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도서관 - 낭독클럽/토요 아침 문학 산책」
"이 소설을 쓰는 동안은 연애편지를 쓰는 것처럼 애틋하고 행복했다."
가까이 있었으나 끝내 손에 닿지 않았던 ‘그 남자’
박완서의 ‘첫사랑’에 관한 자전적 소설
1950년대 전후 서울의 피폐한 풍경이 눈에 보일 듯 그려지는 『그 남자네 집』은, 노년에 접어든 주인공이 첫사랑 ‘그 남자’가 살았던 돈암동 안감천변을 찾아가 옛 기억을 떠올리면서 시작된다. 먼 친척뻘인 그 남자네 가족이 내가 사는 동네로 이사를 오면서 고등학생이던 나와 그 남자는 처음 만난다. 그리고 몇 년 후, 전쟁 통에 미군부대에서 일하던 나는 퇴근길 전차 안에서 그 남자와 우연히 다시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인연을 맺는다. 전쟁으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황폐하고 남루해진 그 겨울, 나와 그 남자는 폐허가 된 서울 거리 구석구석을 누비며 ‘구슬’처럼 빛나는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생존’만이 가치 있던 시절에 음악과 문학을 즐기는 낭만적인 그 남자의 존재는 나에게 잠시 현실에서 눈을 돌릴 수 있는 탈출구가 되어준다.
그러나 그는 ‘한 푼도 못 버는 백수’에다 세상 물정 모르고 노쇠한 어머니를 괴롭히는 ‘철부지 막내아들’이었고 나는 ‘다섯 식구의 밥줄’이었기에, 나는 작지만 번듯한 집과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은행원과 결혼하기로 결심하고 그 남자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첫사랑의 단꿈에서 깨어나 시집살이를 시작한 나는 남편이 가져다주는 그리 많지 않은 월급으로 근근이 살림을 꾸리고, 집안의 온갖 대소사를 박수무당에게 의존하는 시어머니와 갈등을 겪으면서 결혼이라는 현실에 조금씩 무뎌져간다. 신혼의 재미도 모르는 채 일상은 급격히 권태로워졌고, 그즈음 시장통에서 ‘그 남자’의 누나를 우연히 만나 그의 소식을 전해 들은 나는 그 남자와 재회하며 또 한 번 현실로부터의 일탈을 꿈꾼다. 남편과 시어머니의 눈을 피해 은밀한 만남을 이어가던 어느 날, 그는 하룻밤의 밀월여행을 제안한다.
나는 짜릿한 기쁨을 느끼며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지만, 약속 당일 그는 기차역에 나타나지 않았고, ‘어딘가로 붕 떠올랐다가’ 다시 세상으로 내팽개쳐진 나는 크게 앓고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오지만, 그 남자가 뇌수술을 했고 시력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얼마간의 세월이 흐른 후 그와 재회하게 된다. 이미 모든 것이 달라진 뒤였다. 여전히 청년 시절의 낭만과 철없음을 간직한 그와 달리, 나는 네 아이를 둔 엄마이자 억척스러운 아줌마가 되어버렸으므로. 나는 그에게 첫사랑의 설렘이 아닌 육친애적 분노를 느끼며, 이제 그만 장님임을 인정하고 새롭게 살아가라고 욕설을 섞어 충고하는 것으로 그와의 관계를 끊어버린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그 남자를 마지막으로 다시 만난다. 그 무렵 그는 중학교 교사인 아내를 만나 아이를 낳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회상하며 점점 더 굵은 눈물을 흘리는 그 남자를 나는 무너지듯 포옹하며 마침내 담담하고 완전한 그와의 결별을 이루게 된다.
