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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국회도서관-인터뷰/조정래의 문학우리 삶을 데우는가장 순수한 연료

by 탄천사랑 2023. 2. 2.

「월간 국회도서관 - 2023. 1+2 Vol. 507」

[220203-170245]

 

조정래의 문학우리 삶을 데우는가장 순수한 연료

오랜 시간 조정래의 문학은 읽는 이의 피를 끓게 하는 가장 순수한 연료였다. 그의 작품은 온갖 풍파와 함께 급히 성장하느라 헐거워진 대한민국 사람들의 마음 구석구석에 불을 지폈다. 몰랐던 것을 알게 되고, 잊었던 것을 떠올리고, 오해했던 것들을 이해하게 해주며 오래오래 우리의 마음을 뜨끈하게 덥혀줬다. 지금도 새해가 되면 많은 이들이 의식처럼 『태백산맥』 독파, 『아리랑』 전권 읽기를 계획하고, 누군가는 그 긴 이야기를 필사하는 것을 목표로 삼곤 한다. 이런 독자들을 위해 등단 50주년을 훌쩍 넘기고, 여전히 자신만의 ‘황홀한 글감옥’에 갇혀 순수한 연료를 생산하고 있는 조정래 작가를 만났다.
조정래 작가조정래 작가가 국회도서관 유튜브 채널 ( https://www.youtube.com/c/NALKR )에서 새해인사를 전합니다


Q 신작 집필 중에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0년, 등단 50주년을 기념해 독자들의 질문에 답을 해준 『홀로 쓰고, 함께 살다』를 읽으며 한 작가를 흠모해 꼼꼼하게 글을 읽고 체화시킨 독자들의 질문이 참 좋았습니다. 독서 인구가 줄고 있다는데, 아직 책 읽는 사람들이 많다는 안도감도 들었습니다.
글쎄, 과연 그럴까요? 한 10년 전부터 단군 이래 최대의 출판 불황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통계청에서 10년 전 대한민국 사람 전체의 여가 중 책 읽는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 통계를 냈습니다. 놀랍게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하루 평균 독서 시간은 7, 8분이었습니다. 신문을 읽는 것까지 포함한 것이었죠. 10년 전이면 스마트폰이 출현한 바로 그즈음입니다. 그 뒤로 스마트폰의 기능은 날로 더 좋아졌고, 지금은 얼마나 책을 읽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놀이 삼아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책은 거의 안 읽는다고 봐야겠죠.

Q 이런 중에도 작가님 작품은 여전히 많은 사람이 찾고 있지 않습니까? 문학이 사라질 위기라고 하는데 계속해 좋은 작품을 내주시니 한편으로 감사한 마음도 있습니다.
고마운 일입니다만 말했듯이 책을 읽는 사람 자체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제 책이라고 다르지 않더군요. 2019년에 『천년의 질문』을 출간했습니다. 국가, 권력, 정치, 시민, 자본, 인간 소외라는 소재와 인류가 천년 동안 했던 질문에 대한 응답이라는 주제로 우리나라뿐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들의 공통적인 문제를 다뤘지요. 책을 내면서 자신만만했습니다. 당장 우리에게 닥친 문제를 다룬 소설이니 『태백산맥』보다 더 많은 독자들이 읽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소설가는 답을 알려주는 사람이 아님에도 시민의 힘으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으로 바꿔 나갈 방법까지 제시했습니다. 그만큼 절박한 상황이니까요. 이 책이 100만 부 정도 팔려서 그것을 돌려가며 천만 명이 읽고, 시민단체 활동을 한다면 대한민국은 평화적 혁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기대했던 것에 훨씬 못 미쳤어요. 물론 우리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일본도 다르지 않답니다. 승객 대부분이 책을 읽는 것으로 유명했던 일본 지하철에도 전부 스마트폰을 보는 사람들뿐이라고 해요

