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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작가책방(소설

23-24. 생텍쥐페리 - 어린 왕자

by 탄천사랑 2007. 5. 18.

「생텍쥐페리 - 어린 왕자」  

 

 

23
"안녕."  하고 어린 왕자가 말했다.
"안녕."  하고 상인이 대답했다. 

그는 갈증을 없애는 알약을 파는 상인이었다.
일주일에 한 알만 먹으면 목이 마르지 않는 것이다.

"아저씬 왜 이걸 팔지?"  어린 왕자가 물었다.
"시간이 굉장히 절약되니까."  상인이 말했다.
"전문가들이 계산을 했는데 일주일에 오십 삼 분 절약된대."
"그 오십 삼분엔 뭘 하지?"
"하고 싶은 걸 하지....."  어린 왕자는 생각했다.
"나 같으면 오십 삼 분 동안 천천히 우물가로 걸어가겠어."


 
24
사막에서 비행기 고장을 일으킨 지가 여드레째 되는 날이었다.
나는 남은 물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마시면서 어린 왕자의 이 장사꾼 이야기를 들었다.


"아! 네 이야기는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다. 

  그런데 나는 비행기를 아직 못 고쳤고 이제는 마실 물조차 떨어졌으니,

  샘 있는 데로 천천히 걸어갈 수나 있었으면 좋겠구나!"
"내 친구 여우가……."
"얘야, 지금은 여우가 문제가 아니야!"
"왜?"
"우린 목이 말라 죽을 테니까."  그는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이런 대답을 했다.
"죽게 되더라도 친구를 두었다는 건 좋은 일이야. 

  나는 여우 친구를 하나 둔 게 참 좋아."


'이 애는 얼마나 위급한지를 알지 못하는구나. 

 영 배도 안 고프고 목도 안 마르고, 그저 햇볕만 좀 있으면 그만이니까…….'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어린 왕자는 나를 돌아다보며 내 생각에 대답을 했다.


"나도 목이 말라……. 

  우리 우물을 찾아 가."


나는 맥이 탁 풀렸다. 
끝없는 사막 가운데에서 무턱대고 우물을 찾아 나선다는 것은 당치도 않은 소리다. 

그렇지만 우리는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몇 시간 동안을 아무 말 없이 걷고 나니 해가 떨어지고 별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나는 갈증 때문에 열이 좀 있어 별들이 꿈속같이 보였다. 

어린 왕자가 한 말이 내 기억 속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그래 너도 목이 마르단 말이냐?"  그러나 그는 내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이런 말만 했다.
"물은 마음에도 좋을 수가 있어……."


나는 그의 대답을 알아듣지 못했으나 아무 말도 안 했다. 

그에게 물어 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으니까.
그는 피곤해서 앉았다. 
나도 그의 옆에 자리 잡고 앉았다. 

그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이윽고 또 이러한 말을 했다.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는 꽃 때문에 별들은 아름다운 거야."


나는 '그렇고 말고'하고 대답한 뒤에 아무 말 없이 달빛 아래 펼쳐져 있는 주름진 모래 언덕을 바라보았다.


"사막은 아름다워."


어린 왕자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것은 정말이었다. 

나는 언제나 사막을 좋아했다. 

모래 언덕에 앉아 있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침묵 속에 무엇인가 빛나는 것이 있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디엔가 우물이 숨어 있기 때문이야."


어린 왕자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천만 뜻밖에도 모래의 이 신비로운 빛남을 갑자기 이해하게 되었다. 

어렸을 적에 나는 오래된 집에 살고 있었는데, 

그 집에는 보물이 묻혀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왔다. 

물론 아무도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고 또 어쩌면 찾아보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보물로 인해서 그 집은 매력이 있었다. 

그 속 깊숙이 어떤 비밀을 간직하고 있었으니까.


"맞았다. 

  집이건, 별 이건, 사막이건 그 아름다움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서 오는 거다."하고 나는 어린 왕자에게 말했다.
"아저씨가 내 여우하고 같은 생각을 하는 걸 보니 난 좋아."


어린 왕자가 잠이 들기에 나는 그를 품에 안고 다시 길을 떠났다. 

나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깨지기 쉬운 보물을 안고 가는 듯싶었다. 

이 세상에 그보다도 더 여린 물건은 없으리라고까지 생각되었다. 

그 하얀 이마, 감긴 눈, 

바람에 나부끼는 머리카락들을 달빛에 비춰 보며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지금 보는 것은 오직 껍질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안 보이는 것이다.'


반쯤 벌어진 그의 입술이 방그레 웃음을 머금는 것을 보고 또 이런 생각도 했다.
'잠이 든 어린 왕자가 

  이렇게까지 깊이 내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은 이 애가 꽃 하나에 대해서도 충실한 것과,

  잠을 자는 동안에도 등불의 불꽃 모양으로 그 안에서 빛살을 내쏘는 장미꽃의 모습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 애가 생각보다 더 여리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등불은 잘 가려주어야 한다. 

바람이 한 번 몰아치면 꺼질 수도 있으니까.
이렇게 걸어가다가 해가 뜰 무렵에야 우물을 발견하였다.
※ 이 글은 <어린왕자>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생텍쥐페리  - 어린 왕자
역자 - 박용철
덕우 - 1989. 0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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