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텍쥐페리 - 어린왕자」
25
"사람들은"
어린 왕자의 말이다.
"사람들은, 특급 열차를 타고 무얼 찾아가는지 모르고 있어.
그래서 초조해 가지고 빙글빙글 도는 거야....,"
그리고 그는 덧붙여 말했다.
"그건 필요 없는 행동이야....,"
우리가 찾아낸 우물은 사하라 사막의 우물 같지 않았다.
사하라 사막의 우물은 모래에 뚫린 단순한 구멍일 따름이다.
우리가 찾은 우물은 마을의 우물 같았다.
하지만 거기엔 마을이 없었으므로 꼭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거 이상한데."
내가 어린 왕자에게 말했다.
"다 있으니 말이야. 도르래, 물통, 줄까지....,"
그는 웃으면서 줄을 만지고 도르래를 돌려 보았다.
그러자 낡은 풍차가 오랜만에 바람을 맞아 삐걱거리는 모양처럼 도르래도 삐걱거렸다.
"아저씨, 들어 봐,
우리가 이 우물을 깨우니까 노래를 하는 거야......,"
나는 그가 일을 하는 게
"내가 할게.
너무 무거워 넌 힘들어."
나는 천천히 우물의 둘레 귀퉁이까지 물통을 끌어올렸다.
나는 그것을 거기에 똑바로 얹어 놓았다.
내 귀 속에서는 우물의 노래가 계속되었고,
나는 아직도 출렁거리는 물 속에서 해가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그는 웃고, 줄을 만지며, 도르래를 돌렸다."
"난 이 물이 마시고 싶었어."
어린 왕자가 말했다.
"마시게 해 줘....,"
그래서 나는 그가 뭘 찾았는가를 깨달았다.
나는 그의 입술에까지 물통을 들어 주었다.
그는 눈을 감고 물을 마셨다.
그것은 축제처럼 기뻤다.
그 물은 마시는 것 이외의 어떤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성탄 선물처럼 마음에도 좋았다.
내가 어린이였을 때도 이와 같이 크리스마스 나무의 불빛,
자정 미사의 노래,
상냥한 웃음이 내가 받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빛나게 해주었다.
"아저씨 별의 사람들은 정원에 장미꽃을 5천 송이나 가꾸지만
자기들이 찾는 걸 거기서 찾아내지 못해."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래."
내가 대답했다.
"하지만 그들이 찾는 것은 장미꽃 하나에서도 물 조금에서도 찾아지는 건데....,"
"그래."
내가 대답했다.
그러자 어린 왕자가 덧붙여 말했다.
"하지만 눈으로는 보지 못해.
마음으로 찾아야 해."
나는 물을 마셨다.
마음이 턱 놓였다.
모래는 아침 햇살을 받아 꿀 색깔이 됐다.
나는 또한 이 꿀 색깔 때문에도 행복했다.
무엇 때문에 슬퍼해야 하는가?
"아저씨 약속을 지켜야지."
어린 왕자가 다시 내 곁에 앉아 부드럽게 말했다.
"무슨 약속?"
"알면서....
양에게 씌울 굴레 말이야...
그 꽃에 대한 책임이 있으니까"
나는 주머니에서 끄적거려 두었던 그림을 꺼냈다.
어린 왕자가 그걸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아저씨가 그린 바오밥나무는 배추를 좀 닮았어....,"
"그래?
난 바오밥나무 그림을 퍽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는데...."
"아저씨 여우는...
귀가 약간 뿔 같아.... 너무 길구!"
그리고 그는 또 웃었다.
"얘야.
넌 너무하구나.
난 속이 보이는 보아 구렁이하고 속이 안 보이는 보아 구렁이밖에 못 그리잖니."
"응, 괜찮아.
아이들은 알아."
나는 그래서 연필로 굴레를 그렸다.
그것을 어린 왕자에게 주니 가슴이 꽉 찼다.
"너 뭔가 딴 생각이 있구나....."
그러나 내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저씨, 지구에 떨어진 게 내일이면 일 년이야....,"
그리고 조금 있다가 그가 또 말했다.
"바로 이 근처에 떨어졌어...."
그리고는 얼굴을 붉혔다.
그러자 나는 웬일인지 나도 모르게 이상한 설움이 북받쳐 올랐다.
그러는 중에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그럼,
일주일 전에 내가 너를 만난 날 아침,
혼자 사람 사는 곳에서 수만 리 떨어진 곳에서 거닐고 있던 게
우연히 그런 건 아니로구나!
네가 떨어진 곳으로 되돌아가는 길이었니?"
어린 왕자는 또 얼굴을 붉혔다.
그래서 주저하면서 덧붙여 말했다.
"일 년이 되어서 그러니....?"
어린 왕자가 다시 얼굴을 붉혔다.
그는 질문에 대답하는 법이 없었다.
그러나 얼굴을 붉히는 건 '그렇다'라는 뜻이 아닌가!
"오! 난 겁이 나......,"
그러나 그가 대답했다.
"아저씬 이제 일해야지.
기계 있는 데로 가야지.
