아왔으니 좀 더 긴 안목으로 돌아볼 수 있는데, 대부분 사람은 두 단계로 인생을 삽니다. 
 크게 30세까지는 인격과 지식을 키우는 교육 기간이었고, 30세에서 65세까지는 일을 하는 기간이에요. 
 은퇴하고 남은 시간은 가정으로 돌아가 공동묘지로 가는 겁니다. 
 우리 세대를 보면 10명 가운데 8명쯤, 혹은 그 이상이 두 단계로 살았어요. 
 그런데 저는 아니었죠.” 
김형석 교수는 대부분의 사람이 할 일을 마치는 2단계인 65세가 되었을 때를 회상했다. 그때 그의 곁에는 함께 학문

하던 절친한 두 친구 김태길, 안병욱 교수가 있었다. 김태길 교수는 90세에, 안병욱 교수는 94세에 떠났으니 65세는

모두가 한창 활동하던 때였다.
“가까운 친구들과 정년을 맞았을 때 머리를 맞대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하다가 이렇게 결정을 내렸어요. 
 다시 시작해 보자, 
 노력해 보자, 
 새롭게 출발해 보자. 
 65세까지 일을 하느라 소홀했던 공부도 하고, 못 했던 일도 열심히 해보자고 했죠.” 

그렇게 다시 20년을 지냈다. 세 원로 모두 전보다 더 열심히 읽고 공부했고, 집필 활동도 활발히 했다. 
“80세가 좀넘었을 때 우리끼리 또 이야기했어요. 
 달걀에 영양가 높은 노른자가 있어 달걀 구실을 하는데, 
 80세 넘은 우리 인생에 달걀 노른자위 같은 좋은 나이가 언제였을까 말이죠.”

몇 살쯤일지 묻는 질문에 50세쯤이라고 하니, 누군가로부터 50대에는 일이 많아 내 인생을 책임지고 살진 못했다는

답이 돌아온다. 50대까지는 앞을 보고 달려야 하는 시대였다고. 
“60세쯤 되고서야 철이 들었구나 싶었어요. 
 60세가 어떤 나이냐면 내가 나를 믿을 수 있을 만한 나이에요. 
 사회적으로나 후배들이 볼 때 존경스럽다든지 우리도 저렇게 살아야겠다고 기대할 만한 나이도 60세더라고요.” 

그러니까 달걀 노른자 같은 인생이 시작된 건 60세부터였다. 
“자, 그러면 60세부터 몇 살까지가 노른자냐 했을 때 사람은 성장하는 동안은 늙지 않거든요. 
 성장하는 동안은 사회적으로도 책임을 질 수 있지요. 
 60세에서 몇 살까지 성장했는가 하고 돌아보니까 개인적으로는 75세까지는 성장을 하더란 말이죠. 
 내 책 중에서도 비중 있는 것들은 70세 중반에 출간됐고, 
 김태길 교수도 『한국인의 가치관』이라는 좋은 책을 76세에 선보였어요.” 

그렇게 공부하고 성장하면서 늙지 않았다는 김형석 교수는 80세에 벗들과 서로를 독려하며 90세까지 성장을 멈추

지 말자는 다짐을 했다고 한다. 
“우리는 그렇게 3단계를 산 거죠. 
 그런데 아마 이 시대 사람들은 대부분 3단계를 살 거예요. 
 이제 2단계를 사는 사람의 수가 훨씬 적을 겁니다."


인생은 3단계… 30세, 60세, 90세
30세까지 삶, 그리고 60세까지, 여기에 90세까지의 삶, 3단계를 돌아봤을 때 김형석 교수에게 가장 보람되고 좋았

던 단계는  3단계였다. 사람들이 언제가 제일 행복하고 좋았냐고 물으면 그는 고민 없이 답한다. 60세에서 80세가 

제일 좋았던 시절이라고. 
“이제 노년이 짧아지고 장년이 긴 시대가 올 겁니다. 
 90세까지 일하고 나머지 짧은 노년의 시간을 보낼 거예요. 
 90세면 늙은 것인가 하면 또 그것도 아닙니다. 
 90세 무렵에 친구들이 세상을 떠나고 안사람도 가고, 

 몸도 예전 같지 않아서 나도 인생을 천천히 정리하기로 했어요. 
 큰일 맡은 것 몇 가지만 끝내고 쉬자 했는데 일이 또 생기고, 또 생겨서 끝낼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95세까지 미뤄졌죠. 
 95세가 되니까 몸이 아주 힘들어요. 
 그런데 또 정신력은 괜찮았어요. 
 생각하는 것도 그대로고 강연도 무리 없이 했지요. 
 97세에 쓴 책은 베스트셀러가 돼서 올해의 독자가 뽑은 좋은 책 10권에 뽑혔고요. 
 그래, 그렇다면 100세까지 가보자, 해서 지금까지 왔네요(웃음).”

