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 브래프먼. 롬 브래프먼 - 스웨이(SWAY)」
Chapter 1. 그는 왜 허가 없이 이륙하였나 (2)
위험부담이 클수록 더 위험한 선택을 하는 이유
꽤 단순 명료한 의사결정으로 새로운 전화 서비스를 신청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전화 회사의 설명서를 간신히 읽고 나니 서비스를 이용한 만큼 분 단위로 요금을 지급하든지,
월 정액 제로 무제한 통화를 즐기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란다.
이 경우 쓴 만큼 내는 요금제가 더 유리할 가능성이 크다.
대부분의 사람은 정액제 서비스의 본전을 뽑을 만큼 통화를 많이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손실기피가 발동한다.
10대 청소년처럼 밤새도록 전화통을 붙들고 수다를 떠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무시무시한 요금 영수증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하고
결국은 ‘혹시 모를 경우’에 대비해 덜컥 무제한 요금제를 신청하고 만다.
경제학자들은 잘못된 선택을 내렸다고 우리를 나무랄지도 모르지만
어느 쪽을 신청할지 결정할 때 사람들은 잠재적인 손실을 피하고자 약간의 희생은 기꺼이 감수한다.
AOL도 이와 똑같은 현상으로 당혹스러웠던 적이 있다.
수년간 다이얼업 인터넷 접속에 대해 분 단위로 요금을 청구하다가 정액제를 도입했더니
엄청난 결과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다행히 나쁜 쪽으로는 아니었다.
AOL의 CEO 말에 따르면 정액제는 '지나칠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라고 한다.
신규 고객들이 무더기로 서비스를 신청하는 바람에 3개월 동안 AOL 서버는 완전히 마비될 정도였다.
전화 서비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인터넷 사용자들은 종량제와 관련된 지각 손실을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 '손실'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놀랄 만큼 강력한 반응이 도출된다.
에이비스나 허츠 같은 기업들은 쓸모도 없고 가격도 비싼 상품을 판매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 단어의 강력한 효과를 교묘히 활용해 왔다.
자동차를 렌트하면 차에 무슨 문제가 생길 경우 자신의 자동차 보험과는 별도로
신용카드사에서 자동으로 보험 혜택이 제공된다.
그러나 렌터카 회사는 보장이 중복될 뿐 아니라 연간 비용으로 환산하면
무려 5.000달러에 달하는 추가 보험 가입을 유도한다.
보통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그런 쓸데없는 돈 낭비에 코웃음을 칠 것이다.
그러나 이때 카운터 뒤의 판매 담당자가 번쩍번쩍한 포드 토러스의 열쇠를 건네면서
자차보험을 들겠느냐고 물어온다.
그 단어를 듣는 순간 갑자기 머리가 씽씽 돌기 시작한다.
만일 운 나쁘게 사고라도 나면 어쩌지?
어떤 이유로든 신용카드사에서 보험을 적용해 주지 않으면 어떡하지?
정상적인 상황에서라면 단순히 2배로 안전을 보장하려고 어마어마한 가격의 추가 보험을
따로 들 생각은 절대 하지 않지만 손실의 위협이 생각을 고쳐먹게 한다.
넓게 보면 슈퍼마켓 쇼핑객이나 전화 회사 고객, 인터넷 가입자,
자동차 대여 고객의 행동은 반 잔텐 기장의 행동과 놀라우리만치 비슷하다.
반 진텐은 승객들의 숙박비용, 비행기 지연에 따른 연쇄 효과, 시간 준수라는 자신의 평판에 찍힐 오점 등
필수 휴식시간을 지키는 데 따르는 손실을 피하려 애쓰고 있었다.
비행기 지연을 피하려는 반 잔텐의 욕구는 소박했다.
처음에는 시간을 아끼고자 승객들을 기내에 탑승시킨 상태로 기다리려고 했을 뿐이다.
그러나 지연되는 시간이 길어지자 잠재적인 손실이 더 확대돼 보였다.
지연이 밤새도록 이어질 것이 불가피해 보이자 그는 지연을 피하는 데만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그 밖의 다른 고려 사항이나 상식, 다년간의 훈련 등은 모두 무시하게 됐다.
물론 전화 서비스 신청과 테네리프에서 일어난 비극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점이 있다.
불필요하게 몇 달러를 지출하는 것과 관제탑의 허가 없이 이륙하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다.
수백 명의 목숨이 달린 상황에서라면 기장이 더욱더 조심성을 발휘하고
일상적인 상황에서보다 훨씬 더 신중하게 행동했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두 번째 실마리로 이어진다.
컬럼비아 경영 대학원의 에릭 존슨 교수가 설명한 바와 같이
잠재적인 손실이 중요한 일일수록 손실기피가 더 강하게 나타난다.
다시 말해 위험부담이 큰 상황일수록 비이성적인 결정에 휩쓸리기 쉽다는 뜻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피해야만 하는 것
위험부담이 큰 상황에 대해서라면 투자은행 스미스 바니의 실리콘 벨리 지사에서 근무하는
조던 월터스만큼 잘 아는 사람도 없다.
조던은 완벽한 재무 설계사의 조건을 모두 갖춘 사람이다.
차분하고 사려 깊으며 항상 상대방의 말을 경청한다.
