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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성장교육(인문.철학.교양./의식있는 여성이 행복을 만든다

제 2 장 - 9 꿈에서 현실로 가는 길

by 탄천사랑 2024. 1. 19.

·「조동춘 - 의식 있는 여성이 행복을 만든다」

 

 

결혼의 환상과 생활


꿈에서 현실로 가는 길
인간의 감정에는 5단계의 주기가 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서로 사랑을 하고, 서로 필요에 의해서 결혼을 하게 된다.
결혼을 해서 신혼의 단꿈이 채 가시기도 전에 
두 사람에게 권태기가 닥쳐와 감미로운 사랑의 마음을 말려 버리기도 한다.

사랑과 미움은 모두가 관심에서 비롯되며, 상대에 대한 마음의 평가인 것이다.
자기 자신이 주체가 되어 사랑도 일어나고 미움도 싹튼다.

사랑이 미움으로 변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은 상대의 마음이 변하지 않도록 당부하는 것보다 
자기 자신의 마음이 변하지 않도록 조절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
상대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지만, 나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지 않은가?

사랑은 아름답고, 기쁘고, 상쾌한 것이다.
이러한 사랑이 내 곁에 오랫동안 머물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는 감정의 주기를 잘 조절해 볼 필요가 있다.

인간의 감정에는 다섯 단계의 주기가 있다.
그 중에서 제일 먼저 오는 것이 '꿈의 시기'이다.
꿈의 시기는 도래하지 않는 미지의 세게에 대한 동경과 기대, 그리고 희망인 것이다.
학교를 다니며 시험공부라는 지옥에 시달리는 학생에게는 졸업이 가장 큰 기대며 꿈이다.

'졸업만 하면 그 지긋지긋한 시험도 안 보고, 어른들처럼 멋도 부릴 수 있고, 좋은 직장에 취직도 하고,
 멋진 상대를 만나 데이트도 하고....,'

이런 저런 생각이 모두 꿈이고 희망이다.
결혼을 하지 않은 처녀들에게는 결혼 그 자체가 꿈이다.
말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렌다.
결혼은 미혼에게는 환희이고, 기쁨이며, 기대인 것이다.

"결혼식을 올릴 때 난 이런 면사포를 써야지.
 너무나 멋지고 잘 어울릴 거야. 
 드레스는 어떤 걸 입을까? 내 평생에 단 한 번 뿐인데....,"

결혼식 날의 황홀한 자기의 이미지를 그리며 마음이 들떠있는 처녀의 심정, 이것이 꿈이다.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행복과 기대감에 부풀어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펴보는 심정,
이것이 꿈의 시기이다.


꿈의 시기가 지나면 환멸의 시기가 온다.
그러나 아무리 아름답고 황홀하던 그 어떤 꿈도 깨어나 보라.
얼마나 허전하고 씁쓸하던가?
마찬가지로 아직 도래하지 않은 세계를 동경하던 꿈이 현실로 다가왔을 때 
그것은 절망, 후회, 원망이 뒤얽혀 서글퍼진다.

어른들은 학생들을 보고 '너희들 때가 제일 좋은 때'라고 한다.
그러나 학생들이 이런 말을 이해할 수 있던가?
결혼을 해서 한참 살아 본 사람들에게는 결혼생활이 그토록 아름다운 꿈일 수만은 없다.

그래서 오는 것이 '환멸의 시기'이다.
환멸의 시기는 현실로 다가온 모든 문제가 생각하고 기대했던 것보다 너무나 차이가 많아 
실망하고 후회하는 시기이다. 

그렇게 멋지고 남성답게 보이던 그이가 왜 그렇게 초라하고 형편없이 보이는지,
그이가 싫어지고 결혼을 후회하며 회의를 느끼게 된다.
남편에게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라 아내 자신의 감정에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이것이 권태기의 시작이다.

권태기는 아내인 여성들에게만 오는 것이 아니다.
남편인 남성들에게도 온다.
누구에게 먼저 오느냐 하는 것은 감정의 주기가 어떻게 되어 있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자기 감정의 변화에 의해서 일어나는 권태기.
상대다 싫어지고 귀찮고 짜증이 나기 일쑤이다.
짜증은 상대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발생되는 것이다.

'이런 것이 결혼 생활인 줄은 미처 몰랐다'
'내가 어쩌다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는지 몰라'
갖은 푸념을 다하며 넋두리를 한다.
자신도 괴롭겠지만 다른 사람에게도 결코 아름답게는 보이지 않는다.

