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식 - 문학기행」
'울란;과 '우데'의 울림을 찾아 나선 멍텅구리.
이들 당달봉사 떼의 눈을 뜨게 하는 계기가 찾아온 것은 울란바토르에 닿은 지 6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심청이 기다리고 있었던 까닭이다.
참으로 용감하게도 이들 청맹과니들은 상당한 비용을 지불, MIAT를 전세 내어 몽골을 탈출,
국경을 넘어 러시아령인 브라야트 공화국의 수도인 이른바 울란우데 RED GATE를 향하지 않았겠는가.
어째서 울란우데인가. 일목 요원한 해답이 주어진다. 울림 때문.
'울란' 이란 울림,
'우데'라는 울림에 매혹되지 않았다면 굳이 그곳을 찾아갈 이유는 아무 데도 없었다.
그것은 '울란바토르'의 울림 때문에 몽골 여로에 나섰던 까닭과 한치도 다르지 않은 것.
적어도 내게는 그러하였다.
도시 상공에서 본 울란우데는 한가운데 강을 낀 아름다운 도시.
거대한 공향이 눈에 들어왔고, 또 한 번 거대한 철도역이 내려다 보였으나,
비행기가 닿은 곳은 거대한 공항 쪽이 아니고 낡고 초라한 국제공항 이었다.
브리야트 공화국이었다. 몽골을 벗어나 러시아에 온 것이다.
분명, 이는 뭔가 착오였다.
그렇지만 분명 착오가 아니었다. 몽골권이지만 러시아권이었기에 그것은 그러하다.
이른바 브리야트 공화국, 당초 몽골 인종의 하나인 브리야트 Buryat 족이 이곳에 흩어져 살고 있었다.
19세기에 들어 슬라브족들이 이쪽으로 쳐들어왔다.
그리고 그들이 지배족으로 군림하면서 새로운 도시를 건설했다.
그들 지배 속에 들어 간 브리야트 족들은 서서히 동화되어 갔다.
그런 흔적이 '울란우데'라는 울림으로 남아 있었던 것.
아디다스 체육복을 입은 브리야트족의 무당 우두머리는 소련군 장교 출신이었다.
이제 그는 무당으로 복귀 중이었다.
'울란'과 '우데'의 울림은 오직 이 샤머니즘 속에서 겨우 울리고 있었다.
그 때문에 우리들 당달봉사는 여전히 눈멀고 귀멀어 아득하였다.
당달봉사 때, 눈과 귀를 틔게 한 것은 뜻밖의 사정이 개입됨으로써 겨우 가능하게 됐다.
그 하나는,
울란우데를 거쳐,
또 이광수의 <유정> 을 계기로 찾은 바이칼 호를 관광하고 울란바토르로 돌아 왔을 때 일어났다.
공항에 닿자 기묘하게도 정전 상태였다.
어둠 속에서 군복 차림의 관리들이 입국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복수비자가 아니었던 것이 문제가 되었다.
그 덕에 당달봉사의 신분이 여지없이 선명하게 증명되고 말았던 것.
21명 전원은, 아무리 멍텅구리라 자처하는 족속이라도 이번 만큼은 여지없이 깨닫지 않으면 안 되었다.
스스로가 관광이 아니라 당달봉사라는 사실을,
김포를 떠날 적부터 멍텅구리였다는 사실을.
공항 규칙대로, 각자는 벌금을 내고 입국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각자 50달러. 총 1,050달러.
돈이 문제가 아니었음은 삼척동자도 직감하는 것. 공항 규칙이 바로 심청이라 함은 이런 문맥에서이다.
또 하나의 심청은 누구였을까.
이 역시 기묘하게도 가냘프게 생긴 일본 청년이었다.
일본의 국제 교육재단 몽골 사무소 직원. 이름은 이쿠치 고바야시.
고바야시 씨는 회색빛 왜건식으로 된 승용차를 갖고 있었다.
공항에 나와 있었다.
우리 쪽 가이드와 연결이 되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측 가이드는 일어에 썩 능통했기 때문,
두 사람은 일어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었다.
미국 근무지에서 이쪽으로 자리를 옮긴 지 두 해가 되었다는 고바야시 씨는
명민함과 기동력으로 현지 사정에 적절히 대처할 수 았을 것 같았다.
다음날, 그의 안내로 우리가 간 곳은 이 나라 두 번째 도시 텔레지 교외에 있는 휴양지.
울란바토르에서 한 시간 반 거리에 있는 휴양지 텔레지행은 비와 안개 속 헤매기였다.
초원으로 난 포장도로였다.
형언할 수 없는 구식 버스지만 그런 대로 굴러갔고,
심지어 신식 녹음장치조차 갖추어져 있어 틀기만 하면 비틀스의 저 애잔한 '예스터데이'가 속삭임처럼
아니면 톰 존스의 목소리가 폭음처럼 터져 나올 기세이기도 했다.
우기였던가.
시종 우리 여로엔 초원 위로 낮게 깔린 먹구름이 안개비를 거느리고 있어
우리로 하여금 일정한 거리를 유지케 하는 것이었다.
안개 속 초원 고갯길을 넘어서자 길고 아득한 골짝이 나타났다.
