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0. 생텍쥐페리 - 어린왕자

「생텍쥐페리 - 어린왕자」

이미지 다음에서



9
나는 그가 철새들의 이동을 이용해서 도망해 나왔으리라고 생각한다. 
떠나는 날 아침에 그는 별을 잘 챙겨 봤다. 
그는 조심스럽게 불을 뿜는 화산을 청소했다.
그의 별에는 불을 뿜는 화산이 두 개 있었다. 
그것은 아침 식사를 덥히기에 매우 편리했다. 
그의 별에는 또한 죽은 화산도 하나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말마따나 

"언제 어떻게 될 지." 그는 그래서 그 죽은 화산 또한 청소했다. 

청소만 잘해 주면 화산들은 폭발하지 않고 조용히 규칙적으로 불탄다. 
화산의 폭발이란 굴뚝의 불길과도 같은 것이다. 
물론 지구에서는 우리가 너무 작아 화산을 청소할 수가 없다. 
그래서 화산으로 인하여 피해가 많은 것이다.

어린 왕자는 좀 쓸쓸한 마음으로 나머지 바오밥나무 싹도 제거해 주었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날 아침에는 항상 하던 일들이 유난히 그립게 생각되었다.
마지막으로 그 꽃에 물을 주고 고깔을 씌워 잘 보호하려고 하였을 때는 참얐던 울음이 터져나오려 했다.

"잘 있어요!"  그가 꽃에게 말했다.

그러나 꽃은 그에게 대답을 안 했다.

"잘 있어요!"  그가 되풀이했다.

꽃은 기침을 했다. 
그러나 그것은 감기 때문이 아니었다.

"제가 어라석었어요."  꽃이 마침내 말했다.
"용서해 줘요.
 그리고 행복하세요."

그는 꽃이 원망하지 않는 게 이상했다.
그는 손에 고깔을 든채 어리둥절해 있었다. 
그런 조용한 아늑함을 그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요. 난 당신을 사랑해요." 꽃이 말했다.
"당신은 그걸 몰랐어요.
 내 잘못이지만, 하긴 이젠 중요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당신도 나처럼 어리석었어요.
 행복하세요.
 그 고깔은 그냥 놔 둬요. 
 이젠 필요 없어요."
"하지만 바람이----"
"감기가 그렇게 심한 건 아니에요----
 밤의 찬 바람을 맞으면 오히려 좋을 거예요.
 나는 꽃이니까요."
"하지만 벌레들이----"
"나비를 보려면 두세 마리 벌레는 견디어 내야죠.
 나비는 썩 예쁜 모양이던데요.
 그렇잖으면 누가 나를 찾아오겠어요?
 당신은 멀리 갈 거구.
 커다란 짐승들이야 겁날 게 없어요.
 나도 발톱이 있으니까."

그리고 그 꽃은 순진하게 자기의 네 개 가시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그렇게 어정거리지 말아요. 
 기분이 좋지 않아요.
 가기로 결정했으니 가세요."

왜냐하면 그 꽃은 자기가 우는 걸 그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교만한 꽃이었다.


10
어린 왕자의 별은 소혹성 325호, 326호, 327호, 328호, 329호, 330호가 있는 쪽에 있다. 
그는 그래서 우선 일거리를 찾고 무엇가 배워 보려고 그 별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첫번째 별에는 왕이 살고 있었다.
왕은 홍포와 수달피로 만든 옷을 입고 아주 간단했지만 위엄이 대단한 왕좌에 자리잡고 있었다.

"오! 신민臣民이 하나 왔도다."라고 왕은 어린 왕자를 보자 소리쳤다.
그래서 어린 왕자는 '나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텐데 어떻게 알아볼까?'하고 생각했다.

왕들에게는 이 세상이 아주 간단한 것이라는 것을 어린 왕자는 알지 못했다. 
모든 사람이 신민臣民인 것이다.

"짐이 더 잘 볼 수 있도록 가까이 오라."

