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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작가책방(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양초

by 탄천사랑 2024. 1. 22.


·「톨스토이 단편선 1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양초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라고 하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에게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 보복하지 마라. - 마태의 복음서, 5:38.


이것은 아직 농노가 해방되지 않았을 적의 이야기랍니다. 
그 무렵에는 지주에도 별별 사람이 다 있어서 자기도 언젠가는 죽을  때가 있다는 것을 잊지 않고
하느님을 공경하고 농노를 불쌍히 여기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그 중에는 농노 출신으로 갑자기 지주가된, 
말하자면 미꾸라지가 용이 된 것처럼 귀족의 대열에 끼인 자들만큼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은 없었지요.
그런 사람 때문에 농민들의 생활은 더욱 고통을 받게 되었습니다.

어떤 귀족의 토지에 그런 마름이 나타났습니다.  
농군들은 부역을 하고 있었지요. 
토지는 충분하고 땅은 기름지고 물도 풀밭도 숲도 모두가 남아돌아갈 정도로 넉넉해서도  
농노도 아쉬운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지주는 다른 곳에 있는 농군 출신의 하인을 마름으로 앉혔던 것입니다.

마름은 권력을 잡자 농민을 구박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도 한 가정의 가장으로 아내 말고도 시집간 딸이 둘이나 되고 
벌만큼 벌었으므로 그렇게 심하게 굴지 않아도 편안히 살아갈 수 있었는데 
욕심이 너무 많은 때문에 나쁜 길로 빠져 버린 것입니다. 
우선 첫 시작으로 농민들을 예정된 날짜 이상으로 일을 시켰습니다. 
벽돌 공장을 세워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마구 끌어다가 일을 시키고, 
만들어 낸 기와는 팔아먹는 것이었어요.

농민들은 모스끄바에 있는 주인에게 가서 마름의 일을 호소했으나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지주는 그냥 농부를 쫓아낼 뿐 마름의 권력을 빼앗으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마름은 농민들이 호소하러 모스끄바를 갔었다는 소식을 듣고선 앙갚음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문에 농민들의 살림살이는 더욱 어렵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농민 중에는 좋지 못한 자들까지 있어서 
친구의 일을 마름에게 일러바쳐 서로가 서로를 구렁텅이에 빠뜨리려고 했습니다. 
이리하여 농민들은 단결은커녕 서로 싸우게 되고 마름은 더욱더 나쁜 짓을 하게 되었습니다.
  
날이 가면 갈수록 마름의 횡포는 심해져서 
결국 농민들은 누구나 이 마름을 사나운 짐승보다도 더욱 무섭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마름이 마차를 타고 마을을 지나갈 때면 
모두 늑대라도 나타난 것처럼 아무데나 재빨리 몸을 숨겨 그의 눈에 뜨이지 않게 했습니다. 
마름은 그런 모양을 보고 놈들은 나를 무서워하는군 하면서 
더더욱 화를 내고 때리고 일을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농민들은 퍽 고통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 무렵, 농민들은 때때로 그런 좋지 못한 악인은 슬쩍 죽여버려야겠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 마을 농민들도 그렇게 할 것을 의논했습니다. 
그들은 으슥한 곳에 모였는데 그 중에도 가장 배짱이 있는 친구가 말을 꺼냈습니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저 악당을  내버려둬야 하나? 
 어차피 죽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하니 저놈을 차라리 우리가 죽여 없애자!"
  
그런 어느 부활제 전날이었습니다.
농민들은 숲속에 모였습니다. 
마름이 지주의 숲을 말끔히 손질하라고 명령했기 때문입니다. 
점심을 먹으려고 모였을 때 의논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래 가지고야 어떻게 우리가 살아가겠는가?  
 저놈은 우리를 고스란히 말려 죽일 작정인가 봐. 
 일이 힘들어 죽을 지경인데 쉴 시간도 주지 않아. 
 게다가 조금이라도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조건 두들겨  패지를 않나, 
 세묜 같은 자는 얻어맞고 죽었지. 
 아니심은 족쇄에 채워져 곤욕을 치렀지. 
 도대체 우린 더 이상 무엇을 기다리겠나? 
 오늘 저녁, 여기 와서 또 몹쓸 짓을 하거든 놈을 말에서 끌어내려 도끼로 한 대 꽝 치면 
 그걸로 끝장일거란 말일세. 
 그런 후엔 개처럼 어디다 묻어버리면 들킬 까닭이 없어. 
 다만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모두가 마음을 합해서 말을 입밖에 내지 않기로 약속하는 거야!"
  
