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철 - 옛 길을 걷다」
신대호수길
저자의 말
한국의 길
바람이 불어오고 바람이 불어가고, 강물이 흘러오고 강물이 흘러가고
인도의 갠지스 강을 배로 거슬러 올라가며 화장터에서 사람을 태우는 의식을 보았습니다.
장작더미 위에서 한 사람의 인생이 불로 사라지더군요.
그래도 뜨겁게 사라져서 다행이었습니다.
열정으로 산 인생이었겠지요.
하지만 갠지스 강 위로 불어가는 바람은 내게는 왠지 서늘했습니다.
남미의 볼리비아의 거친 산을 넘어가면서 풀만 겨우 자라는 척박하기 이를 데 없는 곳에서
양떼를 몰고 다니다 식은 음식을 꺼내 먹고 있는 인디오들을 보았습니다.
진흙으로 지은 집들은 빗물에 젖어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차고 거친 바람이 불어가더군요.
띠띠까까 호수를 뗏목배로 건널 때에는 살아있음이 바람 같았습니다.
인디오들의 수도였던 페루의 쿠스코에서는 비가 내리는 날에도 우산을 쓴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얼굴에는 웃음도 슬픔도 담지 않은 담담한 표정으로 보도 위를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당당해 보였습니다.
그 곳에서도 바람은 불더군요.
바람에서는 정착하지 못 하는 유목의 냄새가 납니다.
저는 지금 네팔의 카트만두에서 만났던 풍경들이 다시 보고 싶습니다.
산악국인 네팔의 산은 높았습니다.
높은 바람이 불어가고 있었습니다.
어디에나 바람은 불고 있었습니다.
사람 사는 마을에는 쉬지 않고 바람이 불어오고 불어갔습니다.
바람 속에서 걷는 바람과 같은 여행이었습니다.
그 바람 부는 세상에서 만난 사람들은 강인한 삶을 일구어 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이 부러웠습니다.
황량한 곳에서 견디어내는 굳센 구릿빛 얼굴이 그랬습니다.
저는 왜 오지에서 만났던 사람과 풍경들이 그리워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안락했던 나라들의 도시와 시골도 있지만
저에게는 가난하고 힘들었던 곳에서 생을 엮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다시 보고 싶습니다.
힘든 환경에서 열정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반짝이는 눈이 그리워집니다.
힘들었던 여행에서 돌아와 조국, 한국의 산하를 걸었습니다.
우리의 산과 들과 사람에게는 특별함이 있습니다.
한국인 특유의 고소한 맛이 납니다.
단맛이 납니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느끼는 자궁 안의 안락 같은 것인지도 모르지요.
여행지에서 허전한 바람이 불었던 가슴에는 흐뭇한 미소 같은 꽃이 피어나는 것을 느끼고는 했습니다.
태초의 편안함 같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가진 삶의 안팎 풍경은 참 아기자기하고 살뜰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슴 안에 돌고 있는 피는 뜨거운 그 무엇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연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태도였습니다.
참 맛깔스러운 것이었지요.
능청스럽게 하늘을 끌어안고 강물을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한국미의 으뜸은 자연미였습니다.
우리의 전통마을에서 만났던 돌담과 한옥의 천연덕스러운 멋은
어디에 내어 놓아도 넉넉한 행복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한국미의 특별함을 우리보다 밖에서 먼저 알고 찾아오고 있습니다.
인생의 굽이를 다 겪은 길이 산허리를 끌어안고 휘어져 돌아가고,
언덕을 오르고 내리며 들꽃을 안고 있는 풍경을 보았습니다.
들풀이 피어있는 그곳에도 바람은 불더군요.
나풀거리며 꽃대를 세워 길을 배웅하고 있었습니다.
풍경을 바라보는 나그네는 더없이 고운 꿈을 꾸고 싶었습니다.
인생이 꿈이라는 데 그보다 더 깊은 꿈을 꾸고 싶었습니다.
몽환이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길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봄이나 뜨거운 열기로 몸을 달구는 여름이나 낙엽이 굴러가는 가을,
다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길에서 길을 잃을 걱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각자의 생을 보듬어 안고는 제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사람의 몸에는 길이 들어있습니다.
산다는 건 자신 안에 있는 길을 풀어놓으며 가는 것이지요.
거미가 실을 뽑아 허공에 길을 만들듯이 사람도 자신 안에 있는 길을 내어놓으며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인생도 어느 인생에게 충고를 할 수 없음을 보았습니다.
인생의 무게는 같은 무게였거든요.
서울역 앞을 서성이는 노숙자의 인생이나 다국적 기업을 이끌고 있는 인생이 다르지 않은 무게였습니다.
비행기로 세상을 빠르게 가고 있는 사람이나 소가 끄는 달구지를 타고 가는 농부의 인생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같은 등위의 등고선에 있었습니다.
같은 무게로 형평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소가 끄는 달구지를 타고 가는 농부의 등 위로 따스한 바람이 불어가고 있었습니다.
겨울이 오겠지만 걱정할 일 아닙니다.
겨울을 건너야 봄이 오는 것을 먼저 알고 있는 농부는 웃고 있었습니다.
아주 넉넉한 웃음을 얼굴 가득 담고 있었습니다.
저는 우리의 산과 강은 사람을 넉넉하게 안아주고 따뜻한 아랫목처럼 몸을 덥혀주었습니다.
포근하지요.
젊은 날에는 하루 종일 걷다가 산에서는 산기슭에서,
들길에서는 풀숲에서 대자로 누워 자고는 했습니다.
피곤한 생에 대한 애착이 없었음에도 왜 그리 떠돌아다녔는지 모르겠습니다.
자다가 깨어나면 다시 걷곤 했지요.
마을을 못 만나면 굶기도 했고
이름 없는 마을과 산으로 들어가 지칠 때까지 걷기만 한 적이 여러 날 있었습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곳 하나는 대전역 광장입니다.
아스팔트 광장에서 한 여름 날 신문지를 깔고 덮고 자는데
구두 발자국 소리가 저벅거리며 제 옆으로 지나갔습니다.
소리가 들리는 대로 좋더군요.
깊은 잠에 들었습니다.
아침에 올 때까지 구들장처럼 따뜻했습니다.
대접을 받은 기분이었습니다.
눈을 부비고 일어나 다시 다른 행선지를 찾았습니다.
지금도 대전역 광장을 지날 때면 그 날의 온기어린 길바닥이 준 고마움을 되새기곤 합니다.
여행을 편안하게 하는 것은 가공식품을 먹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여행을 하면서 목적지를 정해놓고 다니지 않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날 마음이 시키는 대로 떠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휴대전화 없이 세상을 살고,
우산이 없이 세상을 살아가는 제게는 그렇게 바람처럼 떠돌아다니는 것이 여행 같았습니다.
※ 이 글은 <옛 길을 걷다>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신광철 - 옛 길을 걷다 (신광철의 길 이야기)
한문화사 - 2010. 02. 17.
신대호수길 [t-23.11.11. 20231110-0947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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