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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성장교육(인문.철학.교양.

책 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 - 1. 책 읽기와 '공자 되기'

by 탄천사랑 2024. 5. 4.

·「이권우 - 책 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



 

옛날, 옛날, 한 옛날에 
태어날 적부터 머리가 짱구인지라 '구 '라는 이름이 붙었던 공자라는 사람이 살았더랬다.
(풍우란이 쓴 <중국 철학사> 박성규 옮김 까치)에 나오니 꼭 읽어 보시라.
사마천이 <사기>에 공자에 관한 글을 쓰기 전까지 중국 사림들은 그이를 신으로 떠받들질 않았나,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이 근대 이전까지는 그이의 철학으로 나라를 경영했으니,
그 사람이 대단하기는 대단한 사람임에 분명하다.   

아버지는 숙량흘로, 오늘로 말하자면 읍장 정도를 지낸 무관이다.
전쟁에서 용맹을 떨친 후 개선해 공자의 어머니 안징재를 처로 맞이했다.
그런데 숙량흘에게는 전처가 있었고, 다리가 불편한 아들도 있었다.
어쨌든 처자식이 있는 사람이 처녀와 또 결혼하니 동네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른 모양이라,
공자가 태어났을 때 '야합하여 공자를 낳았다'라는 소문이 났을 정도다.

세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예나 지금이나 가장이 죽으면 집안은 풍비박산 나게 마련이다.
오죽하면 사마천이 '공자는 가난하고 천하였다'라고 했겠는가.

열일곱 살이 되던 해 어머니마저 돌아가셨다.
이때 공자는 무척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당시의 풍습으로는 부부를 합장해야 했는데, 살아생전 어머니가 아버지의 무덤을 일러 주지 않았던 것이다.
궁하면 통한다고 공자가 꾀를 냈다.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받기 위해 시신이 든 관을 오보 거리에 놓아두었다.
사람들이 공자에게 까닭을 물었고, 그 사실이 소문이 나면서 아버지의 무덤을 알게 되어 합장했다.

어떤 책에 보면 공자는 이때 비로소 귀족 가문 출신임을 알았다고 한다.
<논어>에는 공자의 자서전이 잘 정리된 대목이 있다.
그러니까 '열다섯은 지학 志學, 서른은 이립 而立, 마흔은 불혹 不惑, 오십은 지천명 知天命,
육십은 이순 耳順, 칠십은 불유구 不踰矩, '라는 것이 바로 공자가 자신의 삶을 회상하면서 했던 말들이다.
여기서 내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자학이다.
그러니까 공자는 열다섯부터 공부하기로 마음을 굳게 먹었던 것 같다.
자신의 신분에 절망하지 않고, 어떻게든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 가상한 생각을 품었던 것이리라.

가난한 공자는 책을 살 돈이 없었으리라.
그러니 이웃에 사는 사람에게 책을 빌려 보았을 것이다.
책만 본다고 어찌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겠는가.
거리에 나가 현명한 사람을 찾아 물어보았으리라.

<논어>에 나오는 그 유명한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 가운데 반드시 스승이 있기 마련'이라는 말은 이런 경험에서 비롯되었을 터다.
공자 가라사대
"나는 날 때부터 다 알고 태어난 사람이 아니다.
  다만 옛사람들이 남긴 업적을 사모하여 끊임없이 배우고 추구했을 따름이다"

천하의 공자가 스무 살 무렵에는 소똥 치우고 양털 깎으며 목구멍에 풀칠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공자의 공부는 계속되었다.
"열 가구의 작은 마을에도 반드시 나만큼 충직하고 신실한 사람이야 있겠지만,
  나처럼 학문을 사랑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라고 스스로 말할 정도다.

나이 서른에 공자는 삶의 일대 전환점을 맞이했으니,
스스로 섰다 而立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이때부터 제자를 받아들였다.

공자의 세속적인 성공은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 준다.
가진 거라고는 불알 두 쪽밖에 없던 공자가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높인 데는 책 읽기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공자가 공부했다는 것이, 따지고 보면 책을 읽고 주변 사람들과 토론한 것이 아니던가.
기실 공부란, 읽고 말하고 쓰는 과정을 일컫는다.
주나라에서 펴낸 책들이 노나라에 고스란히 남아 있지 않았다면,
또는 공자가 다른 제후국에 태어났다면, 공자라는 이름이 역사에 남아 있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책을 읽는 이유는 자신의 사회 신분을 향상하기 위해서다.
공자처럼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던 이라면,
그 상황을 타게 하고 자신의 삶을 더 나은 조건으로 개선하기 위해 책을 읽어야 한다.

그렇다면 책 읽기가 오로지 사회적 성공이라는 실용적인 목적에만 있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이 역시 공자의 삶에서 발견된다.
앞의 자서전에서 공자는 나이 칠십 되니 마음이 하자는 대로 해도 '불유구'라 했다.
불유구라, 무언가를 넘어서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 무엇이 바로 구 矩인데, 이 구가 뜻하는 바는 정재서의 <이야기 동양신화>에 잘 나온다.

- 인류의 시조 복희-여와 남매가 결합하고 있는 그림은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서
   심오한 우주원리를 표현하기도 한다.
   복희는 직선을 그릴 수 잇는 곱자를 들고 있는데 이것은 남성 원리인 양의 기운을 나타내며
   여와는 원을 그릴 수 있는 컴퍼스 곧 그림쇠를 들고 있는데 
   이것은 여성 원리인 음의 기운을 나타낸다.

이 글에 나온 곱자가 구 이고 그림쇠는 규 를 가리킨다.
불유구를 조금 과장해 풀이하자면, 공자는 나이 칠십에 이르러 아무렇게나 행동해도
우주의 원리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이 된다.
조금 경박하게 표현하면, 눈 감고 야구방망이를 휘둘러도 늘 홈런을 쳤다는 것이며,
눈 가리고 화살을 쏘았는데도 늘 과녁에 명중했다는 것이 된다.

중요한 것은, 공자가 책을 읽으면서 우리 정신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악의 요소를 
마침내 깨끗이 씻어 냈다는 사실이다 (극기복례!). 
책은 본디 거울이지 않던가. 
추한 나를 비추어 주고, 그것을 이겨 내도록 자극한다. 
반성하게 하고 참회하게 하고 새로운 꿈을 꾸게 해 준다.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가 참된 인간이 되는 경지까지 끌고 간다. 
세속에서 성인 되기! 
시대가 아무리 변하더라도, 그래서 설혹 우선 순위는 바뀌더라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여기에 있다.

공자는 우리에게 '간증'하고 있다. 
아 놀라워라! 책 읽기의 힘은 변신에 있다. 말한다. 
그 변신은, 첫째 사회 신분의 상승이다. 
가난하고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더라도 책 읽기는 그 사람을 높은 자리에 이르게 해 준다. 
두 번째는 존재론적 변신이다. 
우리의 몸에 흐르는 더러운 피를 정화하고 성인의 자리에 마침내 올라서게 한다. 
그러니, 참으로 공자는 행복한 사람이었다.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지 않았던가.
누구나 꿈꾸는 바, 
개인적으로 성공하면서 사회적으로 덕을 베플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을 현실화한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말한다.
책 읽기는 '공자되기'다, 라고 



※ 이 글은 <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이권우 - 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
그린비 - 2008. 08. 25.

[t-24.05.04.  20240504-1403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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