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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책방(소설

루 ru - 인생이라는 싸움에서는 슬퍼하면 진다

by 탄천사랑 2023. 11. 25.

·「킴 투이 - 루」

 

 

 

인생이라는 싸움에서는 슬퍼하면 진다
우리를 현재가 기다리는 곳으로 데려가 준 것은 캐나다에서의 첫 선생님이었다. 
그녀는 우리 그룹의 베트남 아이 일곱 명을 이끌고 현재로 가는 다리를 함께 건너주었다. 
미숙아로 태어난 아이를 돌보는 어머니 같은 정성으로,  새 땅에 옮겨 심기는 우리를 돌봐주었다. 
선생님의 펑퍼짐한 허리, 
볼록하게 솟은 풍만한 엉덩이가  느리고 편안하게 흔들리는 모습에 우리는 최면에 걸린 듯 몽롱해졌다. 
그녀가 새끼 오리들을 이끄는 어미 오리처럼 앞장서서 안내한 피난처에서 
우리는 온갖 색과 그림 그리고 자질구레한 물건들에 둘러싸여 다시 어린아이가 되었다.

고마운 선생님을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무엇보다 그녀는 낯선 땅에 온 여자아이에게 처음으로 무언가를 바랄 수 있게 해주었다. 
그것은 그녀처럼 살찐 엉덩이를 흔들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나와 같이 있던 베트남 아이들은 그 누구도 그렇게 풍만하고 넉넉한, 편안한 곡선을 갖지 못했다. 
우리는 모두 모나고 앙상하고 뻣뻣했다. 
나를 향해 몸을 숙인 선생님이 내 두 손을 잡으며 
“내 이름은 마리 프랑스란다. 넌?”이라고 물었을 때,  나는 마음속으로 한 음절 한 음절 그대로 따라 했다. 
눈을 깜빡이지도, 무슨 뜻인지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싱그러움과 경쾌함과 달콤한 향기가 구름처럼 나를 감싸며 포근히 재워주는 것 같았다. 
나는 선생님이 말한 단어를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 목소리의 선율은 이해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넘치도록 충분했다.

어느 날 부모님 앞에서 그 말을 따라 해보았다. 
“내 이름은 마리 프랑스란다. 넌?” 부모님은 내게 이름을 바꿨냐고 물었다. 
바로 그 순간 현실이 다시 나의 발목을 잡았다. 
귀가 들리지 않고 말을 못하지 않지만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나의 현실이 나의 꿈들을, 
그러니까 멀리,  앞을 멀리 바라보는 힘을 앗아간 것이다.
 
나와 달리 프랑스어를 할 줄 알았던 부모님 역시 더 이상 멀리 바라볼 수 없었다. 
프랑스어 입문 수업에서, 
다시 말해 일주일에 40달러를 받을 수 있는 수강생 명단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그 수업을 듣기에는 필요 이상의 능력을 갖추었고, 
그 수업을 제외한 다른 곳에서는 아무런 능력이 없었다. 
자신들의 앞날을 바라볼 수 없게 된 부모님은 그 대신 자식들을 위해서,  자식들의 앞날을 바라보았다.
 
부모님은 자식들을 위해 칠판을 지우고,  학교의 변기를 청소하고, 냄란을 말았다. 
하지만 부모님의 눈은 칠판과 변기와 냄란을 향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오직 자식들의 미래만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해서 오빠와 남동생,  그리고 나는 부모님의 눈길이 향하는 곳으로, 그 눈길을 따라 나아갔다. 
나는 이미 눈길이 꺼져버린 부모들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은 해적의 몸에 깔려서, 
혹은 전쟁 동안의 수용소가 아니라 
전쟁이 끝난 뒤의 수용소에서 오랫동안 공산주의 재교육을 받느라 눈빛을 잃었다.

그랜비 산업단지의 장화 공장에서 
바닥청소를 하기 전에 그는 판사이고 교수이고 미국 대학 출신이고 아버지이고 죄수였다. 
장화 공장의 고무 냄새와 사이공 법원 사이에는 2년 동안의 사상 교육이 있었다. 
판사로서 공산당 동포들을 재판했다는 게 그의 죄목이었다.
교화소에서는 그가 재판을 받는 쪽이었다. 
그는 전쟁의 패자 편에 섰던 다른 수백 명과 함께 줄지어 서야 했다.
교화소는 정글로 둘러싸야 세상에서 고립된 곳이었다. 
그곳에서 반동분자이자 민족의 배신자, 
미국인들을 위해 일한 부역자였던 자신들의 행동을 반성하고 공개 자아비판을 해야 했다. 
나무를 배고 옥수수를 심고 지뢰를 제거하면서 어떻게 속죄할지 생각해야 했다.

어렸을 때는 전쟁이 평화의 반대말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베트남이 전쟁 중일 때는 평화롭게 살았고, 

사람들이 무기를 내려놓은 뒤에 오히려 전쟁을 치렀다. 
지금의 나는 전쟁과 평화가 친구 사이라고,  둘이 한편이 되어 우리를 조롱한다고 믿는다. 
전쟁과 평화는 우리가 어떻게 정의하고 어떤 역할을 부여하든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들이 필요할 때 멋대로 우리를 적으로 삼는다. 
전쟁이든 평화든 겉만 보고 어느 쪽으로 눈길을 향할지 결정해서는 안 된다. 
다행히도 부모님의 눈길은 불안한 세태 속에서도 꺼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사이공에서 8학년일 때 
교실 칠판에 적혀 있었다는 속담을 나에게 자주 말해주었다.

Ðời là chiến trận, nếu buồn là thua.
도이 라 찌엔쩐, 네우 부온 라 투어 
(인생이라는 싸움에서는 슬퍼하면 진다.)   (p28)
※ 이 글은 <루>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킴 투이 - 루
역사 - 윤진
문학과 지성사 - 2019. 11. 29.

동대문역사문하공원  [t-3.11.23.  20221104-142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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