이 소설은 박완서만의 세밀한 묘사와 기지 넘치는 문장으로 이루어진 한 편의 애틋한 연애소설이자, 한 여성의 삶, 나아가 한 시대의 모습을 속속들이 엿볼 수 있는 완벽한 기록물이기도 하다. 전쟁 통에도 광주리장사를 하고 하숙을 쳐서 자식을 먹여 살린 어머니들, 가족을 위해 손가락질도 무릅쓰고 양공주 노릇을 했던 젊은 여성들, 전쟁과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 된 남자들. 중심인물인 나와 그 남자뿐 아니라 주변인들도 제각각 개성이 두드러져 이야기를 탄탄하고 풍성하게 받쳐준다. 전후의 피폐한 일상과 그 생활전선을 직접 몸으로 겪어야 했던 이들의 실상이 첫사랑이라는 더없이 순수한 감정과 대비를 이루며 가슴 찡한 울림을 선사한다. “온몸에 겨울과 같은 독한 상처를 품었으되 당당한 나목처럼 봄의 언어로 따뜻하게 우리 곁에 서 있던”(구효서) 박완서 작가. 그가 남긴 마지막 장편이자, 그의 삶 자체이기도 한 이 소설이 어느 때보다도 힘들고 지난했던 한 해를 보내고 2021년을 맞이한 오늘날의 독자들에게도 변함없이 따뜻한 온기와 위로를 안겨줄 것이다. (예스24 발췌)
박완서 문학의 가장 아름다운 결정체 그리운 작가의 마지막 장편소설
책 속으로
50년대 초, 내가 결혼해서 시집살이를 한 동네는 좁고 꼬불탕한 골목 안에 작은 조선 기와집들이 처마를 맞대고 붙어 있는 오래된 동네였다. 특별히 가난할 것도 넉넉할 것도 없는 평범한 주택가였지만 전쟁이 막 끝난 때니만큼 사는 모습들은 제각기 치열하고도 남루했다. 출구가 보이지 않고, 막무가내로 답답하기만 한 시절, 어느 날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한 동네 낡은 조선 기와집에 ‘現代文學社’란 간판이 붙었다. 워낙 살기가 어려울 때라 살림집도 길목만 좋으면 한쪽 벽을 헐고 구멍가게를 내는 일이 흔했다. 그런 동네 구멍가게와 다름없는 집에 그 간판이 붙자 그 집뿐 아니라 그 골목까지 갑자기 찬란해졌다. 그 남루하고 척박한 시대에도 문학이 있다는 게 그렇게 내 가슴을 울렁거리게 했다. --- p.5~6
한길에서 그 집을 들여다보면 대문이 보이지 않고 고궁에서나 볼 수 있는 홍예문이 보였다. 홍예문은 사랑마당으로 통하는 문이었고 안채로 통하는 대문은 홍예문이 달린 담장과 기역 자로 꺾인 곳에 달려 있었다. 난 왠지 문지방이 돌로 된 위압적인 솟을대문보다는 단아하고 고풍스러운 홍예문에 더 압도당하고 있었다. 추녀를 나란히 한 고만고만한 조선 기와집하고는 격이 달라 보였다. 마침 짐을 나르던 청년이 우리 곁에서 머뭇대며 아는 척을 하고 싶어 하는 눈치를 보이자 노마님이 우리 막내라고 인사를 시켰다. 서글서글한 미남이었다. --- p.20~21
나의 모멸감을 아는지 모르는지 박수무당은 둘둘 만 다섯 개의 깃대를 내 앞으로 들이댔다. 영문을 몰라 뒷걸음질을 치는 나에게 시어머니가 우리 새아기는 이렇게 아무것도 모른답니다, 하면서 나에게 깃대를 하나 뽑으라고 일러주었다. 나는 둘둘 만 깃발 쪽은 자기 겨드랑이에 끼고 내민 대 중에서 하나를 뽑았다. 면할 길이 없다고 체념한 뒤였지만 까닭 없이 떨렸다. 펄렁하고 남색 깃발이 딸려 나왔다. 시어머니 안색이 굳어졌다. 좋은 징조는 아닌가 보다. 박수무당도 고개를 갸우뚱하고 나서 한 번 더 뽑으라는 시늉을 했다. 나도 까닭 없이 긴장해서 단박에 뽑지 않고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신중하게 두 번째 기를 뽑았다. 이번에는 초록색이었다. 그것도 길한 색은 아니란 걸 나는 눈치로 알아차렸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떤 색 깃발이 나와야 좋은지 아는 바 없이도 불길한 색깔만 뽑았다는 건 기분 나쁜 일이었다. 나는 잘못한 거 없이도 허물을 뒤집어쓸 수 있다는 미신의 힘에 공포를 느꼈다. --- p.176~177
첫사랑이란 말이 스칠 때마다 지루한 시간은 맥박 치며 빛났다. 그 남자를 다시 만나기까지는 일주일이나 남아 있었지만 오래간만에 맛보는 기다림의 시간은 황홀했다. 무엇을 입고 나갈까, 첫사랑이 긴 치마를 허리띠로 동여매고 시장바구니를 들고 나타난다면 그 남자가 얼마나 실망할까. 나 또한 그 남자가 첫사랑이거늘. 그건 첫사랑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나는 이것저것 좋은 나들이옷을 꺼내 입고 거울 앞에서 나를 비춰보았다. 어떤 옷은 점잖아 보이고, 어떤 옷은 촌스러워 보이고, 간혹 요염해 보이는 옷도 있었다.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남자가 나에게 해준 최초의 찬사는 구슬 같다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한번 구슬 같은 처녀이고 싶었다. --- p.203~204
<그 남자네 집> 작가소개
경기도 개풍(현 황해북도 개풍군) 출생으로, 세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서울로 이주했다. 1944년 숙명여자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교사였던 소설가 박노갑에게 영향을 받았으며, 작가 한말숙과 동창이다. 1950년 서울대학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전쟁으로 중퇴하게 되었다. 개성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서울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박완서에게 한국전쟁은 평생 잊을 수 없을 없는 기억이다. 의용군으로 나갔다가 부상을 입고 거의 폐인이 되어 돌아온 `똑똑했던` 오빠가 `이제는 배부른 돼지로 살겠다`던 다짐을 뒤로 하고 여덟 달 만에 죽음을 맞이하고, 그후 그의 가족은 남의 물건에까지 손을 대게 되는 등 심각한 가난을 겪는다.