Q 『천년의 질문』 서문에도 쓰셨죠. 인간에게 재앙은 스마트폰과 플라스틱이라고요.
스마트폰이 영혼을 갉아먹고, 플라스틱은 건강을 파괴합니다. 인류가 개발하고 있는 과학이 인류의 미래를 파괴하고 있어요. 지금 환경 시계는 이제 5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계속 오염시키고 있죠. 막질 못합니다. 자동차도 타야 하고, 전기도 계속 써야 살 수 있으니까요. 인간이 슬기롭고 지혜롭다면 과학의 발전을 어느 지점에서 정지시켰을 겁니다. 지금이라도 규제하고 멈춰야 하는데, 전혀 되지 않고 있어요. 작가의 입장에서 볼 때 인류 멸망은 가속도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Q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듭니다.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니, 방법은 없는 걸까요?
지금부터 대비하면 되겠죠. 다 같이 조금씩 더 걷고, 덜 쓰고 좀 불편하게 살면 속도를 늦출 수는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겁니다. 새벽에도 환한 서울을 보세요. 도시 야경이 왜 필요한가요? 아무도 없는 밤에 환하게 불을 밝혀야 할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에너지를 절약해야 한다면서 모든 나라가 자랑삼아 야경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합니다. 우리뿐 아니라 전 세계가 노력하면 됩니다. 또 책을 읽고, 읽었다면 실천도 하는 겁니다. 언젠가 강연에서 『천년의 질문』을 읽었다는 사람이 손을 들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질문을 듣고 화가 났습니다. 책 속에 이미 답을 줬어요. 연대하자. 시민운동으로 평화혁명을 이뤄내자. 그런데 실천하지 않고 답을 내놓으라고만 합니다. 그렇게 읽을 거면 책 읽지 말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천이 중요합니다. 누군가 해주길 바라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남한테 미루지 말고 손수 걸어 나가 실천해야죠.

Q 소설 『풀꽃도 꽃이다』를 통해 우리나라 교육에 관한 이야기도 하셨습니다. 우리 민족사를 다룬 작가님의 대하소설 세 편이 여전히 읽히는 요즘이지만, 어린 친구들에게 해방이나 분단은 어느덧 역사책에 나오는 오래된 사건으로 희미해진 것 같습니다.
세월이 가면서 자꾸 망각하게 되는 것도 있지만, 역사 교육이 부실해서 문제가 커지는 것도 있습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과거를 망각한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경구를 남기셨잖아요. 그런데 현실은 영어 교육을 위해 역사 시간을 줄였어요. 기막힌 일이죠. 영어 중요합니다. 세계 공통어니까 꼭 필요해요. 그러나 영어보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역사를 가르치고 도의를 가르쳐야죠. 정신적 자양을 키워주는 것이 교육인데 안타깝습니다.

Q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변해야 할까요?, 
기술 발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만, 그것만이 최선인가는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합니다. 과학 문명의 이기라는 과학 제품들은 끝없이 변모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은, 삶은 절대 불변입니다. 2천 5백 년 전 석가모니 말씀, 2천 년 전 예수 말씀이 지금도 빛과 소금으로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걸로도 입증되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의 삶에도 그 가르침이 통용되고 있습니다. 인간은 별것 없습니다. 불안하고, 초조하고 뭔가에 의지해 살아가는 나약한 존재예요. 이 불완전한 인간의 삶을 받쳐 줄 정신적 자양을 확보하기 위해서 책을 읽어야 합니다. 기술의 집합체라는 스마트폰 안에는 이익도 있지만 폐가 그만큼 많잖아요. 스마트폰 중독은 더 큰 문제입니다. 중독은 뇌 작동이 붙잡혀 자기 의지대로 행하지 못하는 반쯤 정신을 놓은 상태잖아요.

Q 『태백산맥』 나올 때도 많은 사람이 책에 중독되었습니다. 다음 편이 궁금해서 책에서 눈을 떼지 못했으니까요.
하하, 그랬나요? 저도 독촉 전화를 많이 받았어요. 수백 통 이상 받았죠. 행복한 일입니다. 독자들의 독촉을 받으면서 글을 쓴 작가는 아마 흔치 않을 겁니다.

Q 작가님 작품이 나올 때마다 기분 좋은 중독을 경험하는데요. 신작 작업을 앞두셨다고요. 어떤 작품인지요?.
지난해 구상을 했고 새해부터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이번 작품은 돈에 관한 이야기를 할 생각입니다. 돈은 인간에게 무엇일까요? 우린 실존이라는 말을 많이 쓰잖아요. 실존 뒤에는 으레 부조리라는 말이 함께 옵니다. 돈으로 그 두 단어를 연결하면 돈은 인간의 실존인 동시에 부조리입니다. 자세히 보면 모든 인류사의 비극은 다 돈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환경 문제가 왜 해결되지 않을까요? 그 또한 중심에 돈이 있습니다. 강대국들이 자신들의 이권을 놓지 않으려고 해서입니다. 

