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 2024.01.22. 사회」
故신언임 여사 영결식
“저에게는 사랑하는 또 한 분의 어머니가 계십니다.”
22일 오전 10시쯤 충북대학교 대학본부 대강의실에서 흰머리 희끗한 중년 남성이 눈물을 머금으며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했다. 곳곳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편지 속 어머니는 노점상을 해서
평생 모은 전 재산을 충북대에 장학금으로 기부하고 지난 19일 영면한 고(故) 신언임(91) 여사. 그의 장학금으로
대학을 졸업한 행정학과 90학번 함영규(53·검찰 사무관)씨가 추도사를 낭독했다.
‘충북대의 어머니’로 불린 교육 독지가로 생을 마감한 신 여사의 영결식이 이날 충북대에서 충북대학교장(葬)으로
엄수됐다. 영결식에는 고창섭 총장을 비롯해 유족과 교직원, 졸업생, 재학생 등 100여 명이 모여 신 여사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함 사무관은 “어머니는 안 드시고, 안 쓰시면서 억척같이 모은 돈을 자식같이 여긴 학생들에게 모두 베풀고 떠나셨다”
면서 “명절과 생신 같은 기념일마다 인사드리고 때때로 여행도 같이 가며 어머니로 모셨는데 너무 많이 생각이 난다”
며 흐느꼈다.
자식도 없이 평생을 홀로 살아온 신 여사가 기부를 통해 충북대와 연을 맺은 건 1993년이다. 당시 신 여사는 청주시
남문로에 있는 30억원 상당의 한 건물을 기탁했다. 충북대는 이 건물을 2008년 33억원에 팔아 어려운 학생을 위한
장학금 등으로 쓰고 있다.
신 여사가 충북대와 별다른 사연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배우지 못하고 고달팠던 삶과 자식 없는 설움 때문에
기부를 시작했다고만 알려져 있다. 충북대 관계자는 “고향을 대표하는 대학이어서 우리 대학을 찾으신 것 같다.
우리 대학 학생들을 늘 자식처럼 생각하셨다”고 했다.
신 여사는 일제강점기인 1932년 충북 청주시 오창에서 빈농의 1남 8녀 중 다섯째 딸로 태어났다. 힘겨운 유년 시절
을 보냈다. 부친을 졸라 뒤늦게 입학한 주성초등학교를 열여덟 나이에 졸업했다. 첫 직장 생활은 전매청에서 시작했고,
스물두 살에 결혼했다. 그러나 아이를 갖지 못해 온갖 설움을 받다가 젊은 나이에 혼자가 됐다. 한때 죽으려고까지
했지만, 부모님이 낳아주신 몸값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청주의 한 재래시장 어귀에서 가치담배(낱개 담배) 장사부터 시작했다. 이후 만물상회를 운영하며 억척같이 돈을
모았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위해선 한 푼도 쓰지 않는 ‘구두쇠 할머니’로 불렸다.
신 여사는 충북대에 건물을 기부한 것에 이어 개교 60주년이던 2011년 10억3000만원을, 2018년에는 8억원을
기탁했다. 돈이 모일 때마다 내놓은 것이다. 그가 충북대에 전달한 돈만 모두 51억3000만원에 달한다.
충북대는 고인의 이름을 딴 ‘신언임 장학금’ ‘신언임 충효 장학금’ ‘신언임 로스쿨 장학금’을 설립해 연간 10명에게
5000여 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지금까지 장학금을 받은 학생은 총 103명이다. 신 여사는 충북대에서 행정
대학원 여성 지도자 과정을 수료했고, 명예 행정학 박사 학위도 받았다.
충북대는 2015년 새로 지은 평생교육원 강당에 ‘신언임홀’이란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이곳에서 88세 때 미수연
(米壽宴), 90세 때 구순(九旬) 잔치를 열었다.
신 여사는 2012년 33회 ‘김만덕상’도 받았다. 제주의 여성 거상(巨商)인 김만덕(1739~1812) 선생은 1794년 제주에
흉년이 들자 재산을 털어 사들인 곡식을 백성에게 풀었고, 이런 선생을 기려 제정한 상이 ‘김만덕상’이다.
신 여사의 1기 장학생인 장병준(54)·이정옥(53)씨 부부는 “어머니와 만남을 이어가다 부부의 연을 맺게 됐다”며 “
어머니는 우리를 자식처럼 여기셨고, 이제 세상을 떠나셨지만 고귀한 삶을 희생하며 100명이 넘는 자식들에게
사랑을 전해준 어머니를 평생 기릴 것”이라고 말했다.
신 여사의 장례는 그와 부모 자식의 연을 맺어온 장학생들이 사흘간 머물며 상주 역할을 했다. 그는 이날 캠퍼스 내
교육 독지가 선영에 안장됐고, 평소의 바람처럼 영원히 충북대와 함께하게 됐다.
글 - 신정훈 기자
출처 - 조선일보 2024. 01. 22.
[t-24.01.23. 20220111-1507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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