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魯迅) (단편소설2집) - 방황(彷徨)」
고독한 사람(孤独者)
1
내가 웨이 리엔쑤와 알게 된 것은 생각해 보면 꽤 이상한 인연이었다.
우리는 장례식에서 만나서 장례식에서 헤어진 것이다.
그 무렵 나는 S시에 있었는데, 곧잘 그의 이름이 화제에 오르는 것을 들었었다.
그 소문은 어떤 것이든 모두 그가 세상 조류에 맞지 않는 특이한 인간이라는 것이었다.
전공은 동물학이지만, 중학교에서 역사 선생을 하고 있다고 했다.
대인관계는 원만하지 않은데도 곧잘 남을 위해 희생적으로 봉사하기를 좋아한다든가,
가정은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항상 말하면서도
월급을 받으면 하루도 미루지 않고 곧장 그의 할머니에게 보낸다는 등,
대개 이런 얘기들이었으나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자질구레한 이야기들이 있었다.
상황이야 어떠하든지 그는 S시 사람들의 얘깃거리로 늘 등장하는 인물 중의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해 가을, 나는 한석산에 있는 어느 친척집에 휴양차 머물렀던 적이 있었다.
그 친척의 성은 웨이인데, 리엔쑤와는 종씨였다.
그런데 그들은 리엔쑤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하고는, 마치 그를 외국인처럼 취급하면서 말했다.
"우리들과는 아주 딴판이라서요."
그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중국에 학교가 서기 시작한 지 이미 20년이 거의 다 되어 가는데도 이 한석산에는 아직 소학교 하나 없었는데,
이 산골에서 유일하게 리엔쑤만이 해외에서 유학하고 돌아왔으니,
동네 사람들의 눈엔 그가 확실히 별난 사람처럼 보일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그가 굉장히 돈을 많이 벌었다느니 어쨌다느니 하면서 질투를 했던 것이다.
가을이 다 갈 무렵, 산촌에는 이질이라는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다.
나도 위험할 것 같아서 시내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때 리엔쑤의 할머니도 이 병에 걸렸다는 말을 들었다.
노인이기 때문에 병이 아주 중한 상태라고 했다.
의사조차 없었다.
리엔쑤의 가족이라고는 할머니 한 분뿐이라 하녀를 두고 간소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리엔쑤는 어렸을 때 부모를 여의고 이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했던 것이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리엔쑤의 할머니가 전에는 고생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편안하게 여생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단지 리엔쑤에게 처자가 없어서 집안이 매우 쓸쓸했다.
이런 점도 그가 사람들로부터 이질적인 존재라고 여겨지는 원인의 하나였는지도 모른다.
한석산은 시내에서 육로로 100리,
수로로는 70리나 떨어져 있어서 급히 사람을 보내 리엔쑤를 부르러 간다고 해도 왕복에 적어도 나흘은 걸린다.
벽지인 산촌에서는 그런 작은 일도 사람들에게 커다란 관심거리가 된다.
이튿날이 되자 병자의 상태가 매우 나빠져서 서둘러 사람을 보냈다는 소문이 널리 퍼졌다.
그날 밤 2시쯤이 되자 병자는 숨이 가빠지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어째서 리엔쑤를 한 번만이라도 보게 해주지 않는 거냐?"
집안의 어른들이나 가까운 일가, 할머니의 친정 사람들, 그리고 동네의 한가한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리엔쑤가 도착하면 곧 입관할 수 있도록 준비하려는 것이었다.
관이나 수의는 이미 준비되어 있으니 새로 장만할 필요는 없었다.
그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이 승중손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승중손:承重孫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조부모의 상사를 당할 때 아버지를 대신하여 상제 노릇을 하는 장손)
왜냐하면 그가 틀림없이 모든 장례 의식을 신식으로 하자고 할 것이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논한 결과, 대체로 크게 세 가지 조건을 정하고 실행하도록 강요하기로 했다.
첫째는 흰 상복을 입을 것,
둘째는 무릎을 꿇고 고인에게 절할 것,
셋째는 승려나 도사를 불러다가 염불을 외게 할 것 등이었다.
말하자면 모든 것을 재래 관습대로 하자는 것이었다.
이 의결이 정해지자 그들은 리엔쑤가 도착하는 날,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그의 집으로 가서 항의할 태세를 갖추고
서로 힘을 합하여 단호하게 담판을 짓자고 미리 계획을 짜놓았다.
동네 사람들은 군침을 삼키며 별 다른 일이 일어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리엔쑤가 '서양교육'을 받은 이른바 '신식파'이고 지금까지 그렇게 행동해 왔으므로
쌍방간에 싸움이 일어날 것을 알고 있었다.
어쩌면 굉장한 구경거리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고 그들은 생각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리엔쑤는 오후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는 집에 들어가자마자 할머니의 영전에 약간 머리를 숙였다.
친척들은 곧 예정했던 대로 그를 대청으로 끌고 갔다.
우선 장황하게 사전 설명을 하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것도 여럿이서 교대로 계속 설명을 해서 그에게 반대할 여유를 주지 않도록 했다.
