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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내가만난글/비문학(역사.사회.문학.

어느 날 갑자기, 기자에서 스토킹 피해자가 되었다

by 탄천사랑 2024. 4. 6.

·「국회도서관 - 2024. 04. vol.519」

 

 

 

내 삶에 들어온 책
어느 날 갑자기, 기자에서 스토킹 피해자가 되었다

"스토킹이란 피해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무서운 범죄일진대, 
  가해자에 대한 형벌은 가볍기 그지없고, 피해자에 대한 보호는 어느 날 갑자기, 어이없이 미약하다"


내가 그 책을 집어들게 된 이유
내 삶에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출판 담당 기자 앞으로 매주 배달되는 100여 권의 신간 더미에서 굳이 그 책을 집어들지 않았을 것이다.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경기대 교수가 제자들과 함께 쓴 『스토킹: 신인류의 범죄』(지식의날개)가 내 삶에 들어온 것은 내가 스토킹 범죄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4년째 스토킹에 시달리고 있다.

일면식도 없는 가해자는 내가 회사 업무로 진행한 독서 팟캐스트와, 출연한 유튜브를 통해 나를 범죄 표적으로 삼았다. 자신의 유튜브 계정에 나를 성적으로 능욕하는 게시물을 여러 건 올렸다. 유튜브 측에 신고해 계정을 정지시켰더니 ‘내 저작물을 훼손했으니 달마다 100만 원씩 1,000만 원을 내놓으라’며 협박 메일이 왔다. 

이메일을 차단하고 회사 변호사를 통해 ‘계속 괴롭히면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내용증명을 보냈음에도 굴하지 않고 회사로 편지를 보내 돈을 요구했다. 알고 보니 <일간 베스트>에도 수년간 나를 성적으로 대상화한 게시물을 꾸준히 올려왔다. 참다못해 고소했고, 가해자는 초범임에도 징역 1년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되었다.

가해자의 괴롭힘은 감옥에서도 계속됐다. 그는 끊임없이 편지를 보냈다. 속옷만 입은 여성 그림과 함께 ‘더 심한 성애(性愛) 장면을 그려보낼 수도 있었으나 이 정도로 참는다’는 취지의 내용을 적어 보냈다. 너 때문에 인생을 망쳤다며 저주와 악담을 퍼부었다. 내가 답이 없자 나의 직장 동료들에게까지 편지를 보냈다. 나에 대한 비방과 욕설이 내용의 대부분이었다. 

가해자는 수감 전, 내가 자신을 신고했다는 이유로 본인의 유튜브와 내 기사 댓글 등을 통해 보복을 선포했다. 그가 최대한 오래 감옥에 있어야 내가 안전하므로 그가 법정구속된 직후인 2022년 9월 중순 특가법상 보복 등의 혐의로 추가 고소했다. 그로부터 1년 6개월이 지났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2024년 3월 20일 현재 아직도 1심 선고가 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난해 9월 가해자 출소 직전 검찰이 구속 기소해 가해자가 아직은 수감돼 있다는 것이다. (4월 초로 다가온 가해자의 구속기한 만료를 앞두고 나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공포에 시달리며 최근 의사로부터 입원 권유까지 받았다.)


스토킹 피해자가 되어 『스토킹: 신인류의 범죄』를 읽다
『스토킹』을 읽은 건 내가 겪고 있는 일에 대한 해법을 찾기 위해서였지만, 책은 오히려 더 큰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저자들은 나처럼 ‘공적 대상’을 희생양으로 삼는 스토커에 대해 이렇게 기술한다. 
‘공적 대상 스토커 유형이 폭력성을 나타낼 경우에는 굉장히 치밀하고 앞뒤 가리는 것 없이 밀어붙이며 심지어 무기를 사용하는 등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책은 또 이렇게도 말한다. ‘예를 들어 정신병질적 문제를 가진 스토커는 애정을 갈구하는 편지를 보내고 팬심을 드러내는 댓글을 매일 수백 개씩 쓰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피해자를 살해하려고 마음먹을 수 있다.

’스토킹이란 이처럼 피해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무서운 범죄일진대, 가해자에 대한 형벌은 가볍기 그지없고, 피해자에 대한 보호는 어이없이 미약하다. 가해자의 옥중 편지를 저지해 달라고 법원과 검찰에 수차례 탄원서를 쓰고, 교도소와 경찰에 사정했다. 

법원은 응답이 없었고, 교도소에선 수형자의 권리라 어쩔 수 없다고 했으며, 경찰은 이렇게 말했다.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4조(긴급응급조치)에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 금지만 명시돼 있고, 우편을 이용한 접근 금지가 명시돼 있지 않으므로 저희가 해 드릴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사람들이 워낙 편지를 안 보내니 법을 만들 때 우편을 이용한 범죄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한 것일까?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1년 5개월간 편지에 시달렸다. 나와 직장 상사를 편지 스토킹 대상으로 삼던 가해자는 어느덧 범위를 넓혀 어린 여자 후배까지 타깃으로 삼았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공권력이 범죄 피해자를 보호해주지 않으니 언론이 나서 본연의 임무를 다해야 한다 생각했다. 현 스토킹법의 문제를 짚는 기사를 쓸 것을 회사에 제안했고, 지난 1월 13일 <스토킹으로 감옥 갔는데 또 ‘편지 스토킹’… 막을 法 없다>는 제하의 기사로 보도됐다. 