조던은 단지 숫자에만 집착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고객을 진심으로 염려하기에 그들이 잘못된 결정을 내리면 신경이 쓰였다.
그가 특별히 기억하는 고객이 있다.
"어느 날 고객 한 분이 찾아왔죠.
그분은 예전에 바이오텍 기업을 창업하신 분인데, 어느 상장회사가 그 회사를 인수하기로 한 거예요.
한마디로 횡재하신 거죠.
내외분은 은퇴한 뒤 마서스비니어드 섬에 가서 여생을 보낼 계획이셨어요.
(Marthas Vineyard-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이프 코드 연안의 고급 휴양 섬)
그 고객은 분명 들떴을 것이다.
정원사는 물론이고 아이들 학교 선생님부터 예전 대학 동창들에게까지
자신이 얻은 뜻밖의 횡재에 대해 떠벌리고 다녔을 것이다.
그러나 조던은 새 고객에게 재산 대부분을 바이오텍 기업 주식에 집중 투자하는 건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점을 지적했다.
"저런! 재산이 너무 한 곳에 집중돼 있네요. 이런 상황은 피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러고는 다각화 쪽이 훨씬 사리에 맞는 일이었기에 구체적인 계획을 제안했다.
의사결정을 내릴 때 감정을 배제할 수 있도록 매 분기에 지분을 일정 비율씩 매각하라는 조언이었다.
그러나 고객은 주가가 더 오르는 걸 보고 싶어 했다.
그는 이제 막 회사를 팔았고 주가가 올라 큰 수익을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금 멈추라니 도저히 수긍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조던은 계속 말을 이었다.
"그 고객이 처음 오셨을 때 주가가 47달러였는데, 그때 전체 지분 중 10퍼센트 정도를 팔았습니다"
그 직후 주가는 떨어지기 시작했다.
"주가가 42달러로 떨어지자 고객은 '주가가 다시 47달러로 회복되면 팔겠다'라고 말씀하셨죠"
돈이 슬슬 빠져나가기 시작하는 걸 감지하자
고객에게 반 잔텐의 경우와 흡사한 손실기피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일정을 맞춰야 한다는 일념으로 꽉 찬 기장처럼
그 고객도 맹목적으로 원금을 회복하는 데만 신경을 쓰게 됐다.
조던은 고객이 손실을 회복하는 데만 급급해
감수해야 하는 위험에 대해서는 점점 무감각해지고 있음을 간파했다.
그는 고객에게 물었다.
"더 떨어지면 어쩌시려고요?"
조던이 이성적으로 판단하기에는 47달러라는 주가에 뭔가 특별한 의미가 있어
주식이 다시 그 가격을 회복하리라는 보장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주가는 자칫 더 빠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고객이 생각하기에 47달러 미만에 파는 것은 손실,
즉 무슨 수를 써서라도 피해야만 할 도깨비 같은 존재였다.
"주가가 38달러로 떨어지자 고객은 44달러까지만 회복되면 그때 팔겠소"라고 말씀하셨죠.
증권가에서는 투자자들이 현재의 데이터를 무시하고 눈가리개를 쓴 채
가급적 손실을 최대한 만회하겠다는 유일한 목표로 투자 활동에 가담하는 행위를
'손실 추격 (chasing a loss)'이라고 부른다.
조던은 주가가 회복될 것이라는 희망으로
기존의 생각을 고수하는 건 너무 큰 위험이 따른다고 고객에게 설명했다.
그러나 고객은 그런 말을 귀담아듣지 않고 자기 방식대로 일을 진행했다.
조던의 충고를 무시하고 위험을 감수한 것이다.
"결국 주가는 12센트까지 내려갔습니다.
그 분이 얻은 수익은 (가장 처음에 팔았던) 지분 10퍼센트뿐이었죠" 조던은 말했다.
그 고객이 속이 좀 쓰리더라도 42달러에 주식을 팔았다면 멋진 요트를 타는 꿈은 접더라도
자산 대부분을 지켜서 원래 계획대로 은퇴 후 마서스비니어드 섬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반잔텐은 시간 준수에 대한 명성에 작은 오점을 남기더라도 허가 없이 이륙하는
모험을 감행하지 않았다면 테네리프에서 그날 밤을 편안히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 모두 혹시 발생할 수 있는 손실을 피하려고 모든 것을 걸 필요는 당연히 없었다.
얼핏 위험부담이 큰 일일수록 안전한 쪽을 택할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조던의 설명처럼
"사람들은 주가가 곤두박질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상황을 잘못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때 잠복해 있던 힘은 슬그머니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제 중요한 실마리 두 가지를 확인했다.
첫째, 반 잔텐은 잠재적인 손실에 과잉 반응했다.
둘째, 위험부담이 너무 켰기 때문에 위험한 선택을 내리기 오히려 쉬었다.
그러나 빠진 실마리가 하나 더 있다.
테네리프 수수께끼의 실체를 속속들이 파헤치려면 우리는 스웜프에 가보아야 한다.
※ 이 글은 <스웨이(SWAY)>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오리 브래프먼. 롬 브래프먼 - 스웨이(SWAY)
역자 - 강유리
리더스북 - 2009. 10. 19.
[t-24.04.05. 20240401-16424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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