그러고 나자 모든 것을 다 말해버렸기 때문에 더 할말이 없었다.
침묵이 흐를 뿐이었다.
모두들 그의 입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랬더니 리엔쑤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간단히 말했다.
"모두 좋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뜻밖의 일이었다.
사람들은 한시름 놓기는 했지만, 도리어 개운치 않은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너무 뜻밖의 일이라 마음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소식을 전해 들은 동네 사람들도 크게 실망했다.
그래서 서로들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이상한 일인걸.
'모두 좋습니다.'라고 했다니 우리 한번 가 봅시다."
모두 좋다고 했다면 재래 관습을 따르겠다는 뜻이니 볼 필요도 없지만, 그래도 그들은 보고 싶어했다.
초저녁이 되자 사람들은 호기심에 이끌려서 대청 앞으로 몰려들었다.
나도 구경꾼 중의 한 사람이었다.
미리 양초를 한 통 보내고 그의 집에 들어가 보니 리엔쑤는 벌써 고인에게 수의를 입히고 있었다.
그는 왜소하고 마른 체구였고, 길쭉한 얼굴의 절반 정도는 이마에 흩어진 머리카락이며 짙은 눈썹,
또 시커먼 수염 등이 차지하고 있어서, 단지 두 눈만이 검은 바탕 속에서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
그가 수의를 입히는 것을 보니까 그 입히는 식이 제법 질서 정연했고,
마치 장례를 여러 번 치른 경험자 같아서 옆에서 보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감탄할 정도였다.
한석산에서는
옛날부터 이런 경우에 무슨 트집을 잡아서라도 집안 어른들이 귀찮게 잔소리를 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렇게 하였지만
그는 오히려 침묵을 지킬 뿐 누가 뭐라고 잔소리를 해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내 앞에 서 있던 머리가 절반쯤 센 노파가 정말 놀랐다는 듯이 칭찬의 말을 늘어놓았을 정도였다.
다음은 배례를 하는 순서였다.
그리고 곡을 하였다.
여자들은 주문을 외웠다.
그러고 나선 입관이었다.
또 배례를 하고 곡을 한 다음, 끝으로 관에 못을 박았다.
한순간 조용해졌다.
그러나 다음 순간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의심스럽고 불만스러운 듯한 공기가 흘렀다.
나에게도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리엔쑤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방울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는 돗자리 위에 우두커니 앉은 채 두 눈만을 번들번들 빛내고 있을 뿐이었다.
입관 절차는 이 불평이 섞인 이상한 분위기 속에서 끝났다.
사람들은 불평을 품은 채 일어나려는 참이었다.
그러나 리엔쑤는 돗자리 위에 앉은 채 무슨 골똘한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러다 원만하지 않은데도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뒤이어 곡성이 터져 나왔다.
그 소리는 곧 느껴 우는 소리로 변했다.
상처를 입은 늑대가 한밤중에 광야에서 울부짖는 것처럼 비참한 고통 속에 분함과 슬픔이 뒤섞인 소리였다.
이런 일은 옛날부터 내려오는 관습엔 없었기 때문에 미리 대책을 강구하지 않았었다.
사람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서 그저 멍청히 있었다.
그러는 중에 다가가서 위로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 사람이 차차로 많아져서 그는 드디어 사람들로 에워싸였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앉아서 목놓아 울었다.
마치 철탑처럼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사람들은 이젠 흥미를 잃어 뿔뿔이 흩어졌다.
그는 울고 또 울고 반시간을 울고 나서야 문득 울음을 그쳤다.
그리고 조객들에게 인사도 없이 안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뒤따라가서 그의 거동을 살펴보고 온 사람의 말에 따르면
그는 할머니의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눕더니 곧 깊이 잠들어버리더라는 것이었다.
이틀이 지나고 내가 시내를 향해 출발하기 전날,
나는 동네 사람들이 도깨비라도 만난 것처럼 흥분해서 떠들고 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리엔쑤가 모든 가재 도구 중에서 절반을 할머니를 위해 태우고,
남은 부분은 할머니가 계실 때 시중을 들고,
돌아가셨을 때 할머니를 위해서 일한 하녀에게 나누어 주기로 했다는 이야기였다.
또 집조차 계약도 하지 않고 무기한으로 그 하녀에게 살라고 하였으므로
친척들이 마땅찮게 여겨 항의했지만 그 뜻을 꺾을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호기심에서였겠지만, 나는 돌아오는 길에 그의 집에 들러서 그를 위로해 주었다.
그는 상복 차림으로 나왔지만, 표정은 여전히 차가웠다.
나는 애써 그를 위로하는 말을 했지만, 그는 그저 끄덕거릴 뿐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한 마디 할 뿐이었다.
"당신의 배려에 감사합니다."
2.
우리들이 세 번째로 얼굴을 대하게 된 것은 그해 초겨울 S시의 어느 책방에서였다.
루쉰 - 고독한 사람(孤獨者)
역자 - 김시준
을유문화사 - 2008.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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