김형석 교수는 우리 모두가 앞으로 3단계로 살지 않으면, 인생을 대단히 손해 본다는 걸 명심하길 당부한다. 살아보

니 신체적으로는 어쩔 수 없어도, 정신은 쉽게 늙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상 떠난 김동길 교수가 8년 아래인데 장수클럽을 만들었다고 오라 해서 갔어요. 
 80세 무렵인데, 가보니까 늙은이들만 쭉 앉아 있어요. 
 여기 나오다가는 나도 늙겠다. 
 나같이 젊은 사람은 여기 오지 말아야겠더라고요. 하하. 
 그래서 이번엔 젊은 후배들을 만났어요. 
 처음엔 다들 좋아하는데 아무래도 부담이 되는 거죠. 
 자기들끼리 즐겁다가 내가 동석하면 점잖아져요.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때부터 우리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과 경쟁하며 살기로 마음먹었죠. 
 젊은 사람, 늙은 사람과 어울릴 게 아니라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경쟁하기로 한 거죠.” 

그렇게 스스로 정한 경쟁은 김형석 교수가 늙지 않고 계속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이 되었다.나를 키운 도서관, 그리고 

독서 100 년이 넘는 시간을 젊게 살아온 비법 중 하나는 독서였다. 식습관, 운동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독서는 

마음과 인생을 꾸준히 성장시켰다. 김형석 교수는 독서와 도서관의 혜택을 일찍부터 받아 지금까지 성장할 수 있었다. 
“내 인생의 출발이 도서관이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평양 숭실중학교를 다녔는데, 
 일본 총독부에서 신사참배를 하면 학교를 계속 운영하게 해주고 안 하면 문을 닫게 한다고 했어요. 
 문을 닫을 순 없으니, 신사참배를 하기로 하고 거부하는 사람들은 떠나라고 했죠. 
 친구 윤동주도 만주로 가고 저도 자퇴를 했어요. 
 학교를 안 다니니까 아침 9시에 시립도서관에 가서 5시까지 책을 읽었어요. 
 한국문학도 읽고 철학책도 읽고 많이 읽었어요. 
 다시 학교에 복학했을 때 공부가 많이 뒤처졌을 거로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도서관에 다니면서 읽은 책이 학교에서 배운 거보다 더 소중하더라고요.” 

학교 공부 대신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던 시간은 철학을 시작한 계기가 됐고, 이를 통해 그는 한 뼘 더 성장했다.독서의

소중함을 스스로 깨달은 뒤부터 더욱 열심히 책을 읽었다. 
“독서는 습관입니다. 습관이 없으면 하지 않게 돼요. 
 독서하지 않으면 정말 큰 손해예요. 내 경험으로 말하는 거니까 이건 사실입니다(웃음).” 

김형석 교수는 독서는 학문적으로 인문학이라며, 인문학적 사고를 가져야 지도자가 될 수 있고, 
리더가 되기 위해선 반드시 책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플라톤이라는 서양 철학자가 『국가론』에 이런 말을 했어요. 
 무식한 지도자는 죄인이다. 
 알아야 할 걸 모르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면 죄인이라는 것이죠. 
 리더라는 사람이 인생관도 없고, 철학도 없으면 싸움만 하거든요.” 

연세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시절, 자연과학 교수들이 와서 묻곤 했다. 자연과학은 시험 문제에 답이 하나이고, 경제나

정치학은 답이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는데 인문학은 정답이 없어서 공정한 점수를 내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질문이었

다. 
“그래서 내가 대답했죠. 
 인문학을 하는 사람은 하나의 물음에 같은 대답이 있으면 안 된다. 
 전부 다르다. 
 우리는 시험 점수를 매길 때 누구의 대답이 근본적 뿌리가 있고, 
 더 많은 사람이 받아들일 가치관인가를 본다고 말해줬죠. 
 인문학이 뿌리가 되고 밑동이 되어야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이 꽃피우고 열매를 맺는 건데 

 그걸 잘 몰랐나 보더라고요.” 

