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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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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Road - 떠나고 싶지만 지금은 떠날 수 없는 사람들에게

by 탄천사랑 2023. 8. 27.

·「박준 - On the Road 카오산로드에서 만난 사람들」



 

저자의 글 

떠나고 싶지만 지금은 떠날 수 없는 사람들에게
<On the Road>는 평범한 일상에 지쳐 여행을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다.
한번도 떠나보지 못한 사람, 떠나고 싶지만 쉽게 떠날 수 없는 사람에게 전하고 싶는 얘기다. 
당장은 떠날 수 없더라도 언젠가 한번은 떠나고 싶은 사람들에게 건네는 이야기다.
돈이 많지 않아도, 영어를 잘 못해도 여행은 떠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여행을 꿈꾸지만 막상 떠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번도 떠나보지 않은 사람에게 한국을 떠나 외국을 여행한다는 건 너무 막연하다.
떠나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처음 한번이 힘들 뿐이다.

10년 전 난생처음 방콕의 '카오산 로드'라는 여행자 거리에 간 적이 있다.
카오산에는 정말 다양한 국적의 여행자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난 충격을 받았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카오산 로드의 풍경은 여행에 대한 열정을 불끈불끈 솟구치게 만들었다.

카오산을 거쳐간 사람들은 모두 카오산을 그리워한다.
카오산의 북적거림과 요란함을 싫어했던 여행자들마저도 떠나고 나서는 카오산을 그리워한다.
처음 카오산에 도착한 사람들은 카오산 로드의 강렬한 무엇에 압도당한다.
그 '무엇'이란 비일상적인 거리의 풍경 때문이지만 이런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건 카오산 로드에서 느낄 수 있는 여행에 대한 에너지 때문이다. 

배낭을 메고 거리를 가로지르는 여행자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는 왠지 마음이 찡하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떠나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그래도 카오산에서 만나는 그들은 밝다.
길가의 카페에 앉아 그 앞을 지나는 여행자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도대체 이들은 다 어디에서 왔을까,하는 

궁금증이 일곤 했다. 

카오산 로드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는 아이디어는 아주 오래 전부터 갖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미적거리는 탓에 이 아이디어가 어떤 모양으로 되어 갈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6 ~ 7년 전 카오산 로드에 관한 다큐멘터리 기획안을 만들어 봤지만 그 뿐이었다.
그러고 보면 카오산은 게으르고 우유부단한 나마저 단박에 끌어당겨 무엇인가 만들고 싶게 한 것 같다.

어느날 한 방송사에서 다큐멘터리 기획안을 공모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디엔가 쳐박아둔 기획안을 겨우 찾아내 먼지 탈탈 털어 보낸 게 운좋게 당선되었다.
하지만 사전제작비를 지원받는 데다가 공중파 방송을 타게 된다는 기쁨은 말 그대로 잠깐이었다.
조연출도 통역도 없이 달랑 혼자서, 그것도 외국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고 나선 건 무모했다.
앞선 욕심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봐 
미리 받은 제작비를 돌려주고 다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아무튼 카오산 로드 자체에 대한 흥미에서 장기여행자들로 관심이 압축되었고,
다큐멘터리 <On the Road>는 
장기여행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여행이란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를 담고자 애썼다.

책 <On the Road>는 바로 그 다큐멘터리 <On the Road>에서 출발했다.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보겠다는 마음은 진작부터 있었다고 해도 이것을 책으로까지 만들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다큐멘터리가 방송되고서도 몇 달이 지나서야 <On the Road>를 책으로 만들겠다고 나선 건 
친구의 권유와 함께 <On the Road>를 시청한 사람들의 반응 때문이었다.
또 책이 다큐멘터리보다 더 많은 얘기를 담아낼 매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송에서 단 몇 분밖에 하지 못한 친구들 얘기를 사람들에게 전부 다 들려주고 싶다는 욕심도 들었다.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면서 고생은 했지만 좋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카오산에서 만난 친구들 팔아 돈 번다는 농담을 들을 만큼 
좋은 다큐와 책을 만들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카오산에서 만난 친구들, 사람들 덕분이었다.

그 중엔 학교를 자퇴한 여고생,
제과점을 운영하던 50데 부부,
나란히 회사를 그만두고 17개월간 여행을 떠난 30대 부부,
이메일은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묻던 스님,
인도에 가서 공부하겠다는 21세 수영이,
여자 혼자 1. 2년씩 여행해도 힘든 건 없다는 2, 30대 여행자들이 있었다.
외국 친구들도 많이 만났다.
자메이카 출신으로 뉴욕에 산다는 흑인 친구,
배낭여행자들 사이에서 악동으로 소문난 이스라엘 여행자들의 얘기가 궁금해 만났던 캐렌,
내가 묻는 것마다 전부 모르겠다던 시니컬한 벨기에 커플,
여행을 떠나기 전 마리화나나 피우며 하루하루를 살았다는 독일 친구,
태국 시골학교에 교환학생으로 온 미국 여고생,
카오산에 와서 일하며 여행을 하고 있는 그리스 친구,
회사 가는 게 인생의 목표는 아니라던 30대 후반 독일 친구도 있었다.
이들은 모두 수개월에서 1, 2년이란 긴 시간 동안 여행을 하고 있었다.

때로는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그들에게 내가 먼저 말을 건넸고, 때로는 그들이 내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십대에서 오십대까지 나이는 다양했어도 우리는 여행을 매게로 많은 얘기를 나눴다.
<On the Road>는 이렇게 만난 사람들이 왜 여행을 떠났고,
여행을 하면서 어떤 즐거운 일들이 있었고,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꿈꾸듯 들려주는 이야기다.
만남이 순간적이었던 만큼 우리의 대화도 자유로운 수다에 가까웠지만 
오히려 그덕에 더욱 솔직한 얘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먼저 떠난 사람으로서, 
그들이 들려준 이야기 속엔 떠나고 싶지만 지금은 떠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주는 위로와 격려가 묻어 있다.

자, 그럼 친구들의 매혹적인 이야기를 한번 들어볼까?
단, 이들의 예기에 너무 빠지지 말기를,
<On the Road>에는 모든 걸 그만두고 떠나고 싶게 만드는 중독성이 있으니....,
※ 이 글은 <On the Road 카오산로드에서 만난 사람들>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박준 - On the Road 카오산로드에서 만난 사람들
넥서스BOOKS - 2006. 06. 10.

[t-23.08.27.  220803-18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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