남편과도 서로 으르렁거리고 말다툼이 잦아진다.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이 없어지고 무시하고 얕보는 못된 습성이 발작을 일으키는 것이다.
몸도 무겁고 의욕이 떨어지며 매사에 권태를 느끼게 된다.

환멸의 시기 다음에 오는 불행의 시기
이 환멸의 시기가 어느 정도 지나가면 좌절이 오고 의욕상실이 되며, 
타성에 젖어 팔자와 신세 타령을 하는 '불행의 시기'가 온다.

불행의 시기는 온몸에 몸살 기운이 있는 것처럼 괴롭다.
누구하고도 대화하기 귀찮아지고 만사가 싫어진다.
희망이 없고 자신이 불쌍하게 여겨지며 슬퍼지는 것을 느낀다.
권태기가 절정에 이른 것이다.

어떠한 타협도 이해도 대화도 단절한 채 스스로 달팽이처럼 자기 속에 들어앉아,
현실도피만을 생각하며 이것이 한 가닥 희망인 양 착각을 하게 된다.

'불행의 시기'에서 생각하는 현실도피, 이것은 다시 '꿈의 시기'로 가고 싶어 하는 청신호이다.
자기 자신을 괴로움과 고통에서 벗어나 아름답고 감미로운 쪽으로 바꾸어 보려는 심리이지만,
결혼이 지겨우면 이혼을 생각하게 된다.
올바른 자기조절의 묘수는 아니지만 이 길 밖에 없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이혼이 차라리 낫겠다. 이렇게 지겹게 살려면....,'
그러나 이혼을 해보자.
이혼을 하기 전까지는 이혼을 하면 뭐든 어떻게 되겠지 하는 꿈을 꾸며 살고 있다.
하지만 막상 이혼을 하고 나면 얼마나 허전하겠는가?

결국은 다시 환멸의 시기로 접어들게 된다.
그래서 불행의 시기에는 현실도피를 생각하지 말고 현실을 극복해 나가는 투지와 의지가 필요한 것이다.
이렇게 해야 감정을 다음 단계로 조절하게 되는 것이다. 

불행의 시기를 벗어나면 감성의 시기가 온다
불행의 시기에서 지독한 권태로움을 스스로 벗어 던지고 심리적 해방감을 맛보게 되는 것,
이것이 '각성의 시기'이다.
각성의 시기는 처절하고 지겨운 현실에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내가 이래서는 안되지, 이만하면 나는 행복한 거야, 내가 뭐 잘났다고....,
 내가 인물이 잘 났나, 학벌이 뛰어난가, 가문이 좋은가.... 이만하면 됐지....,'

이렇게 자기를 격려하며, 분수를 깨닫는 것이다.
'사실 내 남편 만한 사람도 드물다'
스스로 자신의 인간성이 틀렸다고 자책하면서 미안해 하고 자기의 도리를 찾아 행하려는 마음의 결심이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편안하게 조절하는 것은 물론 상대를 기분 좋게 해주니까,
서로 이해와 타협이 이루어지고 대화가 시작된다.
이것이 권태기의 극복이다.

권태기는 누가 어떻게 해 주어야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조절해야 한다.
권태기에 파경을 초래하는 신혼부부들을 보면 스스로를 각성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마음에서 스스로 자라난 독버섯을 누가 제거해 주겠는가?
스스로 제거하지 못하면 독이 펴져 비극적인 종말을 초래하게 된다.
우리들의 감정에도 독버섯이 있다.

각성의 시기가 지나면 오는 완성의 시기
스스로 오만하고 남을 무시하며 건방졌던 자신을 나무라며,    
현재의 자신에 만족하려는 심리 조절 즉 '각성의 시기'가 지나면 '완성의 시기'가 온다.

인생의 근본 이치를 깨닫고 세상살이에 지나친 기대를 하지 않으면,
인생은 잔디밭과 같다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
인생의 쓴맛과 단맛을 다 보고 도통한 사람처럼 동고동락의 근본 이치를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고통을 같이 나눈 사람이 기쁨도 같이 할 수 있다.'

이 당연한 진리를 순간순간 잊어버리고 우리는 동락 同樂만을 요구하기 일쑤이다.
동락만을 요구하고 기대하는 사람은 대체로 '첩'의 의식구조를 가졌거나 아니면 인생의 참뜻을 깨닫지 못한 사람이다.