왕은 마침내 어떤 사람의 왕 노릇을 하게 된 것이 자랑스러워 그에게 말했다.

어린 왕자는 어디 앉을 데가 없나 찾아보았으나, 그 별은 모두가 수달피 외투로 가득 덮여 있었다. 
그래서 그는 서 있었고 피로했으므로 하품을 했다.

"왕 앞에서 하품을 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니라." 왕이 말했다.
"짐은 하품하는 걸 금하노라."
"참을 수가 없는 걸요."  어린 왕자는 어리둥절해 가지고 대답했다.
" 길을 먼 여행했는데 한숨도못 잤거든요----"
"그럼 하품하기를 명하노라." 왕이 말했다.
 
"여러 해전부터 짐은 하품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노라. 
 하품하는 게 신기하도다.
 자! 또 한 번 하품을 하라. 
 명령이니라."
"그렇게 말씀하시니 무서워서 ----. 안돼요----,"   어린 왕자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흠, 흠!"  왕이 대답했다.
"그러면 짐은----,짐은 하품을 하기도 하고--- 또----"

그는 약간 빨리 중얼거렸다.  
심기가 불편한 것 갔았다.
왜냐하면 왕이란 본질적으로 자기의 권위가 존중되기를 바라기 땨문이다.
그는 불복종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는 절대군주였다.
그러나 그는 아주 선량한 사람이었으므로 합리적인 명령을 내렸다.
그는 향상 이렇게 말했다.

"가령, 만일 짐이 어떤 장군에게 바닷새로 변하라고 명령하였는데 장군이 그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다면
 그건 장군의 잘못이 아니라 짐의 잘못이로다."
"앉아도 되나요?" 어린 왕자는 조심조심 물었다.
"짐은 앉기를 명하노라."

왕은 이렇게 대답하면서 엄숙하게 자기의 수달피 외투자락을 끌어들였다.
그러자 어린 왕자는 매우 놀랐다. 
별이 작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 왕은 무얼 다스리는 것일까?

"폐하-----" 하고 그가 말했다.
"좀 여쭤 봐도 괜찮습니까?"
"짐은 질문하기를 명하노라."  왕이 바로 말했다.
"폐하---- 폐하께서는 무얼 다스리십니까?"
"모든 것을,"  아주 간단하게 왕이 대답했다.
"모든 것을요?"

왕은 느긋하게 자기 별과 다른 별, 그리고 떠돌이 별들을 가리켰다.

"저것 전부를요?" 라고 어린 왕자가 물었다.
"저것 전부를----" 왕이 대답했다.

왜냐하면 그는 절대군주였을 뿐만 아니라 우주군주이었기 때문이다.

"별들이 폐하께 복종하나요?"
"물론이로다." 왕이 말했다.
"별들은 곧 복종하는라.
 짐은 규율 위반을 용납지 않노라."

그런 권력은 어린 왕자를 감동시켰다. 

'내가 그런 힘을 가지고 있었다면, 
 의자를 잡아당길 필요도 없이 하루에 마흔 네 번이 아니라,
 일흔 두 번이라도,
 아니 백 번이라도,  아니 이백 번이라도 해지는 황혼을 구경할 수 있었을 텐데.'

자기가 버려 두고 온 별에 대한 추억 때문에 서글픈 마음이 들어 그는 용기를 내어 왕에게 청을 했다.

"해 지는 걸 보고 싶습니다---- 제발 보여 주세요.
 태양에게 서쪽으로 넘어가라고 명령해 주세요.----"
"만일 짐이 어떤 장군에게 나비처럼 이 꽃 저 꽃을 날아다니라든지,
 한 편의 비극悲劇을 쓰란다든지,
 혹은 바다새로 변화하라고 명령하였는데,
 장군이 하달된 명령을 수행하지 못한다면 그와 짐 중에서 누가 잘못하였겠는가?"
"폐하입니다."

