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미 외 - 부부로 산다는 것」
탄천
때로는 그의 뒷모습을 유심히 관찰해 보세요. 그의 어깨가 유난히 작아 보일 때가 있을 겁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작은 어깨는 아니었을 겁니다. 세파에 시달리다 보니 위축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의 작은 어깨를 토닥여 주세요. 그의 자신감을 일깨워 주세요.
그도 한때는 패기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수 있습니다. 당신이 북돋워 준다면.....,
001.
아픔을 고백하고 나누는 것
"아빠, 제발....,"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끓었다.
엎드린 채 두 손을 모아 싹싹 빌기 시작했다.
아버지를 말릴 수 있다면, 그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고 그녀는 결심했다.
"아빠, 제발....,
큰외삼촌 손잡고 식장에 들어가게 해주세요."
아버지는 대리석처럼 말이 없었다.
아니, 그녀의 말 몇 마디가 아버지를 대리석으로 만들어 버렸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녀는 어쩔 수 없다고 굳게 믿었다.
엄마가 그렇게 하자고 했으니까 잘못만은 아니야.
침묵이 흘렀다.
그녀는 겁이 나기 시작했다.
아빠가 거절이라도 하신다면.... 그러면 정말 큰 일이었다.
"예야."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그녀의 심장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뭐라고 하실까.
거절하실 게 틀림없어.
말도 안 돼.
어떻게 저런 모습으로 신부 손을 잡으려고....,
그가 '장인 되실 분'에 대해 물을 때마다, 그녀는 늘 거짓말을 했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외국에 가 계시는데,
너무 편찮으셔서 거동하기 불편하시다고 둘러댔다.
그렇게 임시방편으로 막아 두었지만, 언제까지 거짓말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네, 아빠.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아빠. 네?"
그녀는 방바닥에 이마를 대고 눈물을 쏟았다.
고개를 드는 것조차 겁이 났다.
만약에, 만약에 거절하신다면....,
"나한테 그럴 필요 없단다.
몸이 아파서 결혼식장에 못 간다고 연락하려던 참이었거든."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왁 하고 울음을 토해 냈다.
그녀의 울음이 잦아들기를 기다려 아버지가 물었다.
"청첩장 나왔지?"
"네."
"하나 주고 가렴.
하나밖에 없는 무남독녀 우리 딸이 결혼을 하는데 청첩장은 간수해야지."
그녀는 눈물을 닦으며 가방에서 봉투를 꺼내 아버지에게 내밀었다.
하지만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청첩장에는 신부 측 혼주로 큰외삼촌의 이름이 인쇄되어 있었다.
엄마는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그 인간을 용서할 수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아무리 억지 결혼이라지만,
딸 하나만 남겨 놓고 집을 나가 버린,
그토록 무책임한 인간은 아빠라고 불릴 자격도 없다며 이를 악물기도 하셨다.
그녀는 그가 가족에 대해 물을 때마다 겁이 났다.
3년을 사귀면서도 가족 얘기는 한사코 피했다.
자신의 가족 내력을 그가 알게 된다면 실망할 것이 틀림없었다.
아니,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녀는 쫓기듯이 아버지의 집을 나섰다.
아버지가 절뚝이며 비좁은 현관까지 배웅을 아왔다.
그녀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신발을 신었다.
문을 열고 나서려는 순간
"애야" 하고 아버지가 불렸다.
"네, 이빠."
그녀는 신발코를 보며 대답했다.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단다.
네가 행복한 게 제일 중요하거든."
무의식적으로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눈과 마주쳤다.
교통사고 때 입은 화상으로 짓무른 얼굴, 그 속의 맑은 눈이 눈물을 가득 담고 있었다.
그녀는 문을 열고 밖으로 뛰어나왔다.
이렇게 되면, 이 일만 해결되면 속이 후련할 것 같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가슴에 대못이 박힌 것 같았다.
그녀는 아파트 복도에 서서 한참 동안 울었다.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단다. 네가 행복한 게 제일 중요하거든.'
그 한 마디 한 마디가 그녀의 가슴에 비수처럼 파고 들었다.
난간에 기대어 울던 그녀는 가방을 열었다.
청첩장 한 무더기가 들어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끄집어 내어 휴지통에 처벅았다.
그리고 핸드폰 버튼을 눌렀다.
"응. 나야.
바빠? 할 얘기가 있어."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가요? 그렇다면 먼저, 당신이 행복해져야 합니다.
당신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아품을 덜어내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품을 덜어주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기꺼이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사랑의 출발입니다. (p019)
※ 이 글은 <부부로 산다는 것>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탄천 [t-07.05.22 20210505-17004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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