바실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더 마름을 미워하고 있었습니다. 
마름은 일주일이 멀다 하고 바실리를 때리는가 하면 그의 아내마저 빼앗아 
자기 집 하녀로 만들어 버렸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농민들은 결정을 보았습니다. 
저녁때 마름이 왔습니다. 
그는 말을 타고 왔는데 느닷없이 나무 베는 방식이 틀렸다면서 야단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잘라 버린 나뭇가지더미 속에서 보리수 한 그루를 발견했던 것입니다.
  
"나는 보리수를 베라고 하지 않았어. 
 누가 베었나? 
 어서  말하지 못할까? 말 안 하면 모조리 두들겨 패 줄테다."

그리하여 누가 맡은 자리에 보리수가 끼여들었는지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누군가가 그것은 시도르가 맡은 자리라고 했으므로 
마름은 시도르의 얼굴을 피가 나도록 때렸습니다. 
바실리도 나무를 적게 베었다고 
가죽 채찍으로 실컷 두들긴 다음 마름은 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밤 다시 농민들이 모였습니다. 
거기서 바실리가 입을 열었습니다.

"아니 당신네들도 사람이오? 참새 새끼들만도 못해! 
 '해치운다'고 입으로만 말하면서 막상 코앞에선 꼬리를 감추니…… 
 꼭 매 앞에 움츠린 참새 같단 말이야.
 '동료를 배반해선 안 된다. 기운을 내 해치우자!'고 염불외듯 하면서 
 막상 매가 날아오면 모두 풀숲으로 흩어지니. 
 그러니까 매는 자기가 노렸던 자를 잡아 족치는 거예요. 
 매가 날아가고 나서 참새들이 나와 짹짹거리며 돌아보니 한 마리가 모자란다…… 
 '대체 누가 없어졌나? 
 아아, 반갑구나. 
 그놈은 그런 꼴을 당할만하지. 
 그만한 까닭이 있는거야.'라고 하는 식으로 말이오. 
 당신네들이 꼭 그렇소. 
 배신 않겠다고 했으면 배신하지 말아야지! 
 놈이 시도르에게 손찌검을 했을 때 당신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놈을 박살내야 하는 거란 말이오. 
 '배신 않겠다. 해치우자!' 고 했다간 매가 덤벼들면 놀라 숲으로 도망쳐버리니……"

농민들은 점점 더 자주 그런 의논을 하고 마침내 마름을 죽이기로 했습니다.
그리스도 수난 주간에 마름은 농민들에게 명령을 내려 부활제가 시작되면 쌀,
보리씨를 뿌릴 준비를 해서 지주의 밭을 갈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농민들은 사람을 어떻게 알고 하는 수작이냐고 툴툴거리면서 
바실리의 집 뒤꼍에 모여 다시 의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놈이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그런 짓을 거리낌없이 하려 들다니 정말이지 때려죽여야만 해. 
 어차피 한 번 죽지 두 번 죽나!"

거기에 미혜예프가 왔습니다. 
지금까지 농민들의 모임엔 한 번도 나온 일이 없었으나 
오늘 처음 나온 온화한 이사나이는 농민들의 이야기를 들은 다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신네들은 정말 엄청난 일을 생각하고 있구려.  
 사람을 죽인다는 건 여간 큰 일이 아니에요. 
 남의 목숨하나 죽이기야 수월하겠지마는 자기의  목숨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놈이 나쁜 짓을 했다면 가만 내버려둬도 벌을 받을 것이오. 
 그러니 참아야하오."

그 말을 듣고 바실리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소리쳤습니다.

