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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성장교육(인문.철학.교양./부부로 산다는 것

5 - 046 함께 있어도 가끔은 외로운 서로를 보듬어주는 것

by 탄천사랑 2007. 5. 26.

·「최정미 외 - 부부로 산다는 것」


 

# 046 

함께 있어도 가끔은 외로운 서로를 보듬어주는 것 
episode 1
그들 부부는 '이산가족'이다.
맞벌이를 하면서 근무 시간이 서로 달라 얼굴을 보지 못할 때가 많다. 
그가 밤에 출근하면 그녀는 아침에, 그가 아침에 나갈 때면 그녀가 밤에 나갈 때가 많다.

그는 아침에 퇴근해 집안일을 했다.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니 어느덧 오후였다.
눈을 좀 붙이려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갑자기 가슴속이 뻥 뚫린 느낌이었다.
사는 것이 재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부는 서로 마주칠 일이 별로 없다.
아이는 아이대로 바빴다.
부모가 잘 챙겨주지 못해도 스스로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딸아이가 대견스럽기도 했지만,
요즘은 사춘기를 겪고 있는 것 같았다.
아빠와 도통 말을 섞으려 하지 않았다.
그가 말이라도 붙이면, 대꾸도 없이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을 뿐이었다.
그는 힘들고 외로웠다.

마침 그날따라 일찍 퇴근한 그녀에게 시비를 걸었다.

"요즘 정말 너무한 거 아니야?
  돈 좀 번다고 집안일을 이렇게 팽개치면 어떡해?
  오늘 집에 와보니 엉망이더라고. 
  내가 도와주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전부 떠맡길 수 있어?"

그는 아내 역시 힘겨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따질 것은 따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자가 쫀쫀하게 그런 걸 가지고 왜 그래?
  조물주가 인간을 창조할 때 남자에게 힘을 도 실어준 건 
  여자가 힘들 때 도와주라고 그런 것인데."
"집안일 뿐이 아니야. 애 좀 봐.
  애가 왜 그렇게 나랑 눈도 안 마주치려고 하지?
  도대체 애를 어떻게 키우는 거야?"
"그거야 아빠라는 사람이 애 말은 듣지도 않고 화부터 내니까 당연히 그렇지."

그는 그녀의 말을 듣자 기분이 더욱 울적해졌다. 
학원비 늦지 않게 챙겨줬고, 
공부할 때는 엄마 대신 사다 주는 등 그렇게 신경을 쏟았는데 아버지는 안중에도 없는 것이었다.

그는 이 세상에 외톨이로 남겨진 것 같았다. 
더 이상 남편을 존중하지 않는 아내, 
아빠는 ‘현금지급기’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아이. 
아내와 아이는 사이가 좋았다. 
걸핏하면 둘이서만 쑥덕거렸다. 

살아온 세월이 허망하기만 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건만 삶은 그에게 아무런 보상도 해주지 않은 것이었다. 
그는 ‘가족’이라는 허상을 위해 끊임없이 희생을 감수해 왔지만, 
가족 구성원들은 그런 그를 당연하게 여길 뿐이었다. 

갑자기 몸서리치게 외로워졌다. 
이러려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산 것은 아니었다. 
낯선 회한 같은 감정이 그의 폐부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때 그녀가 그의 손을 잡았다. 

“요즘 많이 외롭구나. 
  나도 얼마 전에 그랬잖아. 
  우리 다음 달에 휴가 맞춰서 단 둘이서 여행이라도 다녀오자. 응?” 

episode 2
"아직 안 자지?"
"응. 애도 안 자."
"그럼 편의점 앞으로 잠깐 나와 봐. 맛있는 거 사줄게."

그가 술 한 잔 하고 들어오다가 전화를 했다.
그녀는 아이를 업고 마중 나갔다가 과일과 아이스크림을 사서 함께 들어왔다.
아파트 정문을 들어서는 데 그가 물었다.

"사는 게 뭐라고 생각하니?"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이었다.
"갑자기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뭐 속상한 거 있어?"
"사는 게 뭐라고 생각하냐니까."
"그냥, 목숨이 붙어 있는 동안 잘 사는 거라고 봐."
"그럼 잘 사는 건 뭐니?"
"뭐 쓰고 싶을 때 쓰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여행 가고 싶을 때 여행 가고, 
  남한테 아쉬운 소리 안 하고 사는 거지 뭐."
"너도 남들과 똑같구나. 좀 다를 줄 알았는데....,"

그녀는 기분이 나빴다.
무슨 영문인지 얘기도 안 해주고 대뜸 물어보는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바탕 퍼주어 주고 싶었지만 그의 표정을 보고 꾹 참았다.
지치고 짜증 난 듯한 얼굴.

그녀의 그런 기분은 다음 날까지 이어졌다.
아침도 먹지 않고, 출근하는 그를 배웅하면서도 말 한 마디 하지 않았다.
오전 내내 전화도 받지 않았다.
저녁때쯤 전화를 받았더니 남편이었다.

"어디 갔다 왔니?"
"왜?"
"전화 계속해도 안 받고 해서."
"애가 자서."
"밥은 먹었니?"
"아니, 슬퍼서 안 먹었어."
"맛있는 거 먹어."  그가 전화를 끊으면서 한 마디 했다.
"나도 슬프다. 내가 못나서."

그녀는 더욱 심란해졌다.
뭐가 저 사람을 저리도 슬프게 하는 것일까.
어쩌면 내가 모르는 뭐가 있는 것 아닐까.
괜히 알지도 못하고 같이 짜증을 부린 것이 미안해졌다.
퇴근하고 돌아온 그가 씻으면서 말했다.

“나는 너랑 다를 수밖에 없어. 
  너는 내 앞에서 푸념이라도 하지만 나는 그렇게 못 하거든. 
  내가 힘들어하는 걸 보이면 네가 두 배, 세 배는 더 힘들어할 테니까. 
  그래서 더 힘들고 외롭단 말이야.” 

그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어딘가에 숨고 싶었다. 
그랬다. 
그라고 해서 강철로 만든 로봇은 아니었다. 
그동안 힘들다는 내색 한 번 없이 집안의 버팀목이 되어준 그도 결국은 사람이었다. 
그가 외롭고 힘들 수도 있다는 생각을, 그녀는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말을 하지 않으니까. 
또 퇴근할 때 술 한 잔 하다 보면 풀릴 수도 있겠지 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집안에서 아이와 씨름을 하는 그녀만 외롭고 힘든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마음이 아팠다. 

누워 있는 그에게 다가가
"미안해, 정말 미안해'라고 말했다. 
그는 잠꼬대를 하듯 '응' 하더니 잠이 들었다. 


사람은 누구나 외로운 존재입니다. 
그렇게 외롭기 때문에 자신의 빈 공간을 채워줄 반쪽을 만나 결혼이라는 것을 합니다. 
‘완전해질 수 있다’는 착각을 하면서 말입니다. 
결혼은 완성이 아닙니다.  완성은 끊임없이 추구해야 할 목표이자 신기루일 뿐입니다. 
그래서 다시 지치고 외로워집니다.  하지만 결혼을 했다는 것은 천만 다행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외로울 때 위로해 줄 사람이 있으니 말입니다. (p211)

※ 이 글은 <부부로 산다는 것>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t-07.05.26.  20210509-163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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