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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일상 정보/사람들(인물.

불어라 바람아 - 김효선 여성신문 대표

by 탄천사랑 2024. 3. 6.

·「월간국회도서관 2024. 3 ㅣ VOL.518」



인터뷰 INTERVIEW
불어라 바람아 여성의 목소리를 싣고 달린 시간

1988년 12월 2일 대한민국 최초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여성신문>이 창간됐다. 그 후로 35년, 긴 시간 동안 <여성신문>은 여성은 물론 전 국민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인식을 제고하며 새로운 어젠다(Agenda)를 제안해왔다. 그 덕에 구석구석까지 여성의 목소리가 퍼져나갔다. 30년이 넘는 시간 그 길을 동행하며 <여성신문>과 함께 역사가 된 김효선 대표는 기자에서 편집장으로 또 대표로 <여성신문>을 지켜왔다. <여성신문>의 김효선 대표와 함께 따뜻한 바람에 실린 여성의 목소리가 더 높이 더 멀리 퍼져나가기를 기대한다

 


<여성신문> 역사의 산증인, 아니 삶 자체가 <여성신문>의 역사시죠. 
창간 1주년 기념호를 만들면서 함께 하셨다고요? 
정말 오래 전 이야기네요. 기억을 떠올리자니 선사시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요. <여성신문>이 1988년 12월 2일에 창간했고요. 저는 이듬해인 1989년 하반기에 합류해 창간 1주년 기념호를 만들면서 인연이 시작됐죠. 


왜 <여성신문>이었나요? 
사회가 소용돌이치던 1980년대 초에 대학을 다녔어요. 우리 시대 청년들이 그랬듯 세상을 새롭게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죠. 어떤 일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시기에 여성문제를 키워드로 한 세미나와 심포지움에 참여했는데, 여성운동이 사회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여성학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에 들어갔죠. 대학원생이던 시절에 <여성신문> 창간 소식을 들었고요. 여성의 목소리를 담은 매체가 탄생한다니 정말 신이 났죠. 자본금을 만들기 위해 주주를 모은다는 이야기에 5만 원 어치 주식을 샀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소박한 실천이었죠. 


5만 원은 당시로서 큰 돈이죠. 더군다나 학생에게는 적지 않은 금액이었을 텐데요. 
여성의 이야기를 싣는 매체가 생긴다는 소식에 기꺼이 동참하셨군요. 주주에서 객원기자가 되셨어요. 
<여성신문>은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어렵지 않은 적이 없었어요. 넉넉하게 곳간에 자본을 쌓아놓고 시작한 게 아니었고 사람 구하기도 힘들었죠. <여성신문>에 와서 글을 써달라는 제안을 듣고 고민할 때 저를 아끼는 선배들이 마음이 담긴 조언을 해주셨어요. 초창기라 복잡하니 정리된 뒤에 들어가라고 만류하는 분도 있었고, 또 어려울 때 가서 도우라는 분도 있었죠. 저는 후자를 택했습니다. 창간 1주년 호를 만들고 10년 동안 편집국장으로 일했죠. 그 시기에 사회적으로 다뤄지지 않던 여성이슈들이 쏟아졌고 새로운 담론을 펼칠 수 있었어요. <여성신문>만 여성의 관점으로 새로운 이야기들을 펼쳐내던 시절이었죠. 어려웠지만 돌아보면 그 시절이 <여성신문>의 황금기였습니다


우리나라에 비로소 여성학이 꿈틀대던 시기에 
<여성신문>이라는 여성의 목소리를 싣는 매체의 역할이 정말 컸을 것 같아요. 
초창기 <여성신문>을 보면 한 호 한 호가 밀도가 어마어마했죠. 매호 말할 수 없이 묵직했어요. 한국의 정치 현실과 여성의 역할, 한국 여성문화운동, 어디로 갈 것인가 등 단행본 제목 같은 헤드라인이 주를 이뤘죠.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던 각계 여성인사들이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장이 되었고, 그 목소리를 응집시킨 것이 사회변화에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남성의 시선으로 여성문제를 바라보는 것이 보편적이었던 시대에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장이 마련되면서 여성의 인권이 진일보할 수 있었군요. 
그렇죠. 여성의 입장에서는 중요하지만 기성 언론들이 주목하지 않는 이슈들이 많았어요. 편집장으로 매호 왜 그 이슈가 다뤄져야 하는지, 우리의 주장이 왜 중요한지 증명하려고 애썼습니다. 매호 매호 새로운 길을 탐사하듯 만들었어요. 그때 먼저 길을 닦아주었던 스승이자 언니들이 편집위원으로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그렇게 연대하면서 나아갔고 지금까지 오고 있죠. 