"맨날 그 말이지…… 
 사람을 죽이는 건 죄라구. 
 죄라는 건 알고 있지만 그놈도 인간인가? 
 정말 착한 사람을 죽이는 건 죄가 되겠지만 그 따위 개만도 못한 놈을 죽이는 건 하느님의 분부야.  
 인간을 불쌍하게 여긴다면 미친개는 죽여야만 해. 
 죽이지 않으면 죄를 더욱 거듭 지을 뿐이야. 
 놈이 사람을 때린 생각을 하면 이가 갈린단 말이야!  
 설사 우리가 어려움을 당한다 해도 그건 사람들의 위해서야. 
 모두 고마워들  할거야. 
 그런 걸 우리가 더럽다고 침이나 뱉고 앉아 있으면 놈은 우리를 모조리 패 죽이고 말 거야. 
 자넨 당치 값도 되지 않는 말을 하고 있어, 
 미혜예프. 
 도대체 뭔가, 그리스도의 축제일에 일하러 가는 편이 죄가 덜 된다는 말인가? 
 그렇게 말하는 자네부터 일하러 가진 않을걸!"

그러자 미혜예프가 말했습니다.

"안 가긴 왜 안 가겠나!  일하러 가라면 가야지. 
 그게 어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겐가. 
 누가 나쁜지는 하느님께서 다 알고 계셔. 
 우린 다만 하느님을 잊어버리지 말아야 되는 거야. 
 여보게들 나는 말이지, 내 생각만을 이야기하고 있는 건 아닐세. 
 만일 악을 악으로 뿌리뽑으라고 하는 것이라면 하느님께서 그와 같은 본을 보여 주셨을  테지만 
 우리에게 가르치신 것은 그게 아니란 말이거든. 
 우리가 악을 악으로 다스리려 하면 악은 우리 쪽으로 옮겨오네. 
 사람을 죽이기야 수월한 일이지만 그 피는 자신의 영혼에 달라붙네.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자신의 영혼을 피투성이로 만드는 일이야. 
 자신은 나쁜 놈을 죽였다, 악을 이젠 뿌리 뽑았다, 생각하고 있어도 
 실상 그보다 더 나쁜 걸 자신의 영혼에다 뿌리내리게 하는 결과가 되네. 
 재난에는 지고 들어가야 해. 
 그러면 재난 쪽에서 우리에게 져줄거란 말일세."

이렇게 하여 농민들은 결정을 보지 못했습니다.
의견들이 구구하여 바실리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미혜예프처럼 죄를 짓지 말고 견뎌내는 편이 좋다고 하는 자도 있었습니다.

농민들이 부활제 축하 행사를 끝마친 저녁때, 
이장이 관청의 서기 한 사람과 함께 지주네 집을 다녀와서 마름인 미하일 쎄묘니치의 명령으로 
내일은 농민 모두가 밭에 나가 쌀, 보리씨를 뿌리기 위해 밭을 갈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장과 서기는 온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그렇게 알렸습니다. 
한 패는 개울 저쪽으로,
다른 한 패는 신작로에서부터 시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농민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그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모두 쟁기를 들고 나가 밭을 갈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에서는 아침 기도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사람들은 어디서나 명절을 축하하고 있는데 이곳의 농민들만 밭을 갈고 있었습니다.
  
마름은 늦게 잠이 깨어 농장일을 둘러보러 나갔습니다. 
마름의 아내도, 
그의 과부 딸도(그녀는 명절을 쇠러 왔습니다) 집안을 치우고  
옷을 곱게 차려입고 하인에게 마차 준비를 시켜 기도회에 갔다가 돌아왔습니다. 
마름은 하녀가 준비한 차를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차를 잔뜩 마신 후에 파이프의 연기를 뿜으면서 이장을 불려 물었습니다.
  
"그래 농군들은 밭으로 다 내보냈겠지?"
"그럼요, 미하일 쎄묘니치. "
"어때 다들 나왔던가?"
"모두 다 나왔지요. 제가 장소까지 모두 정해 주었는걸요./"
"장소를 정해 준 건 잘한 일인데, 제대로 일을 하고 있을까?  
 지금 가서 일을 잘하나 살펴봐. 
 그리고 점심때 내가 직접 나가 볼 테니깐 한 정보를 둘이서 다 일구도록 그렇게 일러! 
 아주 잘 하도록 말이야! 
 만일에 소홀한 점이 발견되면 축제일이라고 해서 봐주지 않을 테니깐!"
"잘 알았습니다. "
  
