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心象 - 제 35권 3호. 통권 401호 시인의 명상」
조 춘 早春
진해령
엄마 집 가는 길
씀바귀 지천으로 피었다.
나 말고도 바닥에 엎드린 생이
이렇게 많다니
너무 일찍 내몰린 한데 잠에
세월의 정수리부터 허옇게 세어
끝내는 공중에 티끌로 흩어지는
하염없이 가벼운 것들이 또 있다니
생이란 시작하는 순간부터
슬픔에 발목 잡히고
벗어나려고 몸부림칠수록
시퍼렇게 옥죄는 비참의 톱니들
언제나 목이 마르고
마른 땅 깊숙이 손을 뻗어보지만
갈라터진 땅에서 건져 올리는 건
조등 같은 꽃잎 한 장
엄마는 오래 아프다
처방전으로 지물포라도 차릴꺼야
낡은 벽지처럼 희미하게 웃는다.
문병이라도 하려는지 뿌연 홑씨 하나
현관 까지 따라 온다.
짓밟히고 으깨져서 얼룩으로 말라붙은
쓰디 쓴 생이 나 말고 여기 또 있다니
시인의 명상
히스테리아 시베리아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이라는 소설에서는
'히스테리아 시베리아나'라는 병명病名이 등장한다.
시베리아 농부들이 날마다 똑같은 일을 반복하다가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
곡괭이를 팽게치고 지평선을 향해 서쪽으로 서쪽으로 걸어거다가
어느 순간 걸음을 멈추고 밭고랑에 쓰러져 죽는다는 병이다.
"어느 날 내면에서 무엇인가가 '뚝' 하고 끊어져서는 죽어버리고 말아요.
그러면 지면에다 괭이를 내던지고는
그대로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하염없이 서쪽을 향하여 걸어가는 거예요.
태양의 서쪽을 향해서,
그리고는 무엇에 홀린 듯이 며칠이고 며칠이고 아무것도 마시지도,
먹지도 않고 줄곧 걷다가,
그대로 지면에 쓰러져 죽고 말아요.
그게 히스테리아 시베리아나"
소설 속에서는 그렇게 묘사하고 있다.
무의미한 반복이 사람을 얼마나 황폐하게 만드는지,
목적 없는 삶이 인생을 얼마나 비참하게 만드는지를 잘 보여주는 질병인 것 같다.
특별히 철학적인 사람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가끔 '왜 사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때가 있다.
때로 '나는 지금 잘 하고 있는지,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날이 그날 같은 끝없는 되플이,
내 안에서 무수히 죽어가는 꿈과 시간들,
어디론가 뛰쳐 나가지 않으면 폭발해 버릴 것 같은 억압,
일상의 다림줄 위에서 어름산이처럼 아슬아슬하게 버티는 긴장감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더구나 여름 휴가철이나 명절 이라도 맞게 되면
민족 대이동이라고 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길 위에 서게 된다.
삼십 도를 훨씬 웃도는 기온에다 열섬현상과 복사열 때문에,
또 밤에는 열대야 현상 때문에 거의 탈진상태에 이른다.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의 내면에서도 무엇인가가 뚝 꾾어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휴가를 간다.
또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한 우리나라의 경우,
여름휴가는 물론이고 봄이면 꽃놀이,
가을에는 단풍놀이 겨울에는 스키나 온천을 즐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여행길에 오른다.
그러나 오직 먹고 마시고 즐기는 휴가,
기력을 소모하고 시간을 탕진하는 여행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성숙한, 양식 있는 사람들의 여행이나 휴가는
삶의 비본질적인 것과 일상의 불필요한 집착으로부터 떠나는 휴가,
자신을 얽어 매워던 과도한 욕망으로부터 벗어나는 여행이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휴가나 여행은 열심히 일한 대가로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로 인식해야 한다.
'남들이 모두 가니까, 그렇게 하니까'
하는 식의 진부한 타성에서 벗어나 잃었던 자존감을 되찾는 휴가,
상처 입은 자아를 치유하는 휴가,
자연으로 나아가 세계를 창조하신 창조주 앞에서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 십자가를 기쁘게 지고 갈 수 있는 믿음을 회복하는 휴가를 게획해 보는 것은 어떨까.
물질보다 중요한 것은 건강이고 건강은 잘 쉬는 데서 나온다.
이제는 쉼도 테크이다
삶의 회복, 신양의 회복, 관계의 회복, 메마른 정서의 회복에 초점을 맞추고
분주한 삶 속에서 잊고 살았던 지인이나 친구를 방문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조용한 기도원을 찾아 소흘했던 기도에 깉이 침잠하는 일이나
소외된 사람들이 있는 시설에 찾아가서 가족과 함께 봉사하므로
나눔과 섬김을 실천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마음먹기에 따라서 '의미 있는 휴가 보내기'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태양의 서쪽에는 대체 무엇이 있는데? 하고 나는 물었다.
그녀는 또 고개를 저었다.
난 모르죠.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는지도 몰라요.
아니면 무엇인가가 있는지도 모르고,
하지만 아무튼,
그곳은 국경의 남쪽과는 좀 다른 곳이에요."
이런 막연함이나 우연에 기대어 살아왔던,
아니면 너무 치열해서 나도 남도 데이게 만들던 삶에서 잠시 떠나
이제는 전과는 좀 다른 여행을 떠나 보는 건 어떨까...., (p358)
※ 이 글은 <心 象>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월간시지 - 心 象
심상사 - 2007. 03. 31.
[t-23.08.03. 230801-17392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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