어린 왕자가 정확하게 대답했다.

"옳도다.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명령해야 하느니라."

왕이 다시 말했다.

"권위는 제일 먼저 이치에 합당한 것이어야 한다.
 만일 백성들에게 바다에 가 빠져 죽으라 명령하면 그들은 혁명을 일으킬 것이로다. 
 짐이 복종을 요구할 권리가 있음은 짐의 명령이 이치에 맞기 때문이노라."
"그럼 제가 부탁한 해지는 것은요?"

한 번 질물을 던지면 잊어 버리는 적이 없는 어린 왕자는 이렇게 말했다.

"해 지는 구경을 하게 되리로다. 
 짐이 그것을 요구하겠노라. 
 그러나 짐이 다스리는 시기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겠노라.'
"그때가 언제입니까?"
"흠! 흠!"

왕은 우선 커다란 달력을 찾아보고 나서 대답했다.

"흠! 흠! 에, 그건---- 그건---- 그건 저녁 일곱시 사십분경이겠로다. 
 그러면 너는 짐의 명령이 얼마나 잘 이행되는지 보리로다."

어린 왕자가 하품을 했다. 
그는 해 지는 것을 못 보게 된 게 서운했다. 
그는 벌써 약간 싫증이 났다.

"저는 여기서 할 게 없습니다." 그는 왕에게 말했다.
"떠나겠어요."
"떠나지 말라."

신민를 갖게 된 게 몹시도 자랑스러운 왕이 대답했다.

"떠나지 마라. 
 짐은 너를 장관을 시키리라."
"무슨 장관인이요?"
"에---- 법무부 장관이노라."
"하지만 여기엔 재판할 사람이 없는데요."
"알 수 있느냐?"  왕이 대답했다.
"짐은 아직까지 짐의 왕국을 순시한 적이 없노라.
 짐은 너무 늙었고, 수레를 타고 다닐 자리도 없고, 
 걸어다니는 건 힘이 드노라."
"오! 하지만 전 다 봤는 걸요."

몸을 굽혀 그 별의 저쪽편을 힐끗 쳐다보며 어린 왕자는 말했다.

"저쪽에도 아무도 없어요----"
"그럼 자신을 재판하면 되노라." 왕이 대답했다.
"그게 가장 힘드노라.
 다른 사람을 재판하는 것보다 자신을 재판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노라. 
 정말 자신을 재판할 수 있게 되면,
 훌륭한 현인이 될 것이로다."
"전 다른 데서도 저를 재판할 수 있어요.
 여기 있을 필요가 없지요."
"흠! 흠!" 왕이 말했다.
"이 별 어딘가에 늙은 쥐가 한 마리 있노라.
 밤이면 그 소리가 들리노라.
 너는 그 늙은 쥐를 재판할 수 있노라. 
 때때론 사형선고를 내릴 수도 있노라.
 그러면 그 쥐의 생명은 너에게 달려 있노라. 
 그러나 매번 특사를 내려 그 쥐를 살려 두도록 하라. 
 한 마리밖에 없기 때문이로다."
"전 사형선고 내리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어린 왕자가 말했다.

"가야 될 것 같아요."
"가지 말라." 

왕이 말했다.
어린 왕자는 떠날 준비를 다 끝냈으면서도 늙은 왕을 서운하게 하고 싶지가 않았다.

"폐하의 명령이 어김없이 이행되기를 원하신다면,
 합당한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예를 들면 일 분 안에 떠나라고 명령하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시기가 되었습니다----"

왕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으므로 어린 왕자는 처음엔 주저주저하다가 한숨을 내쉰 뒤 출발했다.

"짐은 너를 대사로 임명하노라."

임금님은 잔뜩 위엄을 부리며 말했다.
'어른들은 정말 이상하군'이라고 어린 왕자는 여행을 하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 이 글은 <어린왕자>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저자 - 생텍쥐페리 
역자 - 박용철
덕우 - 1989. 06.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