그렇게 말하고 나가는 이장을 미하일 쎄묘니치는 다시 불렀습니다. 
막상 불러 들이기는 했으나 울물쭈물하는 것이었습니다. 
뭔가 할말이 있었는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는 눈치였습니다. 
그러다가 마름은 말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그 도둑놈들이 내 말을 어떻게 하는지 자네 슬쩍 들어보게. 
 누가 무슨 말을 하고 누가 무슨 욕을 하는지 낱낱이 내게 들려줘. 
 나는 그놈들을 잘 알고 있어. 
 일하기보다는 비스듬히 누워 놀고만 싶어하는 놈들이니까 말야. 
 먹고 놀기만 좋아하고 밭 갈 때를 놓치면 일을 그르친다는 생각은 조금도 않거든. 
 그러니 가서 누가 뭐라고 하는지, 
 놈들이 지껄이는 말을 듣고 와서 모조리 보고하란 말이야. 
 나는 그걸 알아 둬야해. 
 자, 어서 가봐. 
 그리고 내게 하나도 숨김없이 말해야 한다고, 알았나?"
  
이장은 밖으로 나가 말을 타고 농민들이 일하는 밭으로 달려갔습니다.
  
마름의 아내는 남편이 이장과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와서 부탁을 했습니다.
마름의 아내는 온순하고 착한  마음씨를 가진 여자였으므로 
되도록 남편의 마음을 가라앉혀 농민들을 감싸 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와서 이렇게 부탁했던 거예요.

"여보 그리스도의 대축제일이니 제발 죄를 짓지 말고 농민들을 쉬게 하시구려!"
  
미하일 쎄묘니치는 아내의 말을 들으려고도 않고 껄걸 웃었습니다.
  
"한동안 매질을 하지 않았더니 당신 아주 간덩이가 부었어. 
 별 참견을 다 하고 나서니 말야."
"여보, 
 난 당신의 일로 아주 좋지 않은 꿈을 꾸었어요. 
 제발 내 말대로 농민들에게 일을 시키지 마셔요!"
"안된다니깐 자꾸 그러네.  
 기름진 음식에 배가 부르니깐 채찍 맛을 까마득히 잊은 모양이군. 
 당신도 조심해야 한다고!"
  
쎄묘니치는 버럭 화를 내며 불이 붙어 있는 파이프로 아내의 입을 쿡 찔러 방에서 몰아내면서 
빨리 식사 준비나 하라고 일렀습니다.
  
미하일 쎄묘니치는 고기묵이랑 고기만두랑 돼지고기 수프와 
통돼지구이를 우유 국수에 곁들여 먹고 버찌로 빚은 술을 마시고 달콤한 과자를 먹은 다음 
하녀를 불러 노래를 부르게 하고 
자기도 기타를 가져와 노래에 맞추어 퉁겨대기 시작하는 거였어요.
  
마름이 거나한 기분이 되어 트림을 하면서 기타 줄을 뜯고 하녀와 같이 히히덕거리고 있을 때  
이장이 들어와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들에서 본 일을 보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어때, 밭은 갈고 있던가? 
 오늘 해야 할 일은 다 마칠 수 있겠던가?"
"벌써 절반 이상 갈았습니다. "
"잘못된 곳은?"
"그런 건 없구요. 모두 겁쟁이들이라 제대로 일하고  있어요."
"흙도 곱게 다지고?"
"잘 다져져서 양귀비 씨같이 곱던걸요."
  
마름은 잠자코 있다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래 나에 대해선 뭐라고 하던가? 
 욕을 하던가?"
  
이장이 머뭇거리자 마름은 사실대로 이야기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숨김없이 그대로 말해! 
 딴말로 꾸며대지 말고 놈들이  말한 대로 다 털어놓으란 말이야. 
 정직하게 말하면 상을 주겠지만 혹시 놈들을 감쌌다간 매로 대신해 줄 테니까. 
 자까쮸샤, 이 사람에게 술 한잔 줘라. 
 기운 좀 나게."
  
하녀는 나가더니 이장에게 술을 갖다 주었습니다. 
이장은 감사의 말을 하고 쭉 들이켠 다음 입언저리를 닦고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차피 마찬가지야. 모두가 이 사람을 욕한 게 내 탓은 아니니까. 
 명령이니 들은 대로 말해 버리자.'
  
