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仁山의학」
[230419-172602-3]
사람은 모름지기 입이 무거워야 한다.
그래야만 주변 사람과 오래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쓸데없는 말은 구업(口業입으로 짓는 죄)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며 원한怨恨과 절연絶緣으로 그 끝을 맺게 된다.
용의 입술을 본 적이 있나요?
한자漢字는 해석의 여지가 풍부하다는 게 장점이다.
사물의 모양을 나타낸 상형문자象形文字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자는 상상력과 추리력을 자극한다.
나에게는 한자 지명이 눈에 띄면 유심히 살펴보는 습관이 있다.
예를 들어 '입술 순脣' 자의 경우, 순脣 자를 뜯어보면 '별 진辰' 밑에 '달 월月'이 있다.
여기서 월月은 달(Moon)이 아니다.
육달월肉의 월月자다.
육달월은 인체의 살점, 즉 고깃덩어리肉를 가리킨다.
인체의 살점에 달月.의 영향력이 있다는 의미다.
우리나라 한의학의 권위자였던 고故 진태하 선생이 쓴
<사용환자 자원常用漢字 字源 풀이>라는 책에 이 순脣자에 대한 해석이 나온다.
'진辰은 진震으로 움직이다의 뜻이 있어, 입술은 말할 때나 먹을 때 움직이다의 뜻이 있어,
입술은 말할 때나 먹을 때 움직이기 때문에 취하였다'고 기술돼 있다.
입술은 '움직이는 육肉' 이라는 이야기다.
'입술 순脣 자, 용의 입술이라는 해석가능
전문가의 해석은 그렇지만 나는 이 순 자를 달리 해석하고 싶다.
진辰을 용龍 으로 보고 싶은 것이다.
띠를 나타내는 십이지 가운데 진辰이 있다.
예를 들면 1952년생은 임진생壬辰生이고, 1964년생은 갑진생甲辰生이다.
모두 용띠에 해당한다.
용띠를 나타낼 때 진辰을 쓰는 것이다.
진辰을 용으로 본다면 순脣은 용의 밑에 있는 살점이라는 뜻이 된다.
따라서 순脣은 '용의 입술'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용은 상상의 동물이다.
수水, 화火, 목木, 금金, 토土, 오행五行을 모구 갖춘 동물로 여겨진다.
몸통도 모두 비늘로 덮여 있다.
그런데 주둥이가 좀 긴데다 늘 이 주둥이를 쭉 내민 형상으로 묘사된다.
이 주둥이 끝부분인 입술 부위만 유일하게 비늘이 없으며 이 입술은 날카로운 이빨을 덮고 있다.
만약 이 입술이 없으면 이빨이 바로 드러난다.
순치관계(脣齒關係/입술과 이처럼 서로 관계가 갚고 밀접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또는 순망치안(脣亡齒寒/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뜻으로 서로 도우면서 떠러질 수 없는 관계)
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얼마 전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중궁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괴 회담했을 때다.
김정은 위원장이
"두 나라가 떼어놓을 수 없는 하나로 이어졌다."고 하자 시진핑 주석은
"북한과 중국은 운명공동체, 변한없는 순치관계" 라고 애기했다.
북한이 입술이라면 중국은 이빨이라는 것이다.
용은 주둥이가 길게 뻗어 나왔고, 주둥이 끝에 입술이 있다.
이와 비슷한 구조로 이뤄진 동물이 바고 돼지다.
돼지도 주둥이가 길고 그 긑에 입술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용띠와 돼지띠의 관게를 '원진살怨嗔煞'이라 부른다.
띠 궁합을 볼 때 용과 돼지가 만나면 흔히 원진살이 끼었다고 말한다.
괜히 서로를 미워한다는 뜻이다.
복福도 들어오지만 화禍 또한 들어오는 입
그렇다면 왜 용이 돼지를 미워할까?
돼지의 주둥이와 입술모양이 용을 닮았기 때문이다.
'아니 저 같잖은 돼지녀석이 감히 내 입모양을 닮아?
이거 되게 기분 나쁘구만!'
그래서 용이 돼지를 보면 화를 낸다고 한다.
묏자리 잡을 때는 전순前脣이라는 용어가 쓰인다.
묏자리 앞 여백으로 지맥이 뻗어 나온 부분을 전순이라고 부른다.
묏자리는 사람 얼굴에 비유하면 코 바로 밑에 잡는다.
코 밑으로 인중人中이 뻗었고, 인중 끝에 입술이 있는 것이다.
묏자리를 볼 때 이 전순이 너무 짧으면 후손이 귀하다고 여긴다.
관상에서도 인중이 좀 길어야 장수하는 도인의 얼굴이라고 보듯이 말이다.
천기를 흡입하는 코와 지기를 섭취하는 입의 중간에 있는 부위가 바로 인중이다.
'사람의 가운데'라는 뜻이다.
이 부위에 '인중'을 붙인 이유는 천기와 지기의 중간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인중 위쪽으로는 구멍이 2개씩이다.
콧구멍도 2개, 눈구멍도 2개, 귓구멍도 2개다.
2라는 숫자는 동양의 상수학에서 음을 상징한다.
인중 밑으로는 구멍이 1개씩이다.
입도 1개, 항문도 1개, 요도尿道도1개, 산도産道도1개다.
1이라는 숫자는 양을 상징한다.
인중을 중심으로 위로는 음이, 아래로는 양이 배치되어 있는 상향이다.
여기서 입의 위치를 다시 살펴보면 인중 아래로 양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인체의 양은 입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인간만사가 입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의미다.
입에서 먹을 것도 오고, 복도 들어오지만 화禍 또한 이를 통해 들어오곤 한다.
말을 잘못하면 재앙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입은 화가 들어오는 문'이라는 '구시화문口是禍門'이란 표현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원불교의 2대 종법사였던 정산鼎山 송규宋奎는 생전에 제지들에게
'심심창해수心深滄海水, 구중곤륜산口重崑崙山'이라는 말을 수시로 강조하였다.
'마음 씀씀이는 창수해처럼 깊어야 하고, 입은 곤륜산처럼 무거워야 한다.'는 뜻이다.
입이 무거워야 잘살 수 있다는 얘기다. (p65)
글 - 조용헌 (동양학자. 건대석좌교수)
출처 - 仁山의학 February 2019. Vol. 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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