다시 말해 독서는 인문학이고, 인문학은 모든 학문의 뿌리이므로 독서가 없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는 이야기다.좋은 

문장은 각자의 삶 속에100년 동안 책을 곁에 두고 살아온 사람은 어떤 책을 권할까? 반드시 읽었으면 하는 책을 추천

해달라는 우문에 현답이 돌아온다. 
“독서를 많이 하면 어떤 책을 읽을까 하는 고민은 없습니다. 
 각자 필요한 책이 있을 텐데 정해서 몇 가지를 말할 수는 없어요. 
 예를 들어 한국문학을 공부하려는데 어떤 게 좋으냐, 
 서양사상을 연구하는데 소중한 책은 뭐냐 이렇게 물으면 답을 줄 수 있는데 
 살아가는 데 중요한 세 권을 뽑아달라고 하면 대상에 따라 달라지겠죠. 
 물론 개인적인 경험을 말하면 간디의 전기나 춘원 이광수의 책이 일생 의미가 있었습니다. 

 내 친구 안병욱 선생은 일제강점기에 공립학교에 다녀서 한국문학이 뭔지 모르다가 
 중학교 와서 이광수의 『유정』을 읽고 이런 세상이 있구나 싶었다고 해요. 
 그때 민족의식을 찾고 문학을 알게 됐다고요. 
 저도 그랬어요. 
 한 권으로 딱 짚을 수 없지만 고전은 평생 읽어야 할 책이에요. 
 서양 고전, 동양 고전 모두 중요하죠. 
 정리해 보면 문학을 읽고,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친 사람들의 전기를 두루 살펴보고, 고전을 읽으세요. 
 또 자신이 하고 있는 전문 분야의 책은 모두 읽는 게 좋겠죠. 
 그 정도로 권할 수 있겠습니다.”

현답을 듣고 우문을 던진 김에 한 가지 질문을 더 보탠다. 인생에 두고두고 곱씹는 명문장이 있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으니 100세가 넘은 원로는 허허 웃으며 다시 현답을 건넨다. 
“내게 중요한 문장이 있죠. 
 그런데 하나는 아니에요. 
 살면서 시기마다 있었죠. 
 그런데 내게 중요했던 문장이 다른 사람에게도 중요할까요? 
 내 얘기를 하면 학도병으로 갈 처지에 놓였을 때 요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 말씀이 가슴에 와닿았어요. 
 ‘네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고 내가 너를 택해서 많은 열매를 맺게 할 것’이라는 

문장을 읽고 나니 두려움이 사라졌어요.  예수님의 택함을 받은 내 인생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자고 생각했죠. 

 그때 누군가는 공자님 말씀이 도움이 됐을 겁니다. 
 내 방에 ‘過慾未達(과욕미달)’, 즉 욕심이 많으면 목적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글귀가 있어요. 
 선물 받은 건데 지금 내게 참 좋은 문장이죠. 
 가훈이랄 건 없지만 아들딸, 손주, 
 제자들에게 주고 싶은 문장은 ‘정신적으로는 상위권에, 경제적으로는 중산층에’입니다. 
 경제생활은 평범하게 하고, 정신을 높이 살라는 뜻이죠. 

 또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받는 사람보다 행복하다’입니다. 
 약이 사람마다 다르게 처방되듯 좋은 문장도 저마다 다르겠죠. 
 2024년에는 독서를 통해 자기 삶에 가장 좋은 문장을 스스로 찾기를 바랍니다.”

손수 만들어 깊은 맛이 나는 어머니의 요리처럼 100년의 경험으로 우러난 김형석 교수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부대낌

없이 속이 편안해지는 보약 같았다. 거친 호통도, 화려한 칭찬도 없이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뿐인데 듣는 이는

반성과 성찰을 하고 위로와 희망을 품게 된다. 2024년 지치고 힘들 때마다 이 어른의 경험이 담긴 이야기를 꺼내 위로

와 희망을 되새기며 새롭게 출발하기를 바란다.

김형석 철학자가 꼽은 ‘내 곁의 책'
김형석의 인생문답. 저자-김형석 | 미류책방
백년의 독서. 저자-김형석 | 비전과리더십
100세 철학자의 행복론. 저자-김형석 | 열림원


대한민국 최고령 수필가이자 철학자인 김형석 교수는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 시카고 대학교와 하버드 대학교의 

연구 교환 교수를 역임한 바 있다. 뛰어난 학문적 업적과 더불어 꾸준히 다작하고,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낸 

저술가로 유명하다. 

대표작으로 1960년에 출간된 수필집 『고독이라는 병』이 있고, 최근 저서로는 2022년 「김형석의 인생문답: 100

명의 질문에 100세의 지혜로 답하다」가 있다.


인터뷰 - 김형석 연세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글 - 이재영
사진 - 최충식
출처 - 월간국회도서관 2024. 01 02 vol.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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