이렇게 생각하고 이장은 기운을 내어 말문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모두들 불평을 하고 있더군요. 수군수군하면서 말이요."
"그래 뭐라고 하더냐? 빨리 말해 보라구."
"모두 같은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름 양반은 하느님을 섬기지 않는다구요."

마름은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누가그런말을 했지?"
"다들 그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마름 양반은 악마에게 고개 숙이고 있다구요."
  
마름은 계속 웃으면서, 

"좋아. 자네 어서 낱낱이 말해주게, 
 누가 뭐라고 했는지.  
 바실리는 뭐라고 했나?" 하고 물었습니다.
  
이장은 자기의 친구들을 나쁘게 말하고 싶진 않았지만 바실리와는 전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으므로 
'바실리는 누구보다 욕을 많이 하더군요.'라고 말해 버렸습니다.
  
"뭐라고 욕하던가? 말해 봐."
"입에 담기조차 무서울 정도죠. 
 그 작자는 틀림없이 고해성사도 못 받고 죽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
"흥, 장하기도 하지. 
 놈은 그러면서 왜 진작에 날 죽이지 않았다는 거야? 
 아무래도 손이 자라지 않았던 모양이지? 
 좋아,  
 바실리 네놈과는 당장에 셈을 치를테니까. 
 다음엔 찌쉬까란 놈, 그 놈도 뭐라고 했겠지?"
"네, 모두 고약한 말만 하고 있습니다. "
"그러니까 뭐라고 했느냐 말이야?
 뭐가 지저분하단 말인가? 
 겁낼 것 없어. 말해 보라니까."
"그 작자의 배가 툭 터져서 창자가 튀어나왔으면 좋겠다고 그랬습니다."

미하일 쎄묘니치는 무엇이 좋은지 껄걸 웃기까지 했습니다. 

"흥, 어느 쪽이 먼저 터질지 어디 두고 보라고. 그건 누구였나? 찌쉬까였나?"
"네에, 모두 좋은 말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모두 욕을 하거나 위협하는 듯한 말들을 하고 있어요."
"그래, 
 한데 미혜예프는 어때? 
 놈은 뭐라고 했지? 
 그 빌어먹을 자식도 날 욕 했겠지?"
"아닙니다, 쎄묘니치. 
 미혜예프는 욕 같은 건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어떻게 했나?"
"네, 농군들 중에서 그 사나이 하나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똑똑한 놈이더군요! 
 나도 깜짝 놀랐습니다, 미하일 쎄묘니치!"
"뭐가 놀라운가?"
"글세 그 사나이가 한 일에 모두들 놀라고 있습니다."
"글세 무슨 일을 했냐니까?"
"아주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내가 그의 곁으로 갔을 때 그 사나이는 뚜르낀의 비탈진 언덕을 갈고 있었습니다. 
 더 가까이 가보았더니 누군가 노래부르는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가늘고 고운 목소리였죠. 
 그런데 쟁기 손잡이 사이에 뭔가 반짝이는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조그마한 불빛 같은 거였습니다. 
 그래 바싹 다가가 자세히 들여야보니 5까뻬이까짜리 양초였습니다. 
 그걸 쟁기의 가로대에 세워 놓았지 뭡니까. 
 그게 불타고 있었는데 바람이 불어도 꺼지질 않았습니다. 
 그는 새 셔츠를 입고 부지런히 밭을 갈면서 부활절 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겁니다.  
 쟁기를 홱 돌리기도 하고 잡아 당기기도 하는데도 춧불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내가 보고 있는 앞에서 쟁기를 돌리고 
 손잡이를 꺾으면서 마구 밀어대는데도 글세 촛불은 꺼지지 않고 계속 타고 있었다구요."
"그래 무슨 말은 없었구?"
"아뇨,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그냥 나를 보더니 부활절인사를 할 뿐 다시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어요."
"자넨 그에게 뭐라고 했나?"
"나도 아무 말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농민들이 몰려와서 미혜예프는 부활절에 밭일을 했으니까 
 아무리 기도를 드려도 죄를 용서받을 수 없다고 놀려대더군요."
"그래 그 사내는 뭐라고 대답하던가?"
"그 친구는 그저 '땅에는 평화, 사람에게는 선한 마음이 있을 지어다'라고 했을뿐, 
 다시 쟁기를 잡고 말을 몰면서 가느다란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촛불은 꺼지지 않고 그대로 타고 있었습니다."