그후 미8군의 PX 초상화부에 취직하여 일하다가 그곳에서 박수근 화백을 알게 된다. 1953년 직장에서 만난 호영진과 결혼하고 살림에 묻혀 지내다가 훗날 1970년 불혹의 나이가 되던 해에 [여성동아] 여류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裸木)』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그 이후 우리의 일상을 세심하게 관찰하여 그 이면에 숨겨진 진실까지 뼈아프게 드러내는 소설들을 발표하며 한국 문학의 한 획을 긋고 있다. 박완서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소재에 적절한 서사적 리듬과 입체적인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다채로우면서도 품격 높은 문학적 결정체를 탄생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다. 작가는 우리 문학사에서 그 유례가 없을 만큼 풍요로운 언어의 보고를 쌓아올리는 원동력이 되어왔다. 그녀는 능란한 이야기꾼이자 뛰어난 풍속화가로서 시대의 거울 역할을 충실히 해왔을 뿐 아니라 삶의 비의를 향해 진지하게 접근하는 구도자의 길을 꾸준히 걸어왔다.
한국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다룬 데뷔작 『나목』과 『목마른 계절』,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틀니』, 『아저씨의 훈장』, 『겨울 나들이』,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등을 비롯하여 70년대 당시의 사회적 풍경을 그린 『도둑맞은 가난』, 『도시의 흉년』, 『휘청거리는 오후』까지 저자는 사회적 아픔에 주목하여 글을 썼다. 『살아있는 날의 시작』부터 여성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작가는 행복한 결혼은 어떤 형태인가를 되묻게 하는 소설인 『서 있는 여자』,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등 점점 독특한 시각으로 여성문제를 조명하기 시작한다. 또 장편 『미망』, 『그 많던 싱아를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등에서는 개인사와 가족사를 치밀하게 조명하여 사회를 재조명하기도 한다.
“아직도 글을 쓸 수 있는 기력이 있어서 행복하다.”는 작가는 사람과 자연을 한없이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느낀 기쁨과 경탄, 감사와 애정을 담아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펴냈다. 「친절한 책읽기」라는 제목으로 신문에 연재했던 글도 함께 실어 노작가의 연륜과 성찰이 돋보이는 글을 선보였다. 1993년부터 국제연합아동기금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1994년부터 공연윤리위원회 위원, 1988년부터 제2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그 가을의 사흘 동안』으로 한국문학작가상, 『엄마의 말뚝』으로 제5회 이상문학상, 『미망』으로 대한민국문학과 제3회 이상문학상, 『꿈꾸는 인큐베이터』로 제38회 현대문학상 등을 받았다. 2006년, 문화예술인으로서 처음이자 여성으로서도 처음으로 서울대학교 명예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평소 입버릇처럼 "전쟁의 상처로 작가가 됐다."고 고백해왔던 그녀는 전쟁의 아픔을 온몸으로 겪은 경험으로 글을 써왔다. 여러 편의 장편소설과 수필집, 동화집을 발표하고, 2010년 8월 수필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마지막으로 2011년 1월 22일, 담낭암 투병 중 별세했다. 경기 구리시에는 '박완서 문학마을'이 조성될 예정이다.
한국문학작가상, 이상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한무숙문학상, 대산문학상 만해문학상, 황순원문학상, 호암예술상 등을 수상했고, 2006년 서울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타계 이후 문학적 업적을 기려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그 외 작품으로는 장편소설 『아주 오래된 농담』 『그 남자네 집』, 소설집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저문 날의 삽화』, 『너무도 쓸쓸한 당신』, 『친절한 복희씨』,『기나긴 하루』, 산문집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한 길 사람 속』,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등이 있다.
출처 - 토요 아침 문학 산책 https://blog.naver.com/k-umdo/223311629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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