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간시지-심상 / 2007년 3월호」
어느날 동대구역 대합실
3월의 맥박이 쿵쿵 동대구역 대합실 구부려놓다.
딱딱한 대리석 바닥을 못질하며 가는 하이힐소리
스펀지 같은 남자와 마주 친다.
그를 보자 숨어있던 발화점 일시에 목 내미는 순간
구불거리는 내장의 힘까지 꾹꾹 누른다.
꼬깃꼬깃 백수란 명함이 여자를 향해
무거운 이별을 고한다.
언제나 소주로 덥혀진 남자의 입에선
오늘도 단감 냄새가 난다.
가당찮은 눈길의 그녀, 삐죽삐죽 내민 턱수염
기적소리에 떨어지는 연민의 늦은 오후 할퀸다.
바위에 붙은 빈 조개껍질 같은 그녀의 그렁한 눈물이
대합실 바닥을 적신다.
마음 한곳 비우고 몸 한곳 열어둔 개찰구로
빠져나가는 사람들의 긴 꼬리
저만치 전광판의 숫자가 바뀌고 있다.
시인의 명상
봄볕 다사로운 대각사 앞 뜰 해거름이 그윽하다.
석불좌상 여러분이 담소를 나누다 나의 출현에 흠짓 놀라신다.
주위가 조용하고, 너무 조용해 숨소리조차 사그라질 것 같은 뜰
사그락 사그락 촉수 밀어 올리는 흙의 소리들리는 듯 하다.
석불에 손을 대 본다.
명주실처럼 가는 한 올의 시간 속에 내가 서 있고,
그 시간은 이런저런 이유로 나를 저울질 해보며 담글 질이다.
어느 날 문득 이게 아닌데.... 로 시작한 시 쓰는 작업이 오랜 세월의 궁글림 속에서 시인이란 명함을 얻었고 시 낭송가,
시 낭송 지도자 자격증을 얻기 위해 매주 KTX 타고 서울로 오르내리던 일,
그 일에 왜 그리 집념을 갖고 매달렸던가 꿈만 같다.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의 길이 많기도 하다.
산에 난 들길,
바다의 뱃길,
하늘의 구름의 길,
나의 길은 들꽃 속에 세상 밀어놓고 눈 감고 가던 길,
산길 걸으며 비탈길 굴러가는 돌맹이 아픈 신음 소리 고즈넉이 누워있는 무욕의 둥지 어루만지며 가는 길,
쏟아지는 장대비 땅을 튀어 오르듯 그렇게 오기로 밀고 온 길, 그 길만이 아니었다.
왼발 오른발 가지런히 놓지 못하고 엇박자로만 빗나가던 톱니바퀴의 길,
그런 일상사의 일들이 하얀 밤 나를 여러가지의 유충으로 변식 시키기도 했다.
이제 이순의 허리도 휘청 접은 지금 젊어지기 위해 시를 쓰고 낭송을 한다.
수없이 꽃과 잎을 피우는 작업 중에 내 혈관 속 마르지 않는 꿈과 식을 줄 모르는 활기가 퍼즐처럼 이어진다.
그 순간순간이 고리가 되어 나를 지탱해 주고 숙성된 여인으로 거듭나게 한다.
나의 길을 찾지 못해 많이도 둘러온 길
가는 길이 짧다 해도 묵정밭 일구고 씨 뿌려 꽃을 피우는 작업 계속 할 것이다.
한 보살님 걸어 나와 석등에 불 밝힌다 합장하고 돌아서는 모습, 뜨거운 무엇인가가 목젖을 울린다.
뼈아픈 겨울 바람도 밀쳐낸 부드러운 저 치마폭의 봄바람이 육신 거리는 관절 어루만져 준다.
지금 백팔번뇌 중인 법당 안 촛불이 참회의 눈물 흘린다.
참회와 함께 비워내는 일이 곧 시인으로 사는 길이다.
한선향 (본명 한정자
2005년 5월 '심상' 신인상으로 등단
한국문인 협회. 한국 시 낭송가 협회 회원 시 낭송가. 시 낭송 지도자.
공저-'블랙커피로 죽이고 싶다' '싸리울' '들꽃과 구름' '시의 고향 아닌 곳 어디 있으랴'
{t-23.07.03. 230701-18455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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