버스가 멈춘 곳은 큰 바위 앞, 거북바위라 했다.
안개비 속에 서서 거북바위를 감상하라는 것이었다.
사방 초원뿐인 땅에 거북이 있다니,
거북이 아니라 개구리바위라도 놀라울 수밖에,
감상이 아니라 숭배할 수밖에, 그래야 된다는 것이었다.
'어째서'란 질문은 어리석다.
초원밖에 없는 곳에 바위가 있으니까. 그것도 거대한 바위가 아니겠는가.
뿐만 아니라, 거북 형상을 하고 있지 않겠는가.
거기에는 나름의 미덕이 감추어져 있기조차 했다.
이 거북을 감상할 줄 아는 사람의 눈에 비로소 뜨이는 것,
지천으로 피어 있는 에델바이스의 군락이 그것, 어찌 에델바이스가 알프스 눈 골짝에만 필까 보냐.
말 입술꽃도 널려 있지 않겠는가.
거북바위에서 젖은 옷 그대로 이른 곳에 몇 개의 절이 있었다.
생쥐 꼴이 되어 오돌오돌 떨면서 두 개의 겔 속으로 나눠 들어와 난로를 지폈다.
벌겋게 달아오른 난로 앞에 앉아 있자니 양젖 막걸리 통이 들어왔다.
시큼한 막걸리에 목을 축이자 옆의 겔에서 누군가가 부르는 노랫소리가 들러왔다.
바이칼호 한가운데서 <산타 루치아>를 목청껏 외친 H 교수. 이번 곡목은 <선구자> 였던가.
<아리랑>이었을까.
허한 속에 들어간 알코올의 힘이었을까.
칭기즈칸 소주를 따라 별미 접시도 들어왔다.
인간은 먹는 것 자체다,라고 갈파한 자는 포이에르바흐였던가.
어떤 문맥에서 나운 구절인지 알기 어려우나 (항필호의 <우리 수필론> 중 <김진섭 론)
좌우간 먹고 마시기 만큼 인간적 행위란 그리 많지 않다.
<에로티시즘(1957)>의 철학자 바타유 Georges Bataille는 엄숙히 논증 한 바 있다.
인간이란 종자에겐 세 가지 사치(낭비)가 주어져 있다,라고.
'먹기, 섹스, 그리고 죽음이다'라고, 앞의 둘은 바타유 아니라도 누구나 아는 상식.
문제는 죽음.
죽음이야말로 인간 종자의 가장 철저한 사치라는 것.
그러기에 죽음은 단연 '선택'이라는 것,
여로란, 그러니까 세 가지 기본형 사치 중 적어도 그 중 하나를 선택하기로 요약되는 것,
구름처럼 몰려다니는 나그네 길에도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으리라.
그렇더라도 바타유에 기댄다면 그런 의미 따위란 기본형 축에 들지 못한다.
여로 속에 '먹기'라는 극도의 사치가 겨우 끼여 있을 따름.
이 장면에서 잠깐 하고 누군가 나설 법하지 않을까.
여로란 그 끝에 죽음이 있지 않겠는가. 죽음에 이르는 길이 아니겠는가,라고.
그럴지도 모르긴 하다.
설사 그렇더라도 그것은 썩 간접적이라 할 수 없겠는가.
먹은 것을 게워 내가면서 먹기에 그토록 열정적이었던
로마제국의 귀족층 속에 번진 '향연'에 비하면 여로란 얼마나 오활迂闊한 것인가.
에델바이스를 양탄자처럼 밟으며 밖으로 나오자 어느새 안개비가 달아나고 있었다.
그 안개비 꽁무니를 쫓아 다시 당나귀처럼 생긴 버스가 뛰었다. 숲이 보였다.
30분쯤 꼬불길에 흔들리며 고개를 넘어서자 훤히 펼쳐진 초원. 휴양지라 했다.
겔이 즐비하여 과연 동네를 이루고 있었다.
여기까지 포장도로였음이 새삼 상기되었다.
햇빛이 구름 사이에 쏟아졌다.
우리 주변으로 어느새 목동들이 에워싸는 것이었다.
말타기, 일금 10달러, 작은 말들이었다.
조랑말급은 아니나 좌우간 경주용 말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키도 몸집도 작았다.
또한 둔하고도 순했다.
올라타도 길들여진 탓인지 가만히 있었고, 엉덩이를 쳐도 천천히 걷기는 마찬가지.
문득 우루무치의 천지天池에서 위구르족의 말이 상기되었다.
그들의 말도 이러하였던가.
또 하나 머리를 스치는 것은 저 칭기즈칸의 기동력.
세계를 정복한 그의 원동력이 말의 기동력에 있었다면, 이 둔한 말이야말로 그 장본인이 아니었겠는가.
기마민족의 모습은 아무 데도 없었다.
어린 소녀가 탄 말에서도 늙은이가 탄 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관광용 말을 본 것에 모든 오해가 있었을 터,
나그네의 무식함에 오해의 근원이 있었을 터, 뭔가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p27)
※ 이 글은 <문학기행>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김윤식 - 문학기행
문학사상사 - 2001. 03. 30.
[t-23.07.21. 230719-13164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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