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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성장교육(인문.철학.교양./부부로 산다는 것

풀꽃 사랑

by 탄천사랑 2007. 5. 17.

·「최정미 외  - 부부로 산다는 것」



 

풀꽃 사랑
보자기만 한 마당 한 켠에 풀꽃이 바글바글 피어 있습니다.

선거와 아내의 죽음, 
그리고 얽히고 설킨 뒷정리 탓에 뜨락 한번 제대로 쳐다보지 못한 
제 어리석은 몸짓을 나무라기라도 하듯 풀꽃은 참으로 예쁜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생전에 아내는 이름 모를 풀꽃들을 참으로 좋아했습니다.
마당의 잡초를 뽑다가 풀꽃을 캐낼 요량으로 호미를 들면 얼른 막아서서 풀꽃을 만져주곤 했습니다.

들판에 나가면 어디든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풀꽃이거늘 
아내는 왜 그리 작고 어린 풀꽃을 예뻐하며 보살폈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자신의 생명이 여유 없음을 짐작하고 작고 여린 생명들을 아끼고 보살폈는지 모릅니다.

나는 잡초를 뽑다 말고 행여 밟을세라 조심조심 뒷걸음질을 쳤습니다. 
강아지 두 마리가 혹시라도 밟아 뭉갤까 싶어 녀석들을 며칠만이라도, 
풀꽃이 질 때까지 만이라도 가두어 둘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아내의 애절한 목소리를 떠올렸습니다.  
오랜 병상 생활에 지쳐 울먹이며 하던 소리 말입니다.

"새가 되어 훨훨 날아 다니고 싶어."

병상에 갇힌 생활이 얼마나 지겨웠으면 사람 아닌 새가 되고 싶어 했을까, 
다시 태어나면 건강한 사람으로 태어나게 해달라고 말하기보다 왜 하필 새가 되고 싶어 했을까, 
얼마나 자유로운 활동이 그리웠을까.

장난기 많은 강아지가 그리 맘껏 뛰어 놀아도 
풀꽃은 여전히 그 작고 여린 꽃잎을 예쁘게 자랑하고 있습니다.

아내가 살아 있었다면 저 여린 꽃과 강아지를 어루만지며 예뻐했을 텐데.



인연이란 참으로 기막히게 소중한 겁니다.
한 여자와 한 남자가 만나게 되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두 사람이 만나기 위해서는 각각 두 사람의 부모가 존재해야 되고, 
그 부모가 존재하기 위해 그 윗대 부모가 있어야 하고......, 
그렇게 따지다 보면 현존하는 두 사람의 만남은, 수억만 년 인연의 고리가 연결되어야 합니다.

단 한 번 삐끗했더라면 한 사람의 존재가 없어지게 됩니다. 
그러하기에 두 사람의 만남은 세기적 역사적 사건이 분명합니다.

그렇게 태어난 곳이 한국 땅이고, 
그렇게 자라서 한순간에 만난 사람이 인연이 되어서 사랑하게 되었다면, 
굳이 수학공식을 들추지 않아도 그 확률적 계산으로 아주 특별한 것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랑은 우연이든 필연이든 '인연의 관계'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존귀한 인연으로 평생 해로하는 부부도 있지만, 
이혼하거나 함께 살아도 원수지간처럼 사는 사람도 있기 마련입니다. 
겉으로 좋은 부부인 듯하지만 속으로는 정 없이 건성으로 사는 부부 또한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생각해 봅시다.



인생은 한 번뿐입니다. 
한 번뿐인 인생, 아름답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한 번 맺은 인연을 선연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노력이 필요합니다. 
저절로 선연이 되는 게 아닙니다. 
적어도 부부끼리는 자신을 먼저 낮추는 최소한의 인간적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겁니다.

우리는 물을 마실 때, 어떻게 얼마나 마셔야 하는지 묻지 않습니다. 
누구나 스스로 조율이 되기 때문입니다. 
부부도, 
사랑도, 
삶도 마찬가지 입니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실천하지 않을 뿐이지요.

이 책 「부부로 산다는 것」은 혼자 사는 외로운 자유보다, 
둘이 함께 토닥거리는 평화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수십 년을 함께 살면서 누구나 느낄 수밖에 없는 갈등과 갈증, 
그리고 추억과 소망 또는 행복과 희망에 관한 갈구를 고스란히 우리들 가슴에 전해주고 있습니다. 
책을 읽다 보면 작은 행복과 깨달음이 이런 화사한 삶을 만들어주는구나 하는 
'희망 바이러스'에 나도 모르게 감염됩니다.

사랑에 관한 정답이 있을까요?

명답은 많겠지만, 
정답은 영원한 숙제로 남을지도 모릅니다. 
오묘하고 복잡할 뿐 아니라 상대와 상황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는 게 사랑이어서 
죽는 날까지 풀고 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니, 
단 한 번이라도 열정적으로 사랑을 한다면 그 숙제를 풀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번밖에 못 사는 인생.
지금 이 순간, 
가까이 있는 당신의 사람을 시처럼 사랑해 버리면 어떨까요?



사랑


천년
동안
내린
빗방울만큼






등신같이
※ 이 글은 <부부로 산다는 것>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최정미 외  - 부부로 산다는 것
위즈덤하우스 - 2005. 10. 07.

[t-07.05.17.  210505-163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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