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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성장교육(인문.철학.교양./의식있는 여성이 행복을 만든다

제 2 장 - 8 여자의 과거와 결혼

by 탄천사랑 2024. 1. 14.

·「조동춘 - 의식 있는 여성이 행복을 만든다」

 

 

결혼의 환상과 생활

여자의 과거와 결혼
신혼의 첫날밤을 지낸 신랑의 돌변한 태도
열렬한 연애 끝에 결혼을 한 신혼부부가 멋진 행복의 꿈을 안고 신혼여행을 떠났다.
그들은 무조건 행복하고 무조건 좋기만 하다.
분위기 있는 최상급 호텔에서 달콤하고 황홀하다는 첫날밤을 지냈다.

그런데 이게 어인 일인가?
아침이 되어 신부가 눈을 떠보니 신랑이 시무룩해져서 떫은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더 없이 애무하고 더없이 사랑스러워야 할 신부에 대한 신랑의 마음이 왜 흔들리고 있는 것일까?

신랑은 마치 더러운 것을 피하고 싶다는 눈빛으로 신부를 쳐다보지도 않고 외면하는 것이었다.
신부는 멋도 모르고, 무언가 달라진 신랑에게서 느끼는 어색하고 어정쩡한 기분에 휩싸여 있었다.

"잠시 나갔다 올게...,"
등을 획 돌리고 방을 떠나는 신랑을 잡을 여유도, 어디를 가느냐고 물어 볼 기분도 나지를 않는다.
신부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왜 저럴까? 혹시...,' 신부는 체념이라도 한 듯이,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담담한 기분에 빠져들면서도 '이대로 끝나게 되는 건가?'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에 서글픔이 밀려왔다.


심문하는 신랑, 말을 못하는 신부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는 술기운이 얼큰해서 돌아왔고 신부는 고해성사를 하는 속죄양이 된 것처럼 말없이 다소곳이 앉아 있다.

"이리 와 앉아 보시죠?"  갑자기 신랑의 입에서는 존댓말이 나온다.
"우리 터놓고 이야기합시다. 숨겨질 것도 아닌데...."

신랑은 몹시 괴로워 견디기 어려운 듯 숨이 거칠다.
'이판사판이다. 올 것이 왔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 신부는 다소곳이 마주 앉았다.

"왜 그러세요? 어디가 불편해서 그래요? 
 아니, 무슨 뭐 불쾌한 일이라도 생긴 건가요?"

이런 걱정과 염려의 말이라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신부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다 터놓고 솔직해 집시다.
 이 시간만은 누가 뭐래도 여기 있는 두 사람은 양심을 속여서는 안됩니다."

신랑의 말은 신부를 더욱 꼼짝 못 하게 하고 있었다.
결국, 그들은 그날로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신혼여행에서 파경, 
왜 그들은 결혼을 하고, 같이 생활도 못 해보고 이런 결말을 내야만 했는가?


신세대의 이율배반적인 사고방식이 문제
요즘 젊은이들은 무척 개방적이라고 떠든다.
기성세대의 어른들이 자신의 기준에 맞추어 이야기하면 구세대적인 사고라고 즉각 반박하기 일쑤이다.
그러나 막상 어떤 일이 자기들의 눈앞에 놓이게 되면,
객관적이었을 때와는 무척 상반되는 반응이 나타난다.

'신부에게 처녀 출혈이 없었다'라는 이유로 그들 부부는 신혼여행에서 파경이 온 것이다.
그리고 그 신부 역시 과거에 어떤 남자와 첫 정을 나누던 그때에 성관계를 가졌다.
이 신부는 신랑에게 용서해 달라는 말도, 
이해해 달라는 말도 없이 잘못했던 일이 발각이 되었으니 처분대로 하겠다는 입장을 보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아직까지 옛날의 그 남자를 잊지 못해 괴로워하는 일도 없으면서,
과거의 실수에 대한 죄(?)의 대가를 다소곳이 받겠다는 심산일까?
남자는 더 이상 생각을 해볼 여지가 없다는 식이고, 
여자는 들켰으니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포기해버리는 젊은이들이다.


사랑은 이해가 아니라 용서하는 것이다.
우리가 한 평생 살아가면서 어떤 실수나 잘못을 한 번도 안 한다는 보장이 있던가?
그것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고, 그 노력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해야 할 일이다.

한 번의 실수는 병가상사 兵家常事라고 하지 않던가?
그 한 번의 실수로 평생을 망친다는 것은 너무나 자기의 인생에 무책임한 일이다.

그 두 사람은 도대체 무슨 마음을 먹고 결혼한 것인가?
'우리는 처녀, 총각이다'라는 유세를 하는 것이 결혼인가?
누가 누구를 속였단 말인가?
그렇다면 그 신랑도 숫총각이었다는 말인가?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돼지 나무란다'라는 듯이 신부는 실수였을지 몰라도 신랑은 상습적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상대에 대한 신문을 그렇게 당당히 할 수 있는 일인지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이런 말을 하는 나에게 '정신 나가지 않았느냐'라고 반문 할 사람도 꽤 많으리라.
그러나 사랑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는 것이다.
서로 사랑을 해서 부부가 되기로 만인 앞에서 맹세했다면 이목이 두려워서라도 그렇게 쉽게 끝날 수는 없는 일이다.


잃어버린 보물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
숫처녀가 아니기 때문에 너와는 살 수가 없다.
이런 것이 젊은 남자들의 사고라면, 과연 기성세대의 사고방식을 소리 높여 비판할 자격을 가진 것일까?

중년의 남자들이 때로 상처를 하거나 이혼을 해서 혼자가 되면 재혼을 하게 된다.
이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고 자랑하는 일은, 처녀에게 새 장가를 가는 것이란다.

나로서는 이해가 잘 가지 않는 일이다.
결혼에 대한 비중이 신부가 처녀냐, 아니냐가 그렇게 대단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
처녀 총각이야 하룻밤 잠자리 이전까지이지, 하루 밤만 지나면 이런 명예스럽던(?) 이름은 끝나는 것이 아니던가?
그런 것을 평생을 같이 하면서 동고동락해야 될 아내에 대한 자격기준으로 삼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적어도 부부가 된다는 것은 그런 육체적 개념에 뜻을 두어서는 안 된다.
더 큰 차원으로 뜻을 돌려 더 깊게, 더 넓게 세상을 보며 두 사람의 인생을 갈고 닦아,
가정이라는 공동의 작품을 지혜롭게 이루어 가는데 그 의미를 부여해야 된다.
한 번 밖에 사용할 수 없는 보물은 잘 간직해야 한다.
그러나 잃어버린 보물에 노예가 되어 헤어나지 못한다면 더 큰 보물을 잃게 되는 것이다.



※ 이 글은 <의식 있는 여성이 행복을 만든다>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t-24.01.14.  20210131-1400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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