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자 -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에꾸아무는 ‘바람’이라는 뜻입니다.
내가 아는 에꾸아무는 케냐의 투루카나에 살고 있는 일곱 살짜리 소녀입니다.
수줍게 웃을 때마다 보조개가 패이는, 정말 사랑스러운 아이입니다.
사금 캐러 간 엄마를 대신해 동생을 돌보고 있습니다.
동생은 어디가 아픈지 계속 칭얼대며 누나를 힘들게 합니다.
에꾸아무는 그런 동생을 안아주었다가 힘들면 도로 뉘었다가 하고 있습니다.
나는 에꾸아무를 다 허물어져가는 헝겊과 지푸라기로 된 삼각형 모양의 움막 안에서 만났습니다.
에꾸아무는 나를 보자 마치 친한 사람을 만난 것처럼 잘 웃었습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어딘지 모르게 슬퍼 보였습니다.
내가 '너 뭣 좀 먹었니?'하고 묻자, 소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리고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그저께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동생이 아프다는 얘기를 하며 에꾸아무의 눈이 젖어듭니다.
이 예쁜 아이가 울고 있습니다. ‘바람’이라는 뜻을 가진 에꾸아무가......,
나는 에꾸아무 곁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날이 저물 무렵 엄마가 빈 손으로 돌아왔습니다.
에꾸아무 엄마가 사금을 캐서 버는 돈은 하루에 5실링에서 10실링 사이입니다.
5실링이면 이곳에서 물 한 잔 값입니다.
아빠는 두 해 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엄마는 칭얼대는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자장가 비슷한 노래를 불러줄 뿐,
에꾸아무는 오늘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잠을 청합니다.
어떻게 하면 허기진 배 부분을 없앨까 애를 쓰듯 몸을 최대한 웅크리고서.
이곳에 밤이 오면 참으로 할 일이 없습니다.
전기도 없고 등잔 켤 석유도 없고, 그야말로 적막강산입니다.
달빛과 별빛에 희미하게 사람형체만 보일 뿐,
저만치 떨어진 움막 밖의 돌 위에 앉아 나는 잠든 에꾸어무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내일 일찍 이곳에 먹을 것이 도착해야 할텐데, 꼭 그래야 할 텐데.
그렇지 않으면 또 많은 아이들이 가엾이 죽어갈 텐데......,
에꾸아무, 나는 이 아이를 서울로 데려가고 싶습니다.
데리고 가서 깨끗이 씻기고, 밥 먹이고, 예쁜 옷 입혀서 학교 보내고, 손 잡고 데리고 다니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이 소녀를 데려가면 서울 가서 한 열흘은 행복할 거예요.
하지만 이곳에 있는 엄마가 보고싶고, 동생이 보고싶어 에꾸아무는 곧 불행해질 겁니다.
마음이 아파 견딜 수가 없습니다. 에꾸아무야, 넌 왜 여기서 태어났니?
왜 하필 아프리카 땅에서 태어났니?
헤르만 헤세는 이런 시를 썼습니다.
- 인생에 주어진 의무는
다른 아무것도 없다네.
그저 행복하라는 한 가지 의무뿐.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세상에 왔지.
헤세는 에꾸아무를 모르니까 그런 시를 썼겠지요.
이 모든 것이 드라마라면 좋겠습니다.
그것도 연속극이 아닌 단 한 편으로 끝나는 단막극이라면.
에꾸아무 집 앞에 앉아 있을 때 저 멀리 들판으로 얼룩말때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프리카에 와서 처음 보는 야생동물입니다.
사람들은 아프리카 하면 곧바로 야생동물들을 떠올립니다.
텔레비전에서도 야생의 초원에 뛰노는 동물의 왕국만을 보여줍니다.
마치 아프리카에는 사람들이 살지 않는다는 듯이,
마치 무의미한 전쟁과 굶주림으로 수십만 명이 죽어가는 일이란 전혀 없다는 듯이.
왜 세상은
사자와 기린과 얼룩말들을 보호하면서 이 죄 없는 아이들은 그냥 굵어 죽어가게 내버려두는 걸까요?
물론, 아주 조금의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고릴라가 3백 마리가 죽었다고 하면 신문과 방송에서 떠들어대면서,
하루에도 수백 명씩 죽어가는 아이들에 대해선 침묵하는 이상한 세상입니다.
아프리카는 정말 신이 잠깐 잊으신 땅일까요?
불과 3년 간의 가뭄으로 에꾸아무가 사는 투루카나 지역에서만 3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습니다.
그들은 오로지 다른 나라에서 보내오는 구호품에만 의지해 살고 있습니다.
물론 수도 나이로비는 관광도시이니까 시람도 많고 버젓한 건물들도 있지만,
가뭄으로 농사를 짓지 못해 무작정 수도로 올라온 사람들로 연일 북새통이긴 마찬가지입니다.
거리를 배회하는 청소년들, 급증하는 범죄들, 일자리가 없는 도시 빈민, 높은 실업률,
배고픔을 참기 위해 본드를 입에 대고 있는 아이들,
겁도 없이 차를 가로 막고서 차 유리를 닦겠다고 조르는 아이들로 나이로비는 얼룩져 있습니다.
나이로비에서 투루카나로 가는 길은 온통 흙먼지만 날릴 뿐,
인적이 보이지 않는 버려진 땅 천지입니다.
갈라질 대로 갈라져, 아무리 땅이라 해도 아플 것같이 바짝 메말라 터진 곳,
그 끄뜨머리 투루카나에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여기는 적도와 담 하나 사이를 두고있는 곳, 사람이 살기 힘든 사막지대입니다.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최후의 유목민 중 하나입니다..
