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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일보-죽은 이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by 탄천사랑 2023. 4. 20.

「광주일보 - 2023. 04. 11」


일본 마루야마 마사의 “죽은 이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죽은 이들은 슬퍼한 방법도 없다”는 시 구절은 깊은 사유를 강요한다. 오에 겐자부로가 ‘새해 인사’란 책 속에 인용하면서 널리 읽혀졌다.

죽음은 모든 것의 끝, 그 뒤는 정들었던 사람들에게 슬픈만 남겨준다. 그러나 불자들의 글에는 환생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달라이 라마 말고도 석용산 스님의 ‘여보게, 저승 갈 때 뭘 가지고 가지’란 책에도 놀라운 얘기가 실려 있다.

전생에 돈을 빌려준 사람이 어느 여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아들이 너무 귀여워 “어쩌다가 네가 내 새끼로 태어났지?” 하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자 “전에 엄마에게 빌려준 돈을 받으러 왔어” 하는, 하도 맹랑한 대답에 아들이 말한 액수의 돈을 장난 삼아 주었더니 “고마워. 이젠 그만 가 볼게” 하며 갑자기 숨을 거두고 말았다는 얘기다.

사람의 혼백(魂魄)은 살아서만 공존하고 죽으면 길이 달라진다. 혼은 백을 떠나 허공을 돌다 하늘에 오르고 혼 잃은 백은 땅에 묻힌다.

얼마 전 나는 의식을 잃고 응급실에 실려가 5일 만에 깨어났다. 의식이 없다는 건 혼이 나가 죽어 있는 상태다. 나가버린 혼을 붙잡아 백과 다시 이어준 것은 어떤 절대자가 아니면 불가할 듯싶다. 사람 능력의 한계를 인정한다면 육신과 교류하는 영의 실존을 믿을 수밖에 없다.

5일간은 120시간이다. 그간 나는 믿기지 않은 꿈 같지 않은 꿈을 경험했다. 아내와 등산을 나섰는데 하필 그 산이 고향 선산이었다. 한 골짜기 입구에 이르자 무슨 공사를 한다며 검은 옷을 입고 검은 모자를 쓴 사람들이 새 길을 안내하겠다고 나섰다. 얼마 가지 않아 유리같이 투명한 문이 앞을 막았다. 다가서자 스스로 열리고 뒤이어 ‘철컥’ 하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본 순간 문은 닫혔는데 안내자들은 어느새 밖에 나가 있었다. 아내는 다른 길로 안내되었는지 보이지 않아 불안했다.

주위를 둘러봤다. 여러 개의 방들이 잇대어 있고 그 위는 눈으로 바로 볼 수 없을 정도의 밝은 전선이 사방으로 얽혀 있었다. 한 전선에 검은 나비 한 마리가 앉아 빛을 따라 도는데 나비가 접근하면 방문이 열리고 닫혔다. 의자도 없는 공간에 서서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더 애타는 것은 아내의 행방이었다. 아내도 어디에 갇혀 있는지 이름을 부르며 그 곳으로 보내 달라고 소리쳐도 밖의 안내자들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애태우던 검은 나비가 내 방 쪽으로 다가왔다. 문이 열리기가 바쁘게 미친 듯 밖으로 뛰어나오니 현실의 아내가 거기에 서 있었다. 침대 앞이다. 아내는 내 얼굴을 만지며 울고 나는 그 손을 쓰다듬으며 울었다. “천주님! 말 한마디도 못 나눴는데 이것은 아니잖아요.” 물만 마시고 원망과 애원으로 기도만 올렸단다.

아내는 태중에서부터의 천주교 신자다. 나도 천주교 신자가 되기로 신부님 앞에 다짐하고 성당에서 혼배성사를 했으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신부님과의 약속은 하느님과의 약속”이라는 성화를 50년 넘게 들었다. 퇴직을 하자 변명거리가 없어져 세례를 받았으니 나는 엉터리 신자다.

맛문한 아내는 간병은커녕 결국 자기 몸도 추스르지 못하고 최악의 상태에서 몸져눕고 말았다. 갖가지 지병에 시달려 온 몸이 갑자기 남편마저 기절했으니 그 충격이 오죽했을까.

불현듯 미우라 아야코의 ‘빙점’이 생각났다. 아야코는 일본에선 아주 드문 기독교 작가다. 연재되는 동안 선풍적 인기를 일으켰으나 주인공인 요코의 자살로 소설이 끝나 독자들의 원망이 빗발쳤다. 천사 같은 요코를 죽게 해서는 안 된다는 항의였다. 성화 속에 요코를 살려 이어 쓴 게 ‘빙점’의 속편이다.

요코는 독자들이 살려냈고 나는 절대자의 은혜를 입어 살아났다고 믿고 있다. ‘죽은 이들은 돌아오지 않는다’는데 요코도 나도 죽지 않았기에 다시 세상 속으로 돌아왔다.

사람의 마음에는 누구에게나 빙점이 있다. 원죄가 없었다면 빙점도 없다. 용서할 이유도 없다. 원죄는 길을 벗어난 것이다. 지난날을 회억해 보니 잘못하고도 아닌 척 시치미 뗐던 일들만 떠오른다. 이웃들을 더 이해하고 사랑하며 더 잘할 수도 있었는데….


글 - 황옥주 (수필가)
출처 - 광주일보  http://www.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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