동고동락이 인생살이의 기본임을 아는 사람들은 '본처 本妻'의 이식을 가진 경우이다.

부부가 좋을 때만 같이 하고 고통은 같이 하지 않겠다면 이 얼마나 모순인가?
남남이 만나서 부부가 되어 공동 생활을 해 나가는 가정은 같이 가꾸고 노력하지 않으면 존속할 수가 없다.
어려울 때는 부부가 서로 위로를 하고 같이 거들어서 외로움과 힘겨움을 덜어주는 도리,
이것이 없이 공동 생활은 유지되기가 어렵다.

이와 같이 감정은 스스로 움직이며 조절이 되는데 '완성의 시기'에 있을 때 가장 깊이가 있고 품위 있게 느껴진다.
완성의 시기에 감정이 어긋났다고 해서 거기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계기에 '꿈의 시기'로 옮아갔다가 다시 '환멸의 시기' '불행의 시기'로 옮아가고,
더 이상 극복하기 어렵다고 괴로워하다 보면 다시 내면의 힘이 생겨 '각성의 시기'를 맞고 '완성의 시기'에 이른다.

감정의 주기는 수시로 변화된다.
이러한 감정의 주기는 수시로 변화되기 때문에 기쁨과 괴로움, 사랑과 미움은 항상 교차되기 마련이다.

권태기가 한 번 지나갔다고 해서 다시 오지 않는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권태기는 수시로 찾아오는 불청객이다.
불청객을 어떻게 잘 대접을 해서 빨리 보내느냐 하는 것이 생활의 지혜이다.

그렇다면 사랑의 방해꾼 불청객이 무엇을 좋아할까?
영화를 좋아하면 영화를 보고, 책을 좋아하면 책을 보자.
훈시를 좋아하면 좋은 말씀을 듣자.
음악을 좋아하면 음악을 듣고, 음식을 좋아하면 맛있는 음식을 먹자.
그리고 분위기를 바꾸기 원하면 분위기를 바꾸어 보자.

불청객인 권태기는 남편이 아니고 내 마음이다.
원하지도 않는데 권태롭고 짜증을 내며 모든 것을 거부하거든 '아! 불청객이 끼어들어 왔구나' 하고 생각하자.

불청객이 찾아오면 몸이 무겁고 만사가 귀찮고 서글퍼진다.
이것이 '환멸의 시기'이다.
환멸의 시기와 불행의 시기를 단축시키고 꿈의 시기, 각성의 시기, 
완성의 시기가 오래 머물도록 조절을 해야 한다.

불청객이 있으면 남편이 미워지고 보기 싫어진다.
그러나 불청객이 떠나고 나면 다시 남편이 늠름하고 멋지고 근사해 보인다.

감정 주기의 조절이 생활의 지혜
사랑과 미움은 자기의 마음에서 싹트기 때문에 마음의 횡포를 그대로 당해야 한다.
마음의 횡포는 다른 사람에 의해서 조절되는 것보다는 자기 자신의 노력으로 막아 나가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아름다운 마음으로 아름다운 노래를 하며 아름답게 살기를 바라는 것은 누구나의 바램이다.

그러나 처음의 마음처럼 깨끗하고 순백의 색깔이 그대로 지속되지는 않는다.
조금 있으면 더럽게 오염되는 것을 보듯이 우리의 마음은 감정의 주기에 따라 변덕이 심하다.
감정의 주기를 잘 조절하여 환멸과 불행의 시기를 단축시켜 나가면 

바람직하고 행복하고 멋있는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환멸과 불행의 시기를 단축시키지 못하면 
괴로움과 불행 속에서 자신의 인생을 학대하고 팔자 타령만 하며 무가치한 하루하루의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아름다운 사랑을 그대로 지속시켜 나가려면 권태기가 불러들이는 마음의 불청객을 빨리 쫓아 버려야 한다.
사랑과 미움은 어차피 교차되는 것이지만 사랑의 길은 폭이 넓고 미움의 길은 폭이 좁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권태기는 일생 동안 여러 차례 찾아오는 불청객이지만 
가볍게 인사해서 빨리 내보낼 수 있는 생활의 지혜를 감정의 주기에서 찾아보면 좋겠다.

당신의 감정은 지금 어느 주기에 있을까? 



※ 이 글은 <의식 있는 여성이 행복을 만든다>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t-24.01.07.  20230101-1514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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