가해자는 기사를 쓴 기자들에게까지 편지를 보내 으름장을 놓았지만, 다행히도 그 이후 검찰에서 교도소에 요청해 가해자에 대한 서신 검열을 실시하기로 결정했다고 알려왔다. 그렇지만 법의 문제점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고, 가해자가 이감되면 다시 해당 교도소에 서신 제한을 요구해야만 한다.


범죄 피해자에겐 높기만 한 안전의 문턱
사건을 겪으며 계속 생각했다. 기자인 나도 이렇게 힘든데, 다른 피해자들은 어떻게 버티는 걸까? 기자로 대할 땐 모든 것이 쉬웠다. 수습기자 때 6개월을 숙식한 경찰서는 내 집 같고, 법원과 검찰도 출입처로 경험해 낯설지 않다. 그렇지만 범죄 피해자가 되고 보니 그 모든 곳의 문턱이 너무나 높았다. 제대로 된 나라라면 그 반대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기자의 눈으로 보면 피해자로서 겪는 모든 일이 기삿거리다. 

형사재판의 원고는 검사이기 때문에 피해자는 사건 당사자가 아닌 제3자다. ‘피고인의 방어권’에 밀려 ‘피해자의 방어권’은 턱없이 제한된다. 가해자가 수감된 종전 사건 때 법원에 낸 엄벌탄원서가 재판 자료라는 이유로 나의 동의도 없이 가해자 손에 들어가 있다는 걸 알고 경악했다. 

판사 보라고 낸 것이지, 가해자 보라고 낸 것이 아닌데? 가해자가 그걸 보면 내게 앙심을 품을 거란 건 상식이 아닌지? 그리고 나의 우려대로 가해자는 탄원서의 구절을 편지에 언급하며 나를 위협했다. 

더 어이가 없었던 건 지난 2월 느닷없이 법정에 출석해 피해자 증인신문을 하게 된 일이었다. 가해자는 내가 자기한테 관심이 있는데, 자기가 다른 여자들에게 관심을 보이자 질투심에서 고소했다고 주장한다.(이수정 교수의 책에 따르면 이는 스토커의 전형적인 사고 구조다.) 그는 수감 전 자신의 유튜브 등에서 내가 자신의 목소리가 궁금해 조선일보 독자센터 직원을 가장해 전화를 걸었다가 끊었다고 주장했다. 

우리 회사 변호사가 보낸 내용 증명을 내가 자신의 거주지인 경남 모 군 단위 지역까지 직접 들고 와 동행한 남성을 우체부로 가장시켜 전달하곤 멀리서 지켜봤다고 주장한다. 검찰은 이를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기소했다. 허위의 증거는 명백하다. 통화내역이 없고, 내용증명을 등기로 보낸 우체국 기록이 있다. 

그런데 더 이상 객관적일 수 없는 이 공적인 증거를 피고인이 부동의했기 때문에 내가 경찰과 검찰에서 한 진술이 증거능력이 없어지므로 법정에 직접 나와 진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대부분의 피고인은 증거를 부동의할진대, 그런 이유로 피해자를 법정에 불러내 스토커와의 물리적 거리를 좁힌다고? 이는 법원이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행하며 스토킹을 완성하는 것이 아닌가?


피해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법관의 일』
법원에선 나름 배려한다고 영상 증언을 하게 해 주겠다 했지만 온라인 스토킹 피해자 입장에서 달라질 건 없었다. 만난 적도 없는 가해자와 실시간으로 접속하게 돼 트라우마를 심화시킬 뿐이었다. 가해자는 나에게 편지를 통해 수차례 자신에게 전화를 하라고, 법정에 나오라고 요구했다. 

법원이 자진해 그의 욕망을 충족시켜준다니 콜로세움의 사자 우리에 알몸으로 던져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왜 법원은 계속해서 나를 가해자와 범죄에 더 노출시키는 걸까? 증언하는 동안 가해자가 소리라도 지르면 내 멘탈이 견딜 수 있을까? 증인소환 통보를 받은 이후 공포와 불안으로 한 달간 체중이 3kg나 빠졌다. 가해자 퇴정과 함께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할 것을 법원에 요청했지만 신문 당일 오전까지 답을 듣지 못했다. 

증인신문이 있던 날 재판장이 피고인 출석을 확인하는 걸 들었을 때, ‘아, 퇴정시키지 않나 보다’ 두려움으로 온 혈관의 피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 다행히 직후 재판장은 피고인을 내보내고 그가 밖에서도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해 주었다. 결단을 내려준 재판부가 고마웠지만, 마음고생을 많이 해서인지 계속 신문 때 있었던 일을 복기하며 눈물 흘리는 등 PTSD를 심하게 겪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이런 의문이 들었다. 국가는 범죄 피해자를 보호할 의무가 있으며, 피해자는 보호를 요구할 권리가 있는데, 왜 피해자가 법관의 자비를 구해야 하는가? 피해자는 왜 가해자를 엄벌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탄원’해야 하는가? 