특별히 기억에 남는 기사가 있을까요? 
<여성신문>을 세상에 알린 ‘안동 주부 사건’ 기사가 기억에 남아요.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년 여성이 일을 마치고 11시에 귀가하는데 청소년 2명이 나타나 강간을 합니다. 가해자가 입을 맞추려고 해서 이 여성이 혀를 물었고 혀가 잘리면서 미수에 그쳐요. 그런데 재판에서 과잉방어죄라는 명목으로 피해자를 가해자로 지목합니다. 지금이라면 말도 안되는 이야기죠. 저희 기자들이 안동법정까지 가서 취재를 해 기사를 썼는데요. 지금도 그 기사를 보면 정말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기존 언론과는 다른 시각으로 기사를 썼죠. <여성신문>이기에 가능했고 많은 화제가 됐죠. 


남성중심의 고정관념에 반기를 든 기사네요. 
여자가 밤에 혼자 나간 게 문제다, 술집에서 일한 게 문제다, 그런 일로 젊은 청년들의 앞길을 막는다는 등의 여론이 들끓었어요. 기본적인 상식이 공유되지 않던 시대였어요. 사회적 고정관념에 반기를 든 기사로 ‘황혼 이혼 사건’도 기억에 남아요. 그 기사는 기성 언론의 사회면에 작게 가십처럼 다뤄진 사건을 저희가 다시 공론화 시킨 것이었어요. 


황혼 이혼을 반대한다는 기사였나요? 
1998년의 일이에요. 아주 먼 얘기도 아니죠. 70세 할머니가 소송을 했는데 법원에서 100년 해로 하시라고 이혼을 반려했어요. 노망난 할머니의 요구에 법원이 준엄하게 백년해로를 권했다는 뉘앙스였어요. 마침 관련 제보가 들어와서 할머니를 찾아뵀죠. 아들과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살고 계셨는데, 남편이 사는 내내 언어적·물리적 폭력을 행사했고, 경제적으로도 억압이 심했다고 해요. 인터뷰를 하는데 할머니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내일 죽어도 오늘 이혼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어요. 여자들은 그 심정을 잘 알죠. 평생 존재를 부정 당하면서 살아온 사람의 마지막 소원이잖아요. 기사가 나간 후에 좋은 변호사들이 함께 해줘서 잘 해결된 걸로 알고 있어요. 


여성에 대한 인식이 올라오지 않았던 시대였는데 당시 <여성신문>에 대한 반응은 어땠나요? 
우리는 여성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데 반응이 호의적이지는 않았죠. 기성언론이나 남성은 물론이고 우리를 야단치는 여성들도 있었어요. 점잖치 않게 성폭력 얘기를 한다고요. 광고도 잘 안 들어왔고, 신문 좀 팔리게 만들라는 이야기도 정말 많이 들었어요. 성폭력, 탁아소 얘기 그만하고 연예인 기사도 쓰고 하라고요. 제 생각은 달랐어요. 이미 기라성 같은 언론사들과 같은 이야기를 해서는 승산이 없었어요. 주체적인 여성상을 확립해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길에, 여성의 인권을 대변하겠다는 <여성신문> 창간 이유에 충실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죠. 


그 덕에 지금까지 <여성신문>이 훼손되지 않고 우리 사회에 남아 있군요. 
전 세계적으로도 페미니즘이라는 이념으로 35년을 지속해 간 매체를 찾기 힘듭니다. 상업적으로 돈이 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죠. <여성신문>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건 어쩌면 기적이에요


그 시절보다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요즘은 남녀 갈등이 더 심화된 것 같습니다. 
이런 갈등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요? 
젠더 갈등이 심각한 문제죠. 해외 조사를 보면 우리나라가 갈등지수가 굉장히 높다고 나옵니다. 그런데 사실 젠더 갈등뿐 아니라 세대 갈등, 정치 성향 차이에 대한 갈등 등 다른 갈등도 엄청나게 높아요. 아마 우리가 갈등을 처리하는 기술이 잘 발달되지 못해서가 아닌가 싶어요. 다양한 개인이 부딪히지 않고 공존해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렵습니다. 젠더 갈등의 내용을 보면 여자들이 다 차지했다는 말들이 많은데요. 기울어진 한쪽을 올려놓으려는 거지 더 높아지겠다는 게 아니거든요. 정치권에서 이런 것을 부추기는 것도 일정부분 문제가 있다고 봐요. 지도자들이 먼저 절제해야 하지 않나 싶고요. 언론도 물론 역할을 해야겠고, 서로 이해하는 마음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10년간의 편집장 생활을 마치고 대표로 취임해 다시 20년을 <여성신문>과 함께 하셨습니다. 
글을 쓰는 것과 경영은 또 다른 이야기잖아요. 
10년간 편집장을 하고 잠시 <여성신문>을 떠났었어요. 저는 언론 전문가가 아니라 여성학 공부를 하다가 들어온 사람이라 늘 언론의 전문성에서 떨어진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일간지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 오면 더 잘할 거라는 생각도 있었고, 마침 온라인 매체가 시작될 때라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었습니다. 새로 런칭한 여성포털사이트에서 경영을 경험하고 <여성신문> 대표 자리가 공석이 되면서 오게 됐어요. 


