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진. 외 - 「퇴사준비생의 도쿄(여행에서 찾은 비즈니스 인사이트)」
Solco, 100% 초콜릿 카페
"취향은 구분하고, 분류하는 자를 분류한다"
프랑스 사화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구별 짓기>의 서문에 나오는 내용이다.
개인이 가지는 취향이 개인이 속한 계급을 규정하고,
상위 계급으로 분류된 개인들은
아름다움과 추함을 구별함으로써 다른 계급과 자신을 구분한다는 뜻입니다.
자본이 주도하는 산업사회에서는 돈과 권력이 다른 배경을 만들고,
다른 배경이 개인의 다른 취향을 낳습니다.
즉 개인이 가지는 문화 취향은
개인의 고유한 것이 아니라 개인이 속한 계급의 문화적 취향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자본보다 지식이 사회를 주도하는 시대입니다.
지식은 자본과 달리 계급을 구별하기보다는 모든 사람이 다양한 문화를 접할 기회를 만들어냅니다.
이제 개인의 취향은 돈과 권력에 의해 규정되는 계급의 취향이 아니라,
개인의 의지에 따라 고유한 것이 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취향의 시대에 중요한 역활을 하는 건 전문가들입니다.
지식을 가진 전문가들은 문화를 '접하는 것'과 '이해하는 것' 사이의 격차를 좁히면서
일반인이 가질 수 있는 취향의 저변을 넓힙니다.
전문가가 전문가인 이유
- 전문가들만 이해할 수 있는 지식은 비즈니스로 발전하는 데 한계가 있으며,
전문가의 지식이 대중에게 인정받을 때 사업적 가치를 갖습니다.
전문적인 지식을 대중이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정리가 필요합니다. -
그래야만 일반인의 시선으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분야를 세분화하고 체계화하는 것은 그 분야에 대해서 넓고 깊게 알아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전문가가 전문가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자신의 분야를 '세분화하여 정리하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100% 초콜릿 카페는
초콜릿에 대한 전문성을 매출액이 아니라 상품을 구성하고 제공하는 방식으로 보여줍니다.
메이지 본사 1층에 있는 100%초콜릿 카페는
56가지 초콜릿과 초콜릿을 베이스로 만든 메뉴를 판매합니다.
1번부터 56가지 넘버링이 되어 있는 56개 초콜릿은 6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어집니다.
도쿄의 한적한 주택가인 시나가와 구에는 소금 전문점 Solco가 있습니다.
Solco는 국내외 400여종의 소금 중에
임의로 약 40종류의 소금을 선별하여 각각의 소금에 고유 번호를 붙여 판매합니다.
소금의 산지, 제조 방법, 원천에 따라 7개 카테고리로 나누어집니다.
도서관과 같은 분류체계를 통해 Solco의 고객들은 소금의 종류를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보급형부터 전문가용 카메라까지
패권을 놓지 않는 카메라회사 캐논이 꾸준히 일반인을 위한 사진 클래스를 열고,
150년 전통의 시세이도가
긴자 한복판에 화장품을 테스트해볼 수 있는 파우더룸을 오픈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연매출 조 단위의 회사에 아카데미나 파우더룸은 추가 수익원으로서 의미를 갖진 못합니다.
대신 자신들의 분야를 보다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전달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 초보자들이 취향을 찾을 기회를 제공하고,
자신의 취향을 계속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고객들의 취향을 존중하는 방법입니다.
100% 초콜릿 카페와 Solco 매장에서도
취향 발굴의 기회를 제공하려는 노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고객들은 직접 먹어보지 않고도
레이더 차트를 통해 각 초콜릿의 맛을 상상하면서 선택의 기준을 찾게 됩니다.
레이더 차트를 기준으로 초콜릿을 구매한 고객들은
그 초콜릿을 구성하는 각각의 풍미를 음미하며 자신에게 맞는 초콜릿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00% 초콜릿 카페가 고객의 취향을 존중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시그니처 메뉴인 '샘플러'에 있습니다.
100% 초콜릿 카페는
기원전부터 약 4000년의 세월 동안 초콜릿이 '마시는' 형태였다는 점에 착안하여,
56가지의 초콜릿을 음료의 형태로도 제공합니다.
그중 3가지를 무작위로 선정하여 내주는 것이 샘플러입니다.
반면 소금 전문점 Solco에서는 고객이 소금을 구매하지 않아도,
단돈 90엔에 판매하는 오니기리만 구입하면 매장 안의 모든 소금을 맛볼 수 있습니다.
백미 또는 현미만으로 만든 무미(無味)의 오니기리를 구매한 고객들은
매장 내에 비치된 소금들의 고유번호와 원산지를 보고 원하는 소금을 선택해
오니기리에 뿌려 시식해봅니다.
각각의 소금과 잘 어울리는 식재료,
요리 등이 함께 기재되어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염두에 두고 소금을 맛볼 수도 있습니다.
Solco의 오니기리는 소금의 맛과 고객을 연결하는 매개체이자,
고객이 소금에 대한 취향을 찾는 출발점입니다.
전문가가 전문성을 채우는 방법
홋카이도 지방의 하코다테에는 150년 전통의 일본 과자 명가 '센슈안' 본점이 있습니다.
맛의 미묘한 차이도 용납하지 않는 센슈안은 재료 준비부터 제작,
포장까지 철저한 원칙에 따라 완수하여 디테일을 사수합니다.
한편으론 다양한 맛과 모양의 화과자를 개발하기 위해 서양과자에도 도전하고,
매월 새로운 디자인의 화과자를 출시하기도 합니다.
지속적인 연구와 디테일에 대한 고집이 센슈안의 150년 역사를 지켜냈습니다.
- 100%초콜릿 카페와 Solco도 꾸준한 연구로 기본을 다지고,
디테일의 영역을 고객과의 접점인 매장 전체로 확장합니다.
그들의 전문성이 완결성을 가지는 이유입니다. -
취향에 담긴 기회
- 너무나 좋아해서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몰두하게 하는 뭔가가 있다면,
젊은이들은 그것을 취미로 하는 아마추어가 아니라
일로 삼는 프로가 되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
일본의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인 무라카미 류의 저서 <무취미의 권유>에 나오는 문구입니다.
<무취미의 권유>는 취미가 없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몰두하고 싶은 일을 깊게 파고들어 업(業)으로 삼을 만큼 전문가가 되라는 뜻입니다.
취미에 그친다면 시간을 세련되게 보낼 순 있어도 삶을 요동치게 할 순 없기 때문입니다.
그가 휴식은 권장하지만,
취미는 권장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취미는 취향으로,
취향은 개인의 업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취향은 그 분야에 대한 애착을 갖게 하고,
고민의 깊이를 더하게 합니다.
영국 왕실을 비롯해 전 세게 셀러브리티들의 주목을 받았던 플라워숍 제인 패커,
라이프 스타일 비즈니스의 상징이 된 마사 스튜어트 리빙 역시
개인의 취향에서 시작된 비즈니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객들이 취향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100% 초콜릿 카페와 Solco는
자신들의 비즈니스를 확장하는 것 이상의 가치를 가집니다.
고객의 취향을 존중하는 일은
누군가가 개인의 취향을 바탕으로 새로운 기회를 만들 수 있도록 돕는
또 하나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 (p284)
※ 이 글은 <퇴사준비생의 도쿄>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이동진 , 최경희 외 - 퇴사준비생의 도쿄(여행에서 찾은 비즈니스 인사이트)
더퀘스트 - 2017. 0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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