마름은 웃음을 멈추고 기타를 내려놓은 다음 머리를 숙인 채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앉아, 
하녀도 이장도 물러가게 하고 커튼 뒤로 들어가 침대 위에 누워서 한숨을 쉬며 끙끙 거렸는데, 
그것은  마치 곡식을 싣고 가는 짐수레와도 같은 힘겨운 소리였습니다. 
그때 아내가 와서 말을 걸었으나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놈이 날 이겼어! 
 이번엔 내 차례야!" 하고 중얼거릴 뿐이었습니다. 아내가 타이르기 시작했습니다.

"여보, 지금부터라도 당신이 농장에 가서 농군들을 돌려 보내세요. 
 그렇게만 하면 아무 일 없을 거예요! 
 이제 까진 별의별 짓을 다 하고도 태연했는데 이번엔 왜 그렇게 겁을 내는지 모르겠군요."
"나는 이젠 틀렸어. 
 그놈이 이겼어." 아내는 더욱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놈이 '이겼다 이겼다'하시면 무슨 소용이  있어요. 
 그보다 어서 가서 농민들을 돌려보내세요. 
 그럼 모든 일이 잘 해결될 거예요. 
 자, 가셔요. 
 제가 나가서 말에 안장을 놓으라고 하겠어요."
  
말이 끌려 나왔고,  
마름의 아내는 남편을 타일러 지금부터 들에 나가 농민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게 했습니다.
  
미하일 쎄묘니치는 말을 타고 들에 나갔습니다. 
마을 어귀에 이르자 어떤 아낙네가 마을 문을 열어 주어서 그는 마을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사람들은 마름의 모습을 보기가 무섭게 어떤 사람은 뒤꼍으로, 
어떤 사람은 집 모퉁이로, 
어떤 사람은 채마밭으로 도망치는 것이었습니다.
  
마름은 마을을 다 지나, 나가는 문에 이르렀습니다. 
문이 닫혀 있어서 말에 올라앉은 채로는 문을 열 수가 없었습니다. 

"문 열어라,  문 열어라." 하고 마름이 소리쳤지만 아무도 달려나와 문을 열어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말에서 내려 손수 문을 열고 다시 말을 타려고 발걸이에 한쪽 발을 걸고 몸을 올리는 순간, 
달려나온 돼지에 놀라 말은 옆의 울타리에 부딪혔습니다. 
마름은 뚱뚱했으므로 안장에서 몸을 가누지도 못하고 말에서 덜어져 울타리에 부딪혔습니다. 
그 울타리에 한쪽 끝이 뾰족하고 길게 튀어나온 말목이 있었는데 
마름의 뚱뚱한 배는 그 말목 끝에 꽂히고 말았습니다. 
마름은 배가 찢어지면서 땅바닥에 떨어졌습니다.
  
농군들이 밭일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문 앞에 다다르자 
말이 콧김을 불어대며 문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보니 쎄묘니치가 벌렁 자빠져 있었습니다. 
두 팔은 좌우로 벌리고 눈은 부릅뜨고 있었으며 
창자는 땅바닥에 흘러 나오고 피가 괴어 웅덩이처럼 되어 있었습니다. 
땅이 그의  피를 빨아들여 주지 않았던 때문입니다.
  
농군들이 깜짝 놀라 뒷길로 말을 몰아 달아나 버렸습니다. 
다만 미혜예프만이 말에서 내려 그 옆으로 가 마름이 죽은 것을 보고 
그의 눈을 감겨 주고 짐수레에 말을 매어 아들과 함께 그의 시체를 실은 다음 지주의 집으로 갔습니다.

지주는 모든 사정 이야기를 듣고는 농민들에게 부역을 시키지 않고 소작료만 받도록 했습니다.

농민들도 하느님의 힘은 악은 악으로 갚는데 있지 않고 착한 일 가운데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 이 글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톨스토이 단편선 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창비 - 2003. 12. 10.
 [t-24.01.22.  20210130-164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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