위에서 말씀하셨듯이 <여성신문>의 대표 자리가 여러모로 쉽지 않는 자리인데, 
그걸 알면서도 수락하신 이유가 있으세요?
얼마나 힘든 자리인지 잘 알고 있었죠. 대표라는 무게와 책임감에 대해서도 온라인 매체 대표를 하며 이미 한번 겪었고, <여성신문>만의 극복되지 않는 경제적 문제도 걱정스러웠고요. 우여곡절 끝에 이 자리에 앉게 됐고 대표가 된 이후에도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습니다만, <여성신문>의 첫걸음을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여성신문>은 개인이 창업한 게 아니라 여성의 목소리를 담는 매체에 대한 각자의 바람이 모여 시작되었잖아요. 대학원생이었던 제가 5만 원을 털어 주주가 되었듯, 전국의 수많은 여성들이 1만 원, 5만 원 씩 투자해 만든 매체거든요. 그 뜨거운 마음을 잊지 않고 지키기 위해 어려운 자리지만 계속하고 있어요. 

 


대표님 개인으로서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여성신문>은 큰 의미가 있네요. 
그럼요. <여성신문>은 단순한 신문매체가 아니라 역사적 산물이에요. 정파를 초월해 한국 여성들의 힘이 결집되어 만들어진, 수많은 언니들이 지켜낸 유산이에요. 아이디어로, 글로, 몸으로, 가지고 있는 유무형의 재능을 기부해준 여성들 덕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어요. 잘 지켜져서 좀 더 발전된 형태로 후배들에게 계승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더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선배 여성 리더로서 후배들에게 해주실 말씀이 있으신지요?
하고픈 대로 사세요. 남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마음먹은 대로 끝까지 가보려면 내가 진짜 뭘 좋아하는지 알아야 하거든요. 리더십은 나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해요. 나를 아는 사람이 조직도 잘 이끌죠. 자신에게 집중하고 더 많이 경험하면서 내가 뭘 잘하고 좋아하는지 알아가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세요. 요즘 후배들이 워낙 훌륭해서 이런 조언이 도움이 될지 모르겠네요. 하하


30년 전 <여성신문>이 제기했던 여러 문제들이 이제는 사회적 상식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달라진 시대에 <여성신문>이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요? 
기존 여성 언론으로서의 역할에 더욱 충실하되 앞으로는 여성만의 콘텐츠를 개발하고 전파하는 것에도 힘을 다할 생각입니다. 여성화가들에게 국제 전시의 기회를 주는 <한국 여성 미술대전>, 매년 5월 첫 주에 열리는 <여성 마라톤 대회>, 연초에 열리는 차세대 여성 리더를 위한 <미래를 이끌 여성 지도자상>, 문화예술계 여성인재를 위한 <양성평등 문화인상> 등 여성을 위한 다양한 사업들을 계속해서 벌여나갈 것이고요. 또 선배와 후배 세대를 연결하는 역할도 <여성신문>의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논의의 장을 열어 여성 선후배가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세대간의 연결점을 찾을 수 있는 길잡이가 되어야겠죠. 지나온 시간만큼 앞으로의 시간도 쉽지 않겠지만 타협하지 않고 올곧게 여성의 목소리를 전하는 <여성신문>을 지켜봐 주세요. 


2024년이 시작됐는데, 올해 계획이 있으신가요? 
일단 좀더 많은 젊은 여성들이 와서 일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게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성신문>이 더 나은 환경이 되도록 집중할 생각이고요. 개인적으로는 늘 그랬듯 뚜벅뚜벅 걸어나가겠죠. 제가 자주 하는 이야기인데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기 갈 길 한 걸음 한 걸음 가다 보면 굉장히 달라진 곳에 가 있고 내 목표가 이루어진 곳에 가 있더라고요. 올해도 제 길을 잘 걸어나갈 생각입니다.

김효선 여성신문 대표 
<여성신문>의 대표이다. 대학시절 여성학을 공부하며 여성이라는 키워드로 사회를 새롭게 만드는 데 기여하는 삶을 살겠다고 마음 먹고 <여성신문>과 연을 맺었다. 연대와 응원을 보내준 수많은 언니들이 있어 <여성신문>이 지금까지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글 - 이재영, 사진 최충
인터뷰 - 김효선 여성신문 대표
출처 - 월간국회도서관 2024. 3 ㅣ VOL.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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