차에서 내리자 속눈썹까지 먼지가 하얗게 앉은 아이들이 거의 벌거벗은 채로 달려듭니다.
구호품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아이들.
우기인 10월이지만 비가 올 기미는 전혀 없습니다.
아이들은 강물이 다 말라버린 땅에서 사금을 채취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금싸라기가 있는 건 또 어떻게 알았을까요?
하루 종일 흙을 채에 넣어 흔들고 앉아 있으니까,
온 몸은 물론 속눈썹까지 흙먼지가 덮여 밀가루를 뒤집어쓴 것 같습니다.
사금을 찾기엔 너무 어린 대여섯 살 정도의 아이들은 제 몸의 반은 되는 플라스틱 물통을 들고
3, 40킬로미터 떨어진 거리에 가서 물을 길어 머리에 이고 옵니다.
가엾은 아이들. 이곳에서는 아이도 아이가 아닙니다.
먹고 살기 위해 일해야 하는 일꾼입니다.
여인들은 나를 보자 노래를 하기 시작합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단체로 내지르는 무슨 고함소리 같기도 하고 울음소리 같기도 한 노래를.
그것은 이런 내용이라고 합니다.
- 여기가 살 만한 곳이라고 생각하나요?
여기가 어떤 곳인 줄 아시나요?
배가 고파요.
먹을 걸 좀 주세요. -
보는 사람이 미안할 정도로 노래를 반복합니다.
저러면 더 배가 고플텐데.
여인들은 우리가 샤워하고 난 뒤 큰 수건으로 가슴께에서 여미는 식의 옷을 입고 있습니다.
그리고 색색의 구슬들로 목걸이를 해 목 전체에 칭칭 감아서 목의 살이 전혀 안 보이고,
귓바퀴에는 여섯 개 정도의 귀고리들이 달랑거립니다.
먹을 것도 없는데 저 구슬들은 어디서 다 난 걸까?
아프리카 사람들이 몸에 무엇을 달고 걸고 하는 걸 좋아한다는 건 알았지만
여기 이 여인들은 목언저리 살이 전혀 안 보일 만큼 수많은 목걸이를 한 것이 참 특이합니다.
저 구슬들은 다 어떻게 구한 거며,
이 더운 날 왜 저렇게 목을 감싸는지 내내 궁금했지만 하도 절실히게 노래를 부르고 있으니까
그런 것에 눈길이 가는 내 자신이 좀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많은 나라에서 식량을 보내오고 있지만 난민 숫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합니다.
아까 우리가 차에서 내릴 때 달려오던 아이들 중에는 키가 크고 유방이 제법 봉긋하게 솟아 있는데도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여자아이가 있었습니다.
아이는 젖가슴을 내놓고서도 헤헤거리며 웃고 있었습니다.
난 본능적으로 그 여자아이의 젖가슴을 두 손으로 가려주었습니다.
머리가 조금 돌은 아이라고 했습니다. 조금 돌아야 웃을 수 있는 곳입니다, 이곳은.
유목민들이니까 풀이 있어야 소떼와 양떼를 먹이는데 풀이 없어 동물들은 거의 굶어 죽었습니다.
한 청년이 길바닥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 누워 있다가, 나를 보더니 말합니다.
"가축이 다 죽어 아침에 일어나도 할 일이 없어요."
아침에 일어나도 할 일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막막하고 쓸쓸한 일일것입니다.
이들이 식량 창고에서 배급받는 것은 잡곡으로 이루어진 농산물인데,
이들의 주식이던 고기와 우유가 아니라서 먹으면 배탈이 난다고 합니다.
그래도 그것이 없어 굶은 날이 허다합니다.
한 움막으로 들어갔더니, 아빠는 1년 전에 죽고 엄마 혼자서 아이 셋을 키우고 있습니다.
이들이 사는 곳을 집이라 말하기 어렵습니다.
다 떨어진 헝겊, 지푸라기 등으로 얼기설기 엮어놓은 곳에 불과합니다.
물론 바닥은 딱딱한 흙바닥입니다.
남편이 죽기 전에 생긴 아이인지 젖을 빨고 있는 갓난아이와 고만고만한 아이 둘이 있습니다.
엄마는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은 게 없습니다.
젖이 안 나와서 아기는 젖을 비비 틀어가며 빨아댑니다.
이 엄마는 숯을 만들어서 파는데, 요 몇일 숯이 팔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다 형편이 그 모양인데 누가 숯을 산단 말인가요.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는 곳에서.
그저 죽지 않을 만큼 주는 구호 식량에 의지할 뿐,
가축 없는 이 유목민들의 삶은 아무 의미 없는 삶입니다.
다음날, 다행히 식량 배급차가 도착해 에꾸아무는 가까스로 죽음을 면했습니다.
언제까지 이 아이들이 이렇게 살아야 할까요?
방바닥에 굴러다니는 단돈 1백 원이면 한 끼를 배불리 먹일 수 있는데.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상에서는 4초마다 한 명의 아이가 전쟁과 기아로 죽어가고 있고,
매일 3만 5천 명의 아이들이 먹을 것이 없이 죽거나 전쟁터의 총알받이가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2억 5천 명의 아이들이 고된 노동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이 아이들을 고통받게 해야 할까요? (p19)
※ 이 글은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김혜자 -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오래된미래 - 2008. 10. 28.
[t-23.08.13. 210807-0746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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