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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등대가 되었던 동양 철학과의 만남 - 박근혜

by 탄천사랑 2007. 5. 16.

 

 

월간에세이 2007. 05. - 내 삶의 등대가 되었던 동양철학과의 만남 

박근혜 대통령이 극찬한 중국의 철학자 「펑유란(馮友蘭)」의 저서『중국철학사』
지난 2007년 한 문예지에 기고한 칼럼에서 '힘겨웠던 시절, 마음의 평화를 되찾게 해 줬다'라고 밝힌 바 있었던 책이다.

일반인이 접하기 힘든 약 800페이지에 이르는 긴 시간을 요하는 고전이다.
특히 지적된 문구로 景行錄에 云 坐密室을 如通衢하고 馭寸心을 如六馬하면 可免過니라.

 


메모장 일부 / 내 삶의 등대가 되었던 동양철학과의 만남
내가 걸어온 삶은 다른 사람들과는 많이 달랐다.
나는 대학시절만 해도 전자공학 분야에 종사하는 산업역군이 되겠다는 꿈을 키워가고 있었다.

하지만 22살 나이에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제 인생의 행로는 완전히 달라졌다.
자연스럽게 어머니께서 남기고 가신 빈자리를 메우게 되면서, 내 개인의 꿈과 소망은 접게 되었다.
그리고 몇 년 되지 않아, 아버지마저 또 그렇게 보내드려야 했다.
20대 나이에 부모님을 모두 총탄에 잃었으니, 나와 동생들의 절망과 고통이 어떠했겠는가.

나를 더 힘들게 만들었던 것은 아버지를 곁에서 모시던 분들이 하나 둘씩 떠나가고,
정치적인 이유로 부모님이 온갖 매도를 당하는 것이었다.

나에게 남겨진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숨쉬는 것조차 힘이 들었고 당장이라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가족끼리 손을 잡고 나들이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도 평범한 가정에 태어났더라면...’ 하는 생각이 너무나 간절했다.

내가 그 고통을 이겨내고 마음의 평화를 되찾는 시간은
한마디로 나 자신과 끊임없는 대화를 하면서 제 자신과 싸우는 시간이었다.
동서양의 고전을 읽고,
명상을 하고,
매일 일기를 쓰고, 나를 돌아보며 마음의 중심을 잡아갔다.

그때, 
내가 만난 책이 내 삶의 한 구석에 조용히 들어와 결국 인생의 큰 스승으로 남은 펑유란(馮友蘭)의 『중국철학사』이다.
논리와 논증을 중시하는 서양 철학과 달리 동양 철학은 깨달음을 중시한다.
중국을 대표하는 철학자 펑유란 선생의 『중국철학사』역시 자신을 바로 세우고 바르게 살아가는 인간의 도리와 

어지러운 세상을 헤쳐 나갈 지혜의 가르침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나는 수첩공주라는 별명에 겉맞게  누구를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되든, 일단 메모를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책을 만날 때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철학사』를 읽으면서도 깊이 공감이 가고 깨달음을 준 글귀들을 한자 한 자 노트에 메모를 하면서 

함축된 언어와 행간에 숨겨진 진리를 마음에 새기곤 했다.
요즘도 가끔 옛날 노트를 들어다보면서 그때 기억을 떠올린다.

"최선의 수양방법은 고의적인 노력이나 목적을 둔 마음 없이 자기의 할 일을 다 하는 데 있다.
 이것이 바로 도가들이 말하는 무위이며 무심(無心)이다."

"자기 자신을 언제나 남의 입장에 두고 살펴보라. 그것이 바로 인(仁)이다."

"깊은 방안에 앉아 있더라도 마음은 네거리를 다니듯 조심하고, 작은 뜻을 베풀더라도 여섯 필의 말을 부리듯

  조심하면 모든 허물을 면할 수 있다.”는 글귀들은 지금도 큰 울림을 준다.
 
나는『중국철학사』와의 만남을 통해 마음의 평화를 되찾을 수 있었고, 이전에는 몰랐던 많은 것을 깨달게 되었다.
인생이란 다른 사람과의 싸움이 아니라 결국 자신과의 싸움이고,
그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스스로 중심을 잃지 않고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다스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재산이나 명예,
권력도 결국 한 순간 사라지는 한줌 재에 불과할 뿐이고,
올바르게 사는 인생이야말로 가장 가치 있는 삶이라는 평범하면서 소중한 진리를 체화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내 삶에서 고난은 오히려 나를 격려하는 벗이 되었고, 진실은 나의 길을 밝히는 등대가 되었다.

시냇물은 돌이 있을 때 노래하며 흐른다고 한다.
우리 삶도 고통의 돌이 있을 때 노래가 있다.
나 역시 그런 고통의 과정이 있었기에 새로운 삶의 가치를 마음속 깊이 뿌리내릴 수 있었고,
정말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오히려 새로운 희망은 다가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포기하기보다는 ‘운명이 나에게 준 사명과 책임’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 보는 것.
작든 크든, 무겁든 가볍든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한다면,
고난을 벗 삼고 진실을 등대 삼는다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었다.

오랜 세월 묻혀 두었던 동양정신의 유산을 빛나는 보석으로 닦아내서
어지러운 세상을 헤쳐 나가는 가르침을 주는 펑유란(馮友蘭) 선생의 『중국철학사』와의 만남,
나에게는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만남으로 기억되고 있다.
- 수필 문예지『월간에세이』 2007년 5월호 내 삶의 등대가 되었던 동양철학과의 만남에서 -

景行錄(경행록)에 云(이르길)
坐密室 (좌밀실) 如通衢 (여통구)   밀실에 앉아있어도 마치 네거리에 앉아있는 듯 하고
馭寸心 (어촌심) 如六馬 (여육마)   순간의 마음을 다스리기를 마치 여섯필의 말을 부리듯 하면
可免過 (가면과)   허물을 면할 수 있다.

아무도 없을때에도 큰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처럼 항상 언행을 조심하고,
내면의 마음을 다스리기를 마치 여섯필의 말을 부리듯이 조심스럽게 하여 잘못됨이 없도록 하라는 뜻이다.

 

  [t-07.05.16.  20220505_18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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