개인은 다를까요? 미국 부자들 사이에선 로켓을 쏘아 올려 대기권 밖에서 지구를 3분에서 5분간 볼 수 있는 60만 달러짜리 여행이 유행이랍니다. 그 로켓을 한번 쏘아 올릴 때 뿜어내는 탄소가 380명이 타는 대형 여객기의 60배라고 해요.
그런데도 앞으로도 계속 쏘아 올릴 겁니다. 돈이 되니까요. 이게 인간입니다. 얼마나 부조리합니까? 돈이 인간의 생사권을 쥐고 있어요. 이번엔 민족사를 떠나 인간의 실존 문제를 다룰까 합니다. 실존 중에서도 가장 문제가 되는 게 돈이라 선택했습니다.

Q 작가님의 책 『황홀한 글감옥』이라는 제목처럼 글쓰기가 고된 작업이지만, 그만큼 행복한 시간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행복한 시간이 있죠. 드물지만 마음먹은 것 이상으로 소설이 잘 써지면, 그야말로 황홀합니다. 부처님만 열반에 드는 것이 아니라 작가도 그런 경지를 경험하죠. 물론 힘든 시간도 있었습니다. 『태백산맥』이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혐의로 고발당했을 땐 무척 힘들었지만 꿋꿋하게 꺾이지 않고 『아리랑』과 『한강』을 썼죠.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부터 분단, 현대까지 할 얘기가 너무 많은 나라요.

한국 작가들은 그 비극을 외면할 수 없고, 넘어설 수도 없습니다. 운명인 것이죠. 이 땅의 작가로 계속 써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우리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우리의 이야기는 다른 약소국과 동질성을 갖습니다.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셈입니다. 『사람의 탈』이라는 작품은 일제시대 일본군 지원병으로 나선 조선인 청년이 소련군, 독일군, 미군 포로 등 다양한 인생을 살다가 스탈린 정권에 총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조선 청년만의 문제가 아니라 강대국에 유린당하는 약소 민족의 젊은이들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물론 권력에 무너지는 오늘날 청년들의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죠

Q 힘든 세월을 지나오며 아내인 김초혜 시인의 역할도 컸다고 들었습니다. ‘작가의 말’에 항상 감사를 전하시고, 지금도 생일이면 카드를 주고받으신다고요.
아내는 최초의 독자로 제일 열심히 읽는 열독자면서 수정자이자, 교정자인 제 문학의 반려자입니다. 스마트폰도 없이 사는 저를 대신해 귀찮은 연락을 다 받아주는 것도 아내지요.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내의 역할이 적지 않죠. 그러나 힘든 세월을 견디는 건 결국, 자신 스스로 해내는 겁니다. 자기가 우주이고 중심이니까요.

Q 마지막으로 새해, 도서관을 찾는 독자들에게 작가님 저서 외에 읽어볼 만한 책 한 권 추천해 주십시오.알렉스 헤일리의 『뿌리』를 추천합니다. 
개인적으로 작가 의식을 키우는 데 굉장히 도움이 된 책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없었다면 흑인들이 어떤 수난을 겪고, 백인의 잘못이 어느 정도인가 알지 못했을 겁니다. 이 책을 읽으면 그들의 역사가 얼마나 깊은지, 얼마나 우수한 문화를 가진 종족인지 잘 알 수 있어요. 작가는 그런 겁니다. 전 인류가 잘못을 느끼게 하고 사죄하게 만드는, 즉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어요. 모쪼록 새해에 좋은 작가가 쓴 좋은 책을 많이 읽으세요. 전쟁이다, 인플레이션이다, 안팎으로 위기가 많지만 결국 다 지나가고 이겨낼 겁니다. 여러분 모두 희망을 잃지 말고 나아가는 2023년이 되시길 바랍니다

조정래작가
1970년 등단한 후 지금까지 쓰는 삶을 살고 있다. 일제강점기에서 현대사를 아우르는 대서사시를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세 편의 대하소설로 펴냈다. 이외에도 『정글만리』, 『풀꽃도 꽃이다』, 『천년의 질문』, 『인간 연습』 등 무수히 많은 작품이 있다. “문학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인간에게 기여해야 한다”는 자신의 말을 실천하며 살고 있다.  (p29)

 

글  - 이재영

사진 - 최충식

출처 - 월간 국회도서관 2023. 1+2  Vol. 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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