난 여기서 아저씰 기다릴게.
내일 저녁에 다시 와...."
그러나 나는 안심이 되지 않았다.
여우 생각이 났다.
길을 들여 놓으면 울 염려가 있는 것이다.
26
우물 옆에는 오래 된 돌담이 무너진 것이 있었다.
다음날 저녁 일을 마치고 돌아오니
어린 왕자가 다리를 늘어뜨리고 그 위에 걸터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나는 그가 말하는 소릴 들었다.
"자, 이제 가 봐.... 난 내려가고 싶어."
"그래,
너는 생각이 안 나? 여기는 아니야!"
다른 목소리가 그에게 대답하였음이 틀림없다.
그가 이렇게 곧 대꾸했던 것이다.
"아니야 아니야,
날짜는 맞지만 장소는 여기가 아니야...."
나는 담 쪽으로 그대로 걸어갔다.
계속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어린 왕자가 다시 대꾸했다.
"그래.
내 발자국이 모래 어디에서부터 시작하는지를 봐 둬.
거기서 날 기다리면 돼.
오늘 밤 거기 가 있을게....,"
나는 담에서 20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린 왕자가 잠시 후에 또 말했다.
"독은 좋은 거니?
오래 아프게 하지 않을 자신 있니?"
나는 가슴이 죄어 와서 발을 멈췄다.
그러나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이제 가 봐." 그가 말했다.
"내려가고 싶어!"
그때서야 담 밑을 내려다보다가 나는 펄쩍 뛰었다.
30초에 사람을 죽여버리는
그 노란 뱀 하나가 어린 왕자를 향해 대가리를 들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권총을 꺼내려고 주머니를 뒤지며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 발소리를 듣고
뱀은 마치 잦아 들어가는 분수처럼 조용히 모래 속으로 기어가더니,
서두르는 기색도 없이 가벼운 쇳소리를 내며 돌 틈으로 교묘히 사라졌다.
내가 담 밑에 이르른 바로 그 순간
눈처럼 창백해진 나의 꼬마 왕자를 나는 품 안에 안아 들었다.
"어떻게 된 거야?
이젠 뱀하고 이야길 하고?"
나는 그가 끌러 본 적이 없는 그 금빛 목도리를 풀었다.
나는 그의 관자놀이를 적셔 주고 물을 먹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에게 무얼 물어 볼 엄두도 못 냈다.
그는 나를 힘없이 바라보더니 양팔로 내 목을 껴안았다.
총을 맞고 죽어가는 새 모양 그의 가슴이 뛰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말했다.
"고장 난 기계를 고치게 돼서 참 좋아.
이제 아저씨는 집에 갈 수 있을 거야.....,"
"그럴 어떻게 아니?"
난 바로 천만 뜻밖에 기계고치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을
그에게 알리러 왔던 참이었다.
그는 내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덧붙여 말했다.
"나도 오늘 내 집으로 돌아갈 거야....," 그러다가 우울하게
"너무 멀고…… 너무 힘들어……."
나는 무언가 이상한 일이 생겼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를 아이처럼 품 안에 꼭 껴안았다.
그러나 내가 걷잡을 사이도 없이
그 애가 끝없는 구멍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그는 진지한 눈빛으로 먼 데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저씨 양이 있고,
양을 넣어 두는 상자하고 굴레가 있으니."
그는 쓸쓸하게 웃었다.
나는 오래 기다렸다.
그의 몸이 서서히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얘야, 무서웠던 모양이구나...."
물론 무서웠지!
그러나 그는 상냥하게 웃었다.
"오늘 저녁이 훨씬 무서울 거야."
나는 어떻게 회복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에 등골이 싸늘해졌다.
이 웃음 소리를 다시는 듣지 못하게 되리라는 생각이
견딜 수 없는 일임을 나는 깨달았다.
그 웃음은 나에게는 사막에 있는 우물 같은 것이었다.
"얘야, 네 웃음 소리가 더 듣고 싶구나....."
그러나 그가 말했다.
"오늘 밤이면 일 년이 돼.
내 별이 내가 작년에 떨어진 그 장소 바로 위에 오게 돼……."
"얘야,
뱀이니 약속이니 별이니 하는 이야기는 전부 나쁜 꿈 아니니?"
그는 내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는 말했다.
"중요한 건 보이지 않아"
"물론이지……."
"꽃도 마찬가지야,
어떤 별에 있는 꽃을 사랑하게 되면,
밤에 하늘을 바라보는 게 정말 아늑하지.
모든 별에 다 꽃이 피어 있으니까."
"그래...."
"물도 마찬가지야.
아저씨가 먹어 준 물은 도르래와 줄 때문에 음악 같았어....
기억나지? ……
참 좋은 물이었어."
"물론이지.....,"
"밤에 별을 쳐다 봐.
내 별은 너무 작아서 어디 있는지 보여줄 수가 없지.
그게 더 좋아.
내 별은 아저씨에겐 여러 별 중의 하나가 될 거야.
그러면 모든 별을 바라보는 게 좋아질 거야.
전부 아저씨 친구가 되겠지.