그 의문을 풀기 위해 송민경 율촌 변호사의 책 『법관의 일』(문학동네)을 읽었다. 그는 판사 시절 쓴 이 책에서 ‘우리의 형사재판 구조는 처벌 오류를 되도록 방지하기 위해 설계된, 피고인 쪽으로 15도쯤 유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영국의 저명한 법학자인 윌리엄 블랙스톤은 ‘한 사람의 무고한 사람을 처벌하는 것보다 열 사람의 범인을 놓치는 것이 낫다’는 말로 형사재판의 기본 이념을 제시한 바 있다’고도 썼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로마법에 기원을 둔 원칙이 우리뿐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형사재판의 대원칙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알았다. 

범죄 피해자가 되기 전이었다면 책을 읽고 법관의 입장에 공감하며 고개 끄덕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피해자 입장에서 블랙스톤의 말은 다르게 읽힌다. 한 사람의 무고한 죄인을 만들지 않기 위해 열 명의 진범을 놓치면, 열 명 이상의 피해자가 나온다. 그들의 눈물은 누가 닦아 줄 것이며, 그들의 생명은 누가 지켜줄 것인가? 
게다가 블랙스톤은 18세기 사람이다. 곳곳에 CCTV가 즐비하고 DNA 검사도 가능해 무고한 죄인의 비율이 현저히 줄어든 현대에도 블랙스톤의 말이 여전히 유효한가? 결국 저 낡은 문장을 아직도 금과옥조로 삼고 있는 것은 법관들이 오판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피고인이 명백한 죄인일 경우에도 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감옥에서 피해자에게 협박 편지를 보내는 것을 법으로 허용하며, 피해자의 엄벌탄원서를 손쉽게 입수하고, 공적인 증거를 부동의해 피해자를 스토커 앞으로 끌어내는 일을 허용해야 하는가?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로마법에 기원을 둔 원칙이 
  우리뿐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형사재판의 대원칙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알았다"


피해자 스스로 지킨다,『싸울게요, 안 죽었으니까』
얼마 전 이코노미스트 서울 특파원 출신인 영국 작가 다니엘 튜더와 저녁을 먹으며 “당신네 나라 사람인 윌리엄 블랙스톤이 이런 말을 했는데 알고 있냐”고 물었다. 그도 들어봤다길래 “영국도 아직 그 말에 기대 피고인 방어권을 지킨다며 피해자를 희생양으로 삼느냐” 재차 질문했다. 그의 답은 이랬다. “재판에 대해선 잘 모르겠지만 이것만은 확실하다. 한국은 성범죄, 스토킹, 아동 대상 범죄, 그리고 술 취해 저지른 일이라는 핑계에 지나치게 너그럽다.”

지난해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김진주(가명) 씨가 국감에 나와 제도개선을 촉구한 결과 재판기록 열람 등에 대한 피해자의 권리가 다소 인정되게 되었다. 그는 최근 출간한 책 『싸울게요, 안 죽었으니까』(얼룩소)에서 이렇게 말한다. ‘부산 돌려차기 피해자여서, 죽다가 살아난 당사자여서, 같은 피해가 여전히 반복 중이어서, 저는 그 싸움을 이어 나갈 당위가 있고 계속 싸울 겁니다.’ 

결국 피해자 보호법은 피해자의 피와 눈물, 그리고 때로는 시신을 먹고 자라는 것이다. 민주화운동 시대에 억울한 옥살이를 한 일부 586 정치인들은 아직도 피고인의 방어권이 철통처럼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한 번쯤은 ‘피고인의 방어권’이라는 말을 ‘가해자의 방어권’으로 바꿔놓고 생각해 봐 달라고 말하고 싶다. 

스토킹 피해자가 된 이후로, 내 영혼은 계속 두들겨 맞아 피멍이 가실 날이 없다. 신(神)이 왜 하필 내게 이런 고통을 주셨을까, 의문이 들 때마다 ‘내게 미약하나마 세상을 바꿀 힘이 있으니, 내 아픔과 경험을 바탕으로 약자들에게 힘이 되어 주라는 뜻이겠지’ 생각하며 가까스로 버틴다. 

‘단 한 사람의 국회의원이라도 이 글을 읽어주겠지, 그러면 나뿐 아니라 다른 피해자들에게도 도움이 되겠지’, 
  생각해 『월간 국회도서관』의 원고 청탁에 응했다.


이수정 외 지음, 『스토킹: 신인류의 범죄』, 지식의 날개, 2024
송민경 지음, 『법관의 일』, 문학동네, 202
김진주 지음, 『싸울게요, 안 죽었으니까』, 얼룩소, 2024


글 - 곽아람 / 조선일보 Books 팀장· 『쓰는 직업』 저자
출처 - 국회도서관 - 2024. 04. vol.519

 [t-24.04.06.  20240401-1559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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