그리고 아저씨에게 내가 선물을 하나 줄게."
그는 다시 웃었다.
"오!
얘야, 난 그 웃음 소릴 듣는 게 좋아!"
"바로 이게 선물이야…….
이건 물도 마찬가지야……."
"무슨 소리니?"
"사람마다 별들은 서로 뜻이 달라.
여행을 하는 사람들에게 별은 안내인이고
어떤 사람들에겐 별이 조그만 빛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고,
학자들에게는 별들이 문젯거리야.
그 상인에게는 금이고,
하지만 별들은 말이 없어.
아저씬 별을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보게 될 거야……."
"그게 무슨 소리니?"
"아저씨가 밤에 하늘을 쳐다보면,
내가 그 별들 중의 하나에서 살고 있고 그 별 중의 하나에서 웃고 있으니까.
아저씨로서는 모든 별들이 웃고 있는 것 같을 거야.
아저씬 웃을 줄 아는 별을 갖게 되는 거야"
그리고 그는 웃었다.
"슬픔이 가라앉으면....
시간이 지나면 슬픔은 가라앉게 마련이니까.....
나를 알게 된 것이 기쁘게 생각될 거야.
아저씬 언제까지나 내 친구일 거고,
나하고 웃고 싶어지겠지.
그러면 이처럼 괜히 창문을 열 게구........
그러면 아저씨 친구들이 하늘을 쳐다보며 아저씨가 웃는 걸 보고 깜짝 놀랄 거야.
그러면 아저씬 말하겠지.
'그래, 별을 보면 항상 웃음이 나네!' 라고 말이야.
그러면 아저씰 미쳤다고 할 거야.
난 그럼 아저씨한테 매우 잘못을 한 게 되겠는데……."
그리고 그는 또 웃었다.
"그건 별 대신에 웃을 줄 아는
조그만 방울을 잔뜩 아저씨에게 준 것과 마찬가지일 거야……."
그리고 그는 또 웃었다.
그러더니 엄숙한 얼굴이 되었다.
"아저씨……
오늘 밤에....... 오지 마......."
"난 네 곁을 떠나지 않겠어."
"나는 아픈 것 같이 보일 거야……. 죽어가는 것 같이 보일 거야.
그럴 거야.
그걸 보러 오지는 마. 올 필요 없어……."
"난 네 곁을 떠나지 않겠어."
그러나 그는 걱정스러운 눈치였다.
"이런 말을 하는 건…… 뱀 때문이기도 해.
아저씰 물지도 몰라.......
뱀은 사나워.
괜히 무는 수가 있어……."
"난 네 곁을 떠나지 않겠어."
그러나 어떤 생각이 그를 안심시킨 모양이었다.
"뱀들이 두 번째 물 때에는 독이 없긴 하지만……."
그날 밤 나는 그가 길을 떠나는 걸 보지 못했다.
그는 소리 없이 빠져 나간 것이었다.
내가 그를 따라잡았을 때 그는 재빠른 걸음으로 단호하게 걷고 있었다.
"아! 아저씨구나....,"
그리고 그는 내 손을 잡았다.
그러나 그는 또 다시 걱정을 했다.
"아저씨가 온 건 잘못이야.
걱정을 하게 될 텐데.
난 죽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야"
나는 가만히 있었다.
"알았지.
거긴 너무 멀어.
난 이 몸을 끌고 갈 수가 없어.
너무 무겁거든"
나는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이건 내버린 낡은 껍질 같은 거야.
낡은 껍질은 슬플 게 없어......"
나는 말없이 있었다.
그는 좀 기가 죽었다.
그러나 그는 힘을 냈다.
"아저씨.
그건 멋있을 거야.
나도 별을 쳐다볼 거야.
모든 별들이 녹슨 도르래 달린 우물이 될 거야.
모든 별들이 나에게 샘물을 먹여 줄 거야……."
나는 가만히 있었다.
"정말 즐거울 거야.
아저씬 오억 개의 방울을 가지게 되고 난 오억 개의 샘을 가지게 되니...."
그러고는 그도 말을 그쳤다.
그도 울고 있었던 것이다.......,
"저기야.
나 혼자 한 걸음만 가게 해 줘"
그리고 그는 겁이 나서 주저앉았다.
그가 또 말했다.
"아저씨…….
내 꽃 알지……. 그건 내 책임이야!
그게 얼마나 약한데!
얼마나 천진난만하고!
그런데도 몸을 보호하는 데 네 개의 가시밖에 없단 말이야....,"
나는 더 이상 서 있을 수가 없어 주저앉았다.
그는 말했다.
"자……
이것 뿐이야........"
그는 또 잠깐 망설이더니 다시 일어났다.
그가 한 걸음을 내디뎠다.
나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의 발목에서 노란 빛이 반짝했을 뿐이었다.
그는 잠시 동안 그대로 서 있었다.
그는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나무 쓰러지듯 넘어졌다.
모래 때문에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 이 글은 <어린왕자>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저자 - 생텍쥐페리 - 어린왕자
역자 - 